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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빙수 맛있게 만들었다고 … 회장님이 2000만원 주셨네요

중앙일보 2015.10.05 00:01 경제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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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중구 세븐일레븐 중국대사관점에서 장채윤 대리가 이달 출시하는 고구마우유 등 자신이 개발한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테이블 왼쪽부터 코코넛바나나우유, 수박우유, 대용량 요구르트, 우유·초코빙수, 마카롱 아이스크림, 망고바. [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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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에게 ?밸류 챔피언? 대상 상금 2000만원을 받는 장채윤 세븐일레븐 대리.

생애 첫 개발 제품인 우유빙수로 지난해 여름 아이스크림 판매 1위, 겨울에는 마카롱 아이스크림으로 또다시 판매 1위, 올 여름 수박우유로 가공우유 판매 1위.

[2015 챌린저 & 체인저] <24> 줄줄이 히트상품 낸 입사 5년차 … 장채윤 세븐일레븐 대리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입사 5년차 상품기획자(MD) 장채윤(29·여) 대리가 내놓은 히트 상품들이다. 장 대리는 회사에서 유명인사다. 사원일 때 개발한 우유빙수의 폭발적인 성공으로 올 4월 롯데그룹 전체에서 ‘밸류 챔피언’ 대상으로 선발됐다. 역대 최연소·최하직급, 여성 첫 수상 등 수식어도 여럿 붙었다. 신동빈(60) 롯데 회장이 직접 2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하고 함께 식사까지 했다. <본지 2015년 4월 28일자 B4면>

 회사원, 그 중에서도 나이가 어리고 직급이 낮은 경우 조직 내에서 운신의 폭이 좁다. 여성에게도 아직 제약이 많다. ‘어린 여자 사원’이라는 삼중고(三重苦)를 뚫고 큰 성과를 낸 장 대리가 챌린저·체인저로 주목받는 이유다.

 장 대리가 우유빙수 개발에 뛰어든 건 2013년. 매장 현장 업무를 마치고 처음으로 MD를 맡아 아이스크림 담당이 됐을 때다. 당시 편의점 빙수는 꽝꽝 얼린 얼음에 미숫가루와 팥 등을 넣은 형태 밖에 없었다. 장 대리는 “20년 넘게 한 종류 밖에 없었으니까 새로운 제품이 나와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컵빙수가 비싸니 매출 올리기 좋겠다는 욕심도 냈다. 카페처럼 부드러운 맛과 질감의 우유빙수가 좋겠다 싶었다. 가게에서 만드는 걸 슬쩍 보니 우유 얼음을 갈아서 내놓을 뿐인 것 같아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롯데중앙연구소에 제품 개발이 가능한지 문의했더니 “편의점용 제품도 만들 수 있지만, 기존 빙수 생산 라인에 수억원대 추가 설비를 끼워야만 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아이스크림 관련 제조업체들을 다 만나보고, 일본 세븐일레븐 관계자에게까지 문의했지만 ‘추가 설비’ 밖에 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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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용 팥빙수 1위 업체인 롯데제과를 찾아가 설비 투자를 문의했다. 단칼에 거절당했다. 기존 물량만으로도 한여름에는 생산 라인이 과열돼서 기계가 멈출 정도로 주문이 밀려든다는 것이었다. 기존 생산라인을 풀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우유빙수를 생산하려면 아예 새로 기계를 들여와야 한다고 했다. 생산 업체가 거절했으니 방법이 없었다.

 “롯데푸드를 찾아갔어요. 옛 롯데삼강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컵빙수 생산 시설은 있었지만 시장 점유율은 낮았거든요.”

