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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가거도 헬기 순직 해경 흉상 건립 무산…정부 "예산이 없어서"

중앙일보 2015.10.06 14:02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응급 상황에 놓인 섬마을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해경 4명을 기리기 위한 흉상 건립이 추진됐지만 정부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는 지난 3월 13일 전남 신안군 가거도 해상에서 헬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 뒤 해양경비안전본부에 고(故) 최승호 경감 등 순직 해경 4명의 흉상 건립을 제안했다. 목포항공대 소속인 최 경감 등이 짙은 안개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배가 아픈 가거도 초등학생을 위해 B-511 헬기를 띄워 출동한 게 후배들의 귀감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119에도 도움 요청이 있었지만 날씨 탓에 소방 헬기는 출동을 포기했다. 정부는 이 같은 점을 높이 사 최 경감 등에게 1계급 특진과 훈장을 추서했다. 가거도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도 청와대와 국민안전처 홈페이지 게시판에 감사 글을 남기거나 해경에 감사 편지를 보냈다.

해경본부도 “순직 해경들의 흉상을 여수 해양경비안전교육원에 세워 추모하고 신임 해경들이 살신성인의 정신을 기릴 수 있게 하자”는 서해본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관련 예산 2억여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편성했다.

그러나 해당 예산은 정부의 반대로 예산안에 결국 반영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최 경감 등 순직 해경 흉상을 세우려는 계획도 내년에는 어렵게 됐다. 기획재정부가 기존에 없던 신규 사업인 흉상 건립 예산을 반영하길 꺼렸다는 게 해경 측 설명이다.

해경본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측에서 다른 사업과 비교해 흉상 제작의 중요성이나 사업 우선순위 등을 검토한 뒤 최종적으로 (중요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일선 해양경찰관들도 위험에 처한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한 순직 해경들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며 서운해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해경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 조직은 마치 무능한 조직인 것처럼 국민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임무 수행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며 “정부마저도 해경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흉상 건립 사업을 처음 제안한 서해본부는 내년에 다시 예산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서해본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해경 조직이 국민안전처로 편입되면서 예산에 여유가 없는 상황인 것 같다”며 “내년에 다시 예산 확보를 추진하고 그때도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안을 고민해 볼 것”이라고 했다.

2008년 9월과 2011년 12월 불법조업 중국어선 단속 중 선원들이 휘두른 흉기와 둔기에 맞아 숨진 목포해경 소속 고(故) 박경조 경위와 인천해경 소속 고(故) 이청호 경사의 흉상도 2012년에서야 정부 지원 없이 동료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과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 예산 등 1억원으로 제작됐다. 두 순직 해경의 흉상은 현재 국가현충시설이다.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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