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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변호사 4대 그룹만 1100명 …‘갑’에서 ‘을’ 된 로펌들

중앙일보 2015.10.06 02:04 종합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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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대기업 A사의 조세사건 수임 경쟁에서 한 대형 로펌이 고배를 마셨다. 로펌 측은 공개입찰에서 지난해의 절반가량의 수임료를 써내고 프레젠테이션도 최선을 다했다. 로펌의 대표급 인사와 A사 간부들 간 네트워크도 탄탄했으나 허사였다. 결과가 발표된 뒤 A사 간부는 “다른 상위권 로펌에서 당신네 로펌 입찰가의 반액을 써냈다”고 귀띔했다.

위기의 로펌 <2> 사내변호사 3000명 시대
사내변호사 10년 새 10배로

 B로펌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대기업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소소한 사건들을 무료로 끼워서 수임하는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며 “M&A 시장에 새로 진출하려는 어느 중소 로펌은 자문료를 ‘0’원으로 써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들이 기업의 법률 자문이나 송무 사건을 맡기 위해 벌이는 출혈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대형 로펌 변호사들은 “사내변호사 그룹의 급격한 성장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본지의 10대 로펌 대표 설문 조사 결과 6명의 대표가 “사내변호사 집단의 성장이 로펌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답한 반면 4명은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답했다. 또 ‘부정적 영향’에 대해선 6명의 대표가 “수임료(자문료) 인하”를 꼽았다.

 예전에 로펌의 ‘을’이었던 사내변호사가 세력이 커지며 ‘갑’의 지위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활동 중인 국내변호사 1만9865명(대한변호사협회 회원수) 중 사내변호사는 3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방변호사회에 접수된 영리법인 겸직허가 신청자 수를 토대로 추산한 결과다. 2005년 200~300명에 불과했던 데 비해 10년 동안 10배 넘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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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그룹의 사내변호사 수는 올해 상반기 기준 330여 명. 외국 변호사 자격 소지자를 포함하면 ‘변호사 삼성맨’은 500명을 훌쩍 넘는다. 최대 로펌인 김앤장(국내변호사 583명)에는 못 미치지만 2위권 대형로펌(광장 368명, 태평양 357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외국 변호사만 놓고 보면 김앤장(139명)보다 많다. 외국 변호사 위주의 사내변호사 단체인 ‘IHCF’(1999년 창립)는 회원수가 1300여 명, 국내 변호사 중심의 ‘한국사내변호사회’(2011년 창립)는 회원수가 1800명을 넘어섰다. 1997~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업의 법률 문제가 복잡다기해지고 이후 ‘사시 1000명 시대’ ‘로스쿨 시대’가 열리면서 사내변호사가 성장한 결과다. 백승재 한국사내변호사회 회장(EY 한영 전무)은 “사내변호사의 양적 증가가 사내변호사의 역할을 질적으로 바꿔놨다”고 말했다.

 과거엔 계약서 검토, 외부 변호사나 로펌이 수행하는 소송관리 등 사후적·수동적 역할이 주였다. 최근엔 사내자문을 통해 분쟁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등 능동적 역할을 한다. 법무실에 묶여 있던 사내변호사들의 활동 공간도 인사·노무·마케팅·기획 등 현업 부서로 다변화됐다.

 이로 인해 로펌과의 관계도 질적으로 변화했다. 과거 로펌들에 맡기던 웬만한 법률검토는 사내에서 마무리되고 쟁점이 많지 않은 송무는 사내변호사가 직접 처리한다. ‘외주’를 주는 건 선례가 불분명한 고난도의 사건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오너나 경영진과 가까운 변호사나 로펌에 일을 맡기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비딩(입찰)’이 일반화됐다. 한 금융회사의 법무실장은 “전문성과 원활한 의사소통도 중요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로펌이라면 자문료가 얼마인지가 결정적”이라며 “기업들이 사안별로 ‘로펌 쇼핑’을 한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사내변호사들의 깐깐해진 시선에 애를 먹는 변호사업계에선 “현재 1인당 한 해 10건까지 가능한 사내변호사의 직접 소송을 금지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IHCF 조대환 회장(메트라이프생명 상무)은 “기업의 새로운 법률 문제를 포착해 법률시장의 파이를 키워온 것도 사내변호사”라고 말했다.

 사내변호사와 로펌변호사 간 칸막이도 허물어지고 있다. 대기업이 대형 로펌의 중견변호사를 영입하는 일이 잦고 로펌들이 임원급 사내변호사를 파트너로 영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달 로펌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한 한 중견 변호사는 “로펌들은 대기업과의 네트워크 강화가 절실하고 대기업은 변호사 업계를 잘 아는 전문가를 통해 법무비용을 더 줄이고 싶어한다”며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생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정효식 팀장, 김백기·임장혁·백민정·이유정 기자,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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