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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화요일] 바이러스 음모론의 진실

중앙일보 2015.10.06 01:28 종합 20면 지면보기
2009년 신종플루(H1N1) 대유행 때와 판박이였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 당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게시판에선 다국적 제약회사 등이 메르스 바이러스를 합성해 퍼뜨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세계적인 고민거리가 된 지난해도 이런 음모론이 어김 없이 등장했다. 마거릿 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음모론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3일 메르스 마지막 환자가 퇴원하면서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하지만 뒷맛이 깔끔하진 않다. 바이러스를 제조했다는 음모론은 고개를 숙였을 뿐 언제라도 살아나올 기세다. 그렇다면 인류는 바이러스 합성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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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제약사가 약 팔려고 바이러스 만들었다?
음모론에 맞선 과학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다만 여기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우선 설계도, 다시 말해 유전 정보가 있어야 한다. 설계도가 없다면 바이러스 합성은 불가능하다. 고려대 의대 박만성(바이러스학) 교수는 “바이러스 합성은 현재 기술로 가능하지만 유전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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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재난 영화 ‘아웃브레이크’.

 신종플루는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의 변종이다. 신종플루가 전 세계를 뒤덮은 2009년엔 바이러스의 설계도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과학계에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형과 관련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요시히로 가와오카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재조합해 치사율을 50%로 높인 변종 바이러스를 2012년 만들어 냈다.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는 이례적으로 요시히로 교수의 논문 게재 여부를 놓고 회의를 열었다. 생물학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네이처 편집자들은 “백신 연구에 도움이 되고 고병원성 연구 시설이 갖춰진 장소에서만 바이러스 합성 가능하다”고 결론 내리고 게재를 결정했다. 그는 지난해 1918년 창궐해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합성했다고 발표해 우려 섞인 주목을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의공학연구소 안형준 책임연구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종을 만들어 내는 건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2012년 최초로 발견된 뒤 유전 정보 분석이 끝났다. 현재 기술로 메르스 바이러스의 실험실 합성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미국 정보기관 CIA가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음모론에 휩싸인 에볼라와 에이즈 바이러스 역시 마찬가지다. 에볼라는 70년대 중반 처음 발견됐고, 에이즈는 80년대 학회에 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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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유전자 정보가 없다면 메르스나 에볼라 등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설계도가 없는 시절에 새로운 바이러스를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정답은 불가능이다.

 음모론자들이 “CIA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에볼라 바이러스는 RNA형으로서 유전자 정보량은 19Kb(킬로베이스)다. 킬로베이스는 유전자 정보량을 측정하는 단위로 염기수 1000개를 말한다. 염기 1000개가 연결돼 있으면 1Kb라고 나타내기 때문에 19Kb는 염기 1만9000개가 연결돼 있는 것을 말한다. 염기 1만9000개를 정확히 순서대로 이어 붙여야 에볼라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김미현 바이러스시험연구센터장은 “염기를 이어 붙여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드는 건 우주에서 바늘 찾기같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량은 10Kb이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을 일으키는 사스(SARS) 바이러스는 29Kb다. 올해 초 한바탕 홍역을 치른 메르스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량은 30Kb다. 염기 3만 개를 순서대로 이어 붙여야 메르스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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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전제도 있다. 바이러스 합성을 위해선 특수한 연구시설이 있어야 한다. 고병원성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선 생물안전 3등급(BL3) 이상의 연구시설이 필요하다. 바이러스가 외부로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공기를 태워 내보내는 특수 시설이다. 고려대 박만성 교수는 “바이러스 합성 과정에선 감염력을 상실한 결손 바이러스가 생산되는 등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바이러스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단순히 염기를 어이 붙이는 작업만으로는 장비가 갖춰져 있더라도 바이러스 합성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CIA가 아프리카 인구 조절을 위해 에볼라와 에이즈 바이러스를 최초로 만들어 퍼뜨렸다”는 음모론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바이러스·세균=우선 크기가 다르다. 일반적인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1000배 정도 작다. 바이러스는 120여 년 전 담배 잎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찾아냈다. 1892년 러시아 과학자 드미트리 이반노프스키는 담배모자이크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다 세균보다 작은 존재를 확인했다. 세균 크기 물질을 걸러낼 수 있는 여과지를 통해서도 담배모자이크병 확산을 막을 순 없었다. 그는 세균 여과기를 통과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 ‘여과성병원체’란 이름을 붙였다. 이후 1930년대 무렵 바이러스가 단백질과 유전자로 이뤄진 단순한 형태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바이러스는 세균이나 세포 등 숙주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유전 물질만 지니고 있을 뿐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포 및 세균 내부로 침투해 각종 효소와 에너지원을 이용해 복제한다. 이런 이유로 에이즈 바이러스는 면역을 담당하고 있는 T세포를 숙주로 삼기 때문에 감염되면 면역 기능이 약해져 바이러스가 아닌 폐렴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바이러스는 유전 정보 종류에 따라 DNA와 RNA로 나뉜다.


염기=유전자를 구성하는 기본 물질인 핵산을 말한다. DNA는 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의 네 가지 염기가 조합돼 만들어진다. 인간 유전자는 이들 네 종류의 염기 30억 개가 일정한 순서로 늘어서 있다. 염기 서열에 따라 키와 피부색 등 생물학적 특성이 결정된다.


합성생물학=실험실에서 유전 정보를 이어 붙여 생명체를 만드는 학문이다. 1989년 미국 시나이 병원 피터 팔레스 교수 등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를 바꿔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다는 논문에서 출발했다. 이후 99년 독감의 원인이 되는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 합성에 성공했고, 2002년 미국 뉴욕주립대 에카드 위머 교수 연구팀은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합성해 쥐에게 주입해 바이러스 생존을 확인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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