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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지시 받고 개똥쑥서 말라리아 치료제 찾아

중앙일보 2015.10.06 01:51 종합 1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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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지명된 중국 중의학연구원 투유유 교수. 2011년 9월 ‘노벨상 수상자 족집게’라 불리는 ‘라스커상’ 시상식 직후 미국 뉴욕에서 찍은 사진이다. [신화=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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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캠벨(左), 오무라 사토시(右)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말라리아 치료제와 기생충 구제약 개발에 각각 기여한 80대 과학자 셋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중국 중의학연구원 투유유(85·여) 교수와 아일랜드 출신의 약학자 윌리엄 캠벨(85) 미국 드루대 교수, 일본의 오무라 사토시(大村智·80) 기타자토(北里)대 명예교수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5일 발표했다. 이 위원회는 “수억 명의 삶을 바꾼 데 기여한 공로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노벨 생리의학상 중국 투유유
공동 수상자 캠벨·오무라

 투 교수는 아르테미시닌을 개발해 1990년대 말 이후 말라리아 퇴치에 기여했다. 화교가 아닌 중국 본토 출신 연구원이 노벨 과학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저장(浙江)성 출신으로 베이징 의학원 약학과를 졸업했다. 중국 언론은 “박사 학위와 서양 유학 경험도 없고 중국 과학계의 최고 호칭인 ‘원사’ 칭호도 없는 ‘삼무(三無)’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환호했다.

 투 교수가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에 나선 것은 67년 무렵 마오쩌둥 국가주석의 지시로 ‘프로젝트 523’에 참여하면서다. 그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약품에 주목했지만 실패를 이어가자 중국 전통 약재에 눈을 돌렸다. 그를 도운 것은 중국 최초의 임상구급 의학서인 『주후비급방』이었다. 동진 시대에 나온 8권의 약학서다. 그는 말라리아가 중국 고대부터 있던 병이라 고대 약학서에 처방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71년 투 교수는 약재로 쓰이는 개똥쑥에서 아르테미시닌을 찾아냈다. 연구를 진행할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기였다. 중국의 학술 연구에선 암흑기와 같은 시기라 그 의미는 더 컸다.

 투 교수는 77년 임상시험에 스스로 첫 실험 대상으로 나섰다. “내가 연구를 책임지고 있으니까”라는 게 이유였다. 이후 중국 전통 의약과 서양 약학을 결합한 연구를 해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말라리아에 감염돼 사망한 사람만 100만 명에 달한다. 아르테미시닌이 나오기 전에도 말라리아 치료제가 있었지만 부작용이 심했다.

  2011년 미국 ‘임상연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말라리아 특효약을 발견한 순간 국제 과학계에서 중국 과학을 인정하게 됐다는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동안 노벨 생리의학상은 주로 서양 의학 연구자에게 수여됐다. 이 점에서 투 교수의 이번 수상은 동양 의학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천대 이영종(한의학과) 교수는 “한의학에서도 학질(말라리아)에 걸린 환자에겐 청호(개똥쑥)를 처방해 왔다”며 “동양 의학에서 오랜 임상을 통해 증명된 사실을 바탕으로 투 교수가 말라리아 퇴치약을 개발했고 이런 과학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윌리엄 캠벨 교수와 오무라 사토시 명예교수는 사상충(絲狀蟲) 구제약인 이베르멕틴 개발에 기여했다. 사상충은 아프리카의 강에 사는 기생충으로 사람의 몸으로 들어오면 눈을 멀게도 해 흔히 ‘리버 블라인드니스(river blindness)’라 불린다. 이베르멕틴은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에서 매년 2억 명에게 투여된다.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는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 3명에 이어 올해까지 총 23명(자연과학 분야는 20명)이다. 오무라 교수는 5일 NHK와 인터뷰에서 “흙 속의 미생물을 믿고 좋은 물질을 만드는 것이 제 일이다. 노벨상의 절반은 미생물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려대 천병철(감염내과) 교수는 “아르테미시닌과 이베르멕틴 모두 아프리카에서 많은 목숨을 구한 치료약”이라며 “그동안 분자생물학 연구자에게 상이 쏠렸다. 치료제 개발자가 상을 받은 것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백경란(감염내과) 교수는 “기생충 감염질환 치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이들”이라고 평가했다. 상금은 수상자 3명이 모두 합해 800만 크로나(약 11억원)를 받게 된다. 노벨 물리학상(6일), 화학상(7일), 평화상(9일), 경제학상(12일) 수상자도 차례대로 발표될 예정이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강기헌·이에스더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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