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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마디] "앞으로 넌 펜으로 힘껏 북을 쳐라. 양철북, 이름대로 그게 니 팔자다. 단, 글을 쓸 때는 항상 연필을 뾰족하게 깎아서 쓰고."

중앙일보 2015.10.05 15:17

"앞으로 넌 펜으로 힘껏 북을 쳐라. 양철북, 이름대로 그게 니 팔자다. 단, 글을 쓸 때는 항상 연필을 뾰족하게 깎아서 쓰고."
시인 이산하, 전면 개작한 자전 성장소설 『양철북』중에서

이산하(55)는 1980년 대 초, 은폐된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 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시대의 횃불이 됐던 시인입니다. 군사독재 시대에 40년 넘게 숨겨온 학살사건을 시로 쓴다는 일은 폭탄을 안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일에 다름 아니었지요. 시인은 이 작업을 "시가 아니라 긴 비명이자 통곡"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의 영혼이 '한라산'을 쓸 때만큼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정직하고 가장 지극한 영혼이었음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원고를 넘기면서 출판사 대표에게 딱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이거, 내 모가지 걸고 쓴 거니까 잘 지키시오."
『양철북』은 이 시인이 소년 시절, 한 의식 있는 젊은 스님의 인도로 지리산의 여러 산사를 순례하며 화두를 찾아 고행하는 여러 스님들의 가르침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어찌보면 '한라산'을 쓸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른 시절, 깨달음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이문재 시인은 이 소설이 말하려는 바가 '자기 이름 찾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진정한 자기 이름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소년을 이끌던 법운 스님의 말씀이야말로 잊지 말아야 할 인간의 화두가 되겠지요. "네가 네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한 아무도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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