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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탄사격장 도주범 "총을 갖고 우체국을 털어 식당을 차릴 돈을 마련하려고 했다"

중앙일보 2015.10.0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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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 실탄을 쏘는 사격장에는 여성 주인 전모(46·여)씨 혼자였다. 그곳에 키 178㎝인 건장한 남성 홍모(29)씨가 들어왔다. 규정에 따라 총을 쏘기 전에 적은 이름과 연락처는 모두 가짜였다. 총을 쏘던 홍씨는 갑자기 흉기를 꺼내 주인을 찔러 쓰러뜨렸다. 그러곤 45구경(총알 지름 1.14㎝) 권총 1정과 실탄 19발을 챙겼다. 권총은 쇠사슬에 고리로 연결돼 있었지만, 자물쇠가 달린 것이 아니라 등산용 고리처럼 손으로 특정부분을 누르면 풀리는 고리여서 간단히 떼어낼 수 있었다.

지난 3일 오전 9시30분 부산시 서면실탄사격장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 실탄사격장 안정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또 그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다보니 일어난 사건이었다. 범인 홍씨는 사격장에서 권총과 실탄을 챙긴 뒤 약 3시간에 걸쳐 도심을 가로질러 6㎞가량 떨어진 부산지방병무청까지 걸어갔다. 그 다음엔 택시를 타고 부산시 기장군쪽으로 이동하다가 경찰 검문에 붙잡혔다. 범행 4시간 만의 일이었다. 그 사이 총기를 난사했다면 인명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홍씨는 경찰에서 “총을 갖고 우체국을 털어 식당을 차릴 돈을 마련하려고 했다”고 진물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행법(사격 및 사격장 안전 관리에 관한 법률 등)상 사격장이 지켜야하는 안전 기준은 영업시간에 주인을 포함해 관리인이 2명 이상 있어야 하고, 사격을 할 때 고객 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정도다.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 규정이 없다. 사건 당시에도 사격장에는 주인 혼자 뿐이었다. 남성 관리자 1명이 더 있지만 출근 전이었다. 홍씨는 경찰에서 “지난 1일에도 같은 사격장에 갔으나 당시는 남성 관리인이 함께 있어 범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격 전에 적는 신원을 확인할 의무도 없다. 신승균 영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원을 가짜로 적어 범인이 누구인지 바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에 총기 사고가 날 수도 있다”며 “사격장 방문객에 대해 관할 경찰 지구대에 신원조회를 요청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사격할 때도 권총을 사슬 등에 자물쇠로 묶어놓아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권총을 떼어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오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총구가 앞쪽을 향하게끔 등산용 밧줄 고리 정도로 사슬에 연결하는 게 보통이다. 사격자가 쉽게 권총을 풀어낼 수 있는 구조다. 실제 서면실탄사격장 사건 직후 경찰이 전국 14곳 실탄사격장을 모두 조사한 결과 9곳이 이런 식이었다.

경찰은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 경찰청은 4일 “사격장 관리자를 포함해 2명 이상이 근무하는 상태에서만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총기는 사격자가 떼어갈 수 없도록 묶어놓는 등 규정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또 의무적으로 신분증을 대조해 신원을 확인토록 하기로 했다.

사격장 총기 탈취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10월 서울 양천구의 실내사격장에서는 광고 회사 직원을 가장한 20대 남성이 “권총과 실탄을 보여달라”고 한 뒤 업주가 물을 가지러 간 사이 권총 1정과 실탄 20발을 훔쳐 달아났다. 그는 이들 뒤 강남구의 한 은행 PB센터에 침입해 현금 1억5000만원을 훔친 후 경찰에 붙잡혔다. 2005년에는 부산의 한 실내사격장 직원이 실탄 2발을 가방에 넣은 채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려다가 적발됐다.

부산=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사진 부산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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