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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바티칸 고위 성직자 "나는 게이" 커밍아웃

중앙일보 2015.10.04 17:32
 
4일부터 3주간 바티칸에선 시노드(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열린다. 이혼·재혼·동성애 등 가족 문제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정하기 위해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을 규정할 수도 있는 중대 순간이다.

이를 하루 앞둔 3일 바티칸의 고위 성직자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하는 '커밍아웃'을 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일하는 폴란드 출신 크리스토프 올라프 카람사 신부(43)다. 그는 이날 이탈리아·폴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톨릭 교회가 동성애 문제에 대해 뒷걸음치는 태도에 도전하기 위해서”라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포용적 태도 주문에 따라 지난해 10월 열린 시노드에서 “교회는 (이혼한 이들이라도) 한계나 단점보단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미완성이고 불완전한 방식으로 삶을 사는 이들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돌아봐야 한다” “동성 커플도 하나의 가족 형태로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내용의 중간 보고서가 나왔다. 하지만 보수파의 반발로 최종 문헌에서 해당 구절이 모두 사라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패배자가 됐다”는 평가였다.

지난해 시노드가 180여 명이 함께한 예선 격이었다면 이번엔 300여 명이 참석한 총회로 본선 격이다. 카람사 신부는 지난해의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진보 쪽에 힘을 보태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온 평생을 금욕생활만 하도록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라며 “교회가 (동성애 문제에) 눈을 떠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제들 상당수가 동성애자인데 교회는 여전히 동성애에 대해 광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고도 했다. 동성 파트너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곤 “모든 동성애자들은 신의 자식이다. 이 또한 신의 의지”란 말도 했다.

바티칸 분위기는 달랐다. 당장 교황 측이 불쾌해 했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은 “시노드 총회에 적절하지 않은 압력을 주려는 것”이라면서 “카람사 신부가 더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제직에서도 파면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 방송은 “시노드의 당초 원만한 진행을 원했던 바티칸의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보혁(保革) 대결이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 사회의 동성애 논쟁 속으로도 끌려들어갔다. 지난 달 하순 미국 방문 중 만난 인사들을 두고서다.

먼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부한 미국 켄터키 주 로완카운티 법원 서기 법원 킴 데이비스를 만난 사실이 공개됐다. 데이비스가 교황으로부터 묵주와 함께 “강해지라”는 격려를 받았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졌다. 보수 쪽에선 교황이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환영한 데 반해 진보 쪽에서는 과연 교황이 데이비스 사건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곧 프란치스코 교황이 60년대 가톨릭 고교에서 사제로 일할 때 가르쳤던 제자로 동성애자인 야요 그라시가 나섰다. 교황이 데이비스를 만나기 전날 자신과 자신의 동성 배우자를 만난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떤 사람인지 진실을 알려주고자 만남을 언론에 공개한다”며 “사제로서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지만, 교황은 또한 인간으로서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성 정체성이 다른 이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열린 마음을 품고 계신다”고 주장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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