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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의식주 공짜' 소록도병원 들어가려 뒷돈까지

중앙일보 2015.10.0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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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소록도병원에 ‘가짜 한센병 환자’가 입원해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일부 환자들이 입원 관련 서류를 위조해주는 대가로 원생자치회 간부들에게 뒷돈을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전남 고흥경찰서는 4일 돈을 받고 소록도병원 입원 서류를 위조한 혐의(배임수재 및 사문서 위조·행사)로 소록도병원 원생자치회 전 회장 김모(65)씨·안모(74)씨와 전 총무 권모(46)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이들에게 돈을 건네고 소록도병원에 입원한 최모(72)씨 등 환자 15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자치회 간부들은 2010~2013년 최씨 등에게 1인당 20만~200만원씩 받고 병력지를 위조해준 혐의다. 병력지는 과거에 한센병을 앓았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로, 소록도병원에 입원하려면 병력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경찰 조사 결과 권씨 등은 식사비 명목 등으로 돈을 받은 뒤 허위 병력지를 자필로 작성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기존 환자들로 구성된 원생자치회는 병원 측으로부터 새 환자를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권한을 사실상 위임받아 행사해 왔다.

이와 관련, 전 회장 김씨는 “돈 거래는 물론 병력지 위조 사실도 몰랐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최씨 등이 이처럼 소록도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뒷돈까지 건넨 것은 한번 들어가면 평생 ‘공짜 의식주’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주거공간은 물론 매달 생활비 4만~5만원과 쌀·고기·생선 등 식재료를 제공받는다. 경찰은 현재 최씨 등 환자 4명에게 “돈을 주고 병력지를 위조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며, 나머지 11명도 이런 방식으로 입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위조된 병력지로 입원한 최씨 등이 과거에 한센병을 앓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한센병이 완치된 뒤에는 각종 검사에서 병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번에 입건된 환자들도 “예전에 한센병 환자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병원에 가지 않다 보니 기록이 없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입원을 위해 병력지를 새로 쓰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 8월 원생자치회장 선거를 앞두고 김씨와 안씨가 병력지 위조 등 서로의 내부 비리를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원생자치회장이 되면 매년 5억여원의 국비 예산을 관리·집행할 수 있고 별도의 집무실도 제공받는다.

경찰은 소록도병원 원장과 실무자들도 소환 조사한 뒤 환자 입원 절차를 소홀히 관리·감독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직무유기 등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고흥=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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