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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감정 조장·증폭 … 당 안 보는 유권자 점점 늘어”

중앙선데이 2015.10.04 02:15 447호 6면 지면보기
선거철만 되면 대한민국은 남북이 아닌 동서 분단국가가 된다. 영호남을 가른 지역 구도의 덫에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영호남 지역감정이 우리나라 지역주의 문제의 정점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 전문가들은 “지역감정이 제도적으로 확대됐다”(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선거가 지역감정을 증폭시킨다”(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고들 주장하지만, 엄연한 동서 분단의 현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모지에서 꽃을 피운 사례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조경태 의원은 당내에서 유일한 ‘부산 3선’ 의원이며,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20년 만에 전남에서 여당의 깃발을 꽂았다. 비례대표인 새정치연합 홍의락(대구 북구을 지역위원장) 의원과 새누리당 주영순(전남 무안-신안 당협위원장) 의원도 각각 적지에서 ‘제2의 이정현’을 꿈꾸고 있다. 이들이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지역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호남 출신 새누리당’과 ‘영남 출신 새정치연합’이란 딱지를 달고 불모지에서 헤매며 느꼈던 ‘감정’을 통해 우리의 정치 현실을 진단해본다.



압도적인 지역정당 분위기가 판을 치는 지역구에서 표밭 개척에 나선 이들은 지역구 현장에 가보면 아직도 지역감정은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지역감정’에선 몇 가지 공통적인 키워드가 발견된다. ‘편견’과 ‘변화’, ‘조장’과 ‘책임’이 바로 그것이다. 서로에 대한 ‘편견’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감정이 실제보다 정치에 의해 ‘조장’된 측면이 큰 만큼 이를 해소할 ‘책임’도 정치권에 있다는 지적도 공통적으로 제기됐다. 지역 구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열쇠는 ‘제도’의 문제를 넘어 양당의 기득권 포기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진정성 보여주면 보는 눈 달라져”불모지 개척에 나선 정치인들에게 가장 큰 적은 ‘편견’이었다. 개인
의 능력이 아닌 소속 정당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편견의 벽에 가장 먼저 부닥쳤다는 것이다. 조경태 의원은 “8년 동안 원외위원장을 하던 시절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당이 그래서 되겠냐’는 식으로 평가절하당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대구지역 표심 공략에 나섰던 홍의락 의원 역시 “여긴 호남이 싫은 게 아니라 야당이면 무조건 싫다는 곳이다. 야당을 싫어 하는 DNA가 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토로했다. 각고 끝에 당선된 이정현 의원도 “여당 간판으로 처음 출마했을 때가 1995년인데 그때 얼마나 어려웠는지 (힘들었던 일을) 생각하는 것조차도 끔찍할 정도”라고 회고했다.


[한국의 지역주의] 적지서 지역감정과 맞선 여야 4인

조경태·이정현 의원이 이런 지역주의 편견을 극복한 성공 비결로 꼽은 것은 ‘진정성’이다. 조 의원은 “얼마나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하느냐에 따라 지역감정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도 “어려운 지역이기 때문에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정성을 보이고 몸 사리지 않고 몇 배나 더 심혈을 기울인 것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정치적 지역감정 최악 고비는 넘어”
이들이 지역에서 체감하고 있는 것은 이런 편견이나 지역감정이 분명히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의 당선은 이런 ‘변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조 의원은 이에 대해 “예전에는 감정적으로 투표했다면 지금은 이성적인 투표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출신보다는 정책이나 정치 이념을 지지하는 성향의 유권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일 잘하는 사람, 열심히 하는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조경태), “야당 국회의원을 낯설어 했던 대구에서도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홍의락), “바꿔서 일할 수 있는 일꾼을 뽑아야지, 당은 필요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주영순), “정치적 지역감정은 이제 고비를 넘기고 사라지고 있다”(이정현)고 평가했다. 특히 이 의원은 이런 변화에 대해 “과거에 비해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소통이 늘어난데다 수평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많은 사람이 지역감정이 얼마나 허구였는지 깨닫게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묻지마 투표에서 고르는 투표로 부전승 선거에서 치열한 경쟁의 선거로 변화시킨 것은 바로 유권자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의원도 “현장에서 만나는 유권자들마다 (이정현 당선으로) 호남이 바뀌었는데 대구도 바뀌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더라”며 TK의 달라진 민심을 전했다.



지역감정 뿌리엔 다양한 해석
지역감정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지역감정을 촉발한 구체적인 계기에 대해서는 저마다 주장이 달랐지만, 정치권이 지역감정을 ‘조장’하거나 증폭했다는 데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분열의 정치(조경태), 선동정치(주영순)를 펼친 3김 때문에 감정이 악화됐다”에서 “전두환 정권 때 5·18을 합리화하려고 호남 사람들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를 퍼뜨린 것이 시작”(홍의락)이라는 의견들이 나왔다. 60년대에는 영남 출신 박정희 대통령을 호남에서 만들어준데다 부마사태가 있었던 79년 때까지만 해도 지역감정이란 말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은 “지역감정이 언제부터 시작됐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이 상처가 너무 오랫동안 다양하게 쌓여왔다”며 “그것을 밝히려는 시도가 또 다른 문제를 키울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운 ‘차이’를 감정으로 부풀리고 대립으로 조장해온 게 바로 정치였다”고 꼬집었다.



“선거제도 넘어선 문제”이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지역감정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해결될까. 새로운 선거제도로 바꾸면 될 일일까. 네 의원 모두 “지역감정 해소는 선거제도를 넘어선 문제”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제도 탓은 핑계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석패율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은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한 제도라기보다는 기존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누리려는 하나의 꼼수”라며 “오히려 비례대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도 “선거제도를 통해 문제를 풀려는 건 하책 중의 하책”이라고 지적했다. “지역감정을 그렇게 피상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게 아니라 사회 분위기나 정치 문화를 근본적으로 고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구 당선 경험이 없는 홍 의원과 주 의원은 각각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도의 도입을 찬성했다. 주 의원은 “새누리당이 영남에서 몇 석 잃는 한이 있더라도 영호남의 화합과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호남에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최소한 4~5명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세 지역에 후보 안 내는 건 무책임”
지역감정을 해소할 ‘책임’은 정당에 있다는 게 이들이 말하는 결론이다. 정당의 기득권을 우선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약세지역에는 후보조차도 내지 않거나 모든 문제를 지역주의 탓으로만 돌리는 정당의 무책임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조 의원은 “결국 지역감정을 만든 장본인들이 정치인이고 그걸 악화시키는 것은 정당”이라며 “여야가 호남과 영남에서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의원은 “정당이 당리당략에 따라 서로 의석수만 의식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의원은 “대구를 흔히 새누리당의 본산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동안 야당이 제대로 된 후보를 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방치해왔다”고 꼬집었다. 그는 “새정치연합도 호남뿐 아니라 대구 정서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며 ▶당내 민주정책연구원 산하에 영남정책연구팀을 신설하고 ▶야당 내 4선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고향에서 출마하는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했다. 이 의원 역시 “여야가 이제부터라도 의식적으로 지역 구도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쏟아야 한다”며 “상대당 우세 지역에서 좋은 인재를 발굴해 적극 지원하는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내다 대구 동을 재·보선에 출마해 유승민 후보와 맞붙어 42.8%를 득표한 열린우리당의 이강철 후보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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