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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학교는 왜 달라지지 않는가

중앙일보 2015.10.06 00:20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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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

고등학교 때 미술선생님 한 분이 학교 근처 백화점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다. 미술 시간에 “엄마들 많이 오시라”는 말을 남겼고, 얼마 후 전시 작품이 ‘완판’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난 그 전시 얘기를 워킹맘이었던 엄마에게 전하지 않았고, 당연히 엄마는 완판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다. 얼마 후 내 눈에도 꽤 근사한, 내신성적에 포함되는 미술 과제물을 제출했을 때 그 선생님은 “네가 했다고 믿기 어렵다”며 점수를 주지 않았다. 뭔가 심증이 가는 부당한 일이었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불이익만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내가 겪은 학교는 이랬다. 좋은 추억도 많지만 이런 언짢은 기억도 적지 않았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게 80년대라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땐 그랬지.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는 어린 나이에 벌써 “부당하다”는 말을 내뱉는 날이 많았다. 때론 아이가 오해하거나 상황을 잘못 이해해서이기도 했지만, 누가 봐도 명백하게 부당한 경우도 많았다. 대개는 물적·심적으로 학교에 기여하기 어려운 바쁜 워킹맘을 엄마로 둔 게 문제였다.

 그럴 땐 아이에게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불과한 아이를 앞에 앉혀 두고 내가 고작 한 말이라곤 “세상은 원래 공정하지 않아”가 전부였다. “그런 일은 그냥 흘려보내. 너만 잘하면 돼. 세상은 원래 그래.”

 가혹하지만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믿어 왔는데, 요즘 언론에 등장하는 온갖 괴상한 학교 추문을 접할 때마다 마치 내가 공범인 것 같아 창피하고 또 화가 난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유독 학교만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건 다들 나처럼 “자식을 ‘인질’로 둔 마당에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잘못된 관행이나 부당함을 묵인해 왔기 때문인 것 같아서 말이다.

 얼마 전 한 공립 고등학교 성추행 사건 때도 그랬듯이 이번 충암고의 급식비 횡령 의혹이 불거지자 이 학교 교사는 “터질 게 터졌다”고 말했다. 그렇다. 사실 아무도 모르는 새 갑자기 사달이 나는 경우는 없다. 곪을 대로 곪은 다음 터질 게 터지고서야 뒷북을 친다.

 결국 세상에 드러나는 악행을 보며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의 무게를 다시 한번 느낀다. 그런데 많은 이가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다 겪고 나서야 오는 것이라면 그런 사필귀정이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다.

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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