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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傳(4)] 장성택 사냥 ②

중앙일보 2015.10.0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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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오른쪽 둘째)이 2012년 11월 19일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오른쪽)과 제534군부대 기마훈련장을 찾아 말을 타고 있다. 김정은 뒤는 최용해 총정치국장. [중앙포토]


장성택은 부하들이 내사를 받고 있다는 첩보를 듣고도 태연했다. 더 가관인 것은 중국이 2013년 4월 북한 내부 동향을 역으로 전달하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했는데도 나 몰라라 했다. 왜 그랬을까? 총기가 흐려져도 너무 흐려졌다.

노동신문은 12월 9일자에 “장성택은 사상적으로 병들고 극도로 안일해졌으며 마약에 손을 댔다”고 밝힐 정도였다.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다소 과장될 수 있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은 아니다. 북한 고위 인사는 “장성택이 지나치게 자기 주변을 안일하게 판단한 것이 목숨을 재촉했다”고 말했다.

장성택은 2013년 11월 중순 자신의 오른팔과 왼팔인 이용하 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당 행정부 부부장이 공개 처형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장성택은 어떻게 사냥감이 됐을까?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이 12월 12일 특별군사재판 법정에 읽은 판결문은 대부분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다. A4 용지 5장 분량의 판결문 가운데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임의로 팔아치웠고’라는 문장이 있다.

판결문에 언급한 석탄은 수출용이 아닌 국내용으로 발전소와 가정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를 중간에 가로채 수출하여 이득을 취한 것이다. 그 돈으로 여기저기에 돈을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장성택은 2009년 한 해에만 비밀금고에서 약 460만 유로(한화 60억원)를 꺼내 탕진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에 숨겨두었던 3억 달러(한화 3300억원) 문제로 장성택은 완전히 궁지에 몰리게 됐다. 돈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그 돈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될 줄은 몰랐다.

이 상황에서 장성택을 구해 줄 사람은 김경희 밖에 없었다. 부인이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였다. 하지만 이들은 몇 해 전에 별거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외동딸인 장금송이 2006년 8월 프랑스 유학 도중 파리의 한 빌라에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한 이후 멀어졌다. 장금송은 집안에서 출신 성분이 떨어지는 연인과의 결혼을 반대하고 평양으로의 귀환만 독촉하자 이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설에는 장금송은 김경희가 낳은 딸이라 아니라 장성택이 바람을 피워 낳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장성택은 김경희의 ‘구박’을 피해 장금송을 프랑스로 보냈고, 장금송의 자살도 김경희의 사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장금송의 자살 이후 부부싸움은 잦았고 장성택의 여성 편력증이 심해져 이혼까지 했다는 소문도 있다.

김경희는 장성택의 처형에 개입하지 않았다. 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3년부터 거의 뒷방 노인네 취급을 받았다. 결국 장성택은 ‘2인자’로서 자신을 지킬 수 없었다. 처형 직전까지 김 제1위원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졸랐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끝)

다음은 [장성택傳(5)] 장성택과 최용해 편입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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