 마침 롯데푸드도 롯데제과를 뛰어넘을 돌파구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새 설비에 투자하면 쉬고 있는 생산라인을 돌릴 수 있다” “편의점 자체브랜드(PB) 상품이니 고정 수요가 확실하다”는 설득이 통했다. 하지만 ‘기존에 없던 제품’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생산 설비를 장착하는 일정이 계속 늦어졌다. 고운 얼음은 팥 무게를 못 이기고 자꾸만 푹 꺼졌다. 롯데푸드 측과 300번 넘게 만나서 고민한 끝에 지난해 4월 말 ‘우유빙수 설’이 세상에 나왔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파르페 등을 포함해 컵 아이스크림 시장의 60%를 넘게 차지했던 롯데제과 컵빙수를 순식간에 젖혔다. 지금은 우유빙수 점유율이 60%가 넘는다. 기존 컵빙수는 점유율이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우유빙수의 활약으로 컵 아이스크림 전체 매출도 2.3배로 늘었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바로 롯데푸드와 함께 겨울용 상품 개발에 들어갔다. 마카롱 사이에 아이스크림을 끼운 ‘마카롱 아이스크림’이었다. 역시 기존에 없던 제품이다 보니 공정 하나하나 다시 준비해야 했다. 결과는 겨울 아이스크림 1위였다. 우유빙수를 놓친 뒤 “우리와도 함께 하자”고 찾아온 롯데제과와는 올 봄 ‘가나바’를 히트시켰다. 역시 기존에 없던 밀크초코무스-화이트초콜릿-다크초콜렛 3중 구조로 만들다 보니 새 공정을 추가해야했다. 생산업체 측이 망설이자 “자꾸 할 수 있는 것만 하다 보면 그 매출이 그 매출이라고 이미 느끼지 않으셨나요”라며 밀어붙여 성공했다.

 아이스크림 MD 일이 익숙해질 무렵인 올 4월 유음료 담당 MD로 발령받았다. 당황했다. 뭘 내놓아야 할까 고민만 하다가 쉽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여름에 인기 있는 수박 화채처럼 수박맛 우유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수박맛을 잘 내는 업체도 찾았다. 쉽게 만들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수박맛 우유가 괜히 없었던 게 아니더라고요. 수박 과육에 물이 많아서 착즙하고 나서 변질이 잘 됐어요. 과육이 곱다 보니 찌꺼기가 자꾸 거름망에 끼고요.”

 페트병 대신 우유팩 제품을 고집하는 바람에 생산은 자꾸 늦춰졌다. “딸기·초콜릿 우유 같은 가공 우유는 중고생이 주고객이거든요. 아무래도 팩이 페트병보다 싸니까요.”

페트병은 병 입구에서 강하게 분사해 넣으면서 수박 찌꺼기를 걸러낼 수 있지만, 우유팩은 찌꺼기가 팩 입구에 튀면 안되기 때문에 미리부터 곱게 걸러 넣어야 하는 것이 숙제였다.

 금요일 오후 시제품 생산에서 거름망이 또 막혔다는 얘기를 듣고는 토요일 오전 9시에 경기도 기흥으로 찾아가 우유 생산업체 연구원을 만났다. “한 나절이라도 빨리 뭐가 문제인지 알아야 개발 시간을 단축시키니까요.” 여름 가기 전에 내놓아야 한다고 발을 동동 굴렸던 ‘고창 수박우유’는 7월 30일에야 겨우 나왔다. 판매 열흘만에 가공우유 분야 1위에 올랐다. 여름용 상품으로 개발했지만 크게 인기를 모으자 겨울철에도 하우스 수박을 이용해 생산할 예정이다.

 장 대리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편은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법한, 주변에서 한 번쯤 본 적은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제품화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끈질기게 문제를 해결해가며 현실로 만들었다. 스펙도 화려하지 않다. 부천상동고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학점은 4.5만점에 3점대. 롯데와 함께 CJ·신세계에도 지원했지만 서류전형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장 대리처럼 되고 싶은 신입사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뭘 하든 결국 본인에게 남는다는 생각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자꾸 사고가 났기 때문에 공장을 들여다보면서 자세한 것까지 다 배울 수 있었거든요. 점포 근무도 ‘남의 돈으로 내 장사’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에요. 물건 발주하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집에 가는 게 다가 아니라 하다못해 어떤 걸레 브랜드가 좋은지, 손님이 뭘 좋아하는지 배울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요.”

글=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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