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만큼 동질적 사회 없어 … 지역주의는 만들어진 현실

중앙선데이 2015.10.04 02:09 447호 7면 지면보기
한국 정치의 지역주의에 대한 비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 유권자는 지역주의라는 비이성적 논리에 이끌려 투표한다. 대다수 정치인은 이를 이용한다. 그래서 선거만 하면 지역 분할 구도가 나타난다. 지역을 둘러싼 편견은 근대 이전 전통 사회에서부터 존재했으며, 이후에도 계속 강화되었다. 지역 갈등의 중심축은 영호남 갈등이며, 망국적 지역주의 때문에 정치발전이 안 되고 있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정당 체계가 계층이나 이념적 차이에 따라 재편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지역주의 때문이다. 지역주의의 극복 없이 정치발전은 생각하기도 어렵다. 지역주의는 망국적인 고질병이어서 개헌을 통한 권력 구조 개편과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과연 그럴까.



‘묘청의 난’ 이후 지역주의 운동 없어 우선 우리가 쉽게 언급하는 지역주의라는 용어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지역주의(Regionalism)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들이 공통의 이해관계와 상호 의존에 기초해 교류와 협력, 통합을 증진해가는 현상을 가리키는 국제정치 개념이다.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의 지역주의 탄생] 기원과 실체

다른 하나는 한 국가 내부에서 중심부 지역과 주변부 지역 간의 갈등에서 표출되는 지역주의다. 즉 ‘특정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일체감 내지 충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지역당 혹은 지역주의 정당이란 이들 지역공동체의 열망을 실현하려는 정치조직이다. 이들은 보통 분리 독립과 자치·분권을 추구한다. 그 밖에도 미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작은 주들에 부여된 비토권, 스위스와 같이 정부 형성에 4개 지역의 대표가 공동 통치자로 참여하는 협의체주의 등이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지역을 둘러싼 갈등은 이와 전혀 다르다. 한국은 ‘지역으로 분권화된 통치 구조’를 그 특징으로 하는 봉건제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고려시대 ‘묘청의 난’ 이후 단 한 번도 자치나 분리를 지향하는 지역주의 운동이 없었다.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자율적 문화 공동체를 유지해 왔던 지방을 강권적으로 통합해 지역 균열을 만들어냈던 서구와 달리, 한국의 경우는 근대 이전에 이미 강한 관료 체제를 통해 자율적 지역공동체의 기반을 없애고 민족의 실체적 요소들을 유지해왔다. 근대 이후에도 자율적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지역주의가 집단적 갈등 내지는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사례는 없다. 지역주의 강령을 갖는 지역당이 존재한 적은 더더욱 없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중앙을 향한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동원된다는 점에서 국가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일반적인 지역주의와 다르며, 때로 정권의 향배를 두고 격돌하는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누가 소외되고 누가 혜택을 받는가를 다투는 ‘여야 균열’의 다른 표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지역주의가 전통 사회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라거나, 서구의 다문화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지역주의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류다.



지금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지역주의는 근대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근대적 현상이다. 흔히 지역주의 하면 호남 차별을 떠올리며 박정희 정권 탄생 과정에서 비롯됐다고들 하나 그것 역시 착시다. 호남은 영남과 더불어 박정희 정권의 등장을 지지했던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에 대한 전북과 전남의 지지는 각각 54%, 62%였다.

정치인들은 지역주의를 이용해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했다. 호남 맹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과 부산·경남이 기반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7년 대선을 앞둔 10월 25일 한 행사장에서 서로 고개를 돌린 채 앉아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최종 실패한 직후다. [중앙포토]



지역 지배 엘리트가 유권자 감정 자극 오히려 자연스러워야 할 지역주의가 현재와 같은 혐오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87년 이후다. 지역주의가 ‘망국적 지역주의’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떠오르면서다. 당시의 논리는 이랬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당 체제다. 이는 ‘3김’이라고 하는 지역 지배 엘리트가 유권자의 지역감정을 경쟁적으로 자극해 만들어냈다. 지역주의는 출신 지역이 동일한 정치 엘리트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전근대적 의식 행태다. 3김은 유권자의 지역주의를 볼모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런 주장 자체가 모순된 건 아니다. 다만 다른 모든 문제를 뒤덮는, 핵심 의제로 설정됐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의 불행이 싹텄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망국적 지역주의론에선 권위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 민주화에 대한 기대나 고민은커녕 민주화한다고 해서 결국 지역주의의 혼란만 있지 않느냐 하는 식이며, 야당 지도자를 추종해봤자 지역감정만 자극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극복하고 청산해야 될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문화를 지역주의로 교묘히 물타기한 셈이다.



지역이라는 차원으로만 보면 한국은 세계에서 지역 간 차이가 가장 적은 매우 동질적인 나라다. 인종·언어·문화·종교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 격차 역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따라서 세계에서 지역 갈등이 가장 심한 것처럼 과장하면서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것만큼 공허한 것은 없다.



정당들의 지지 기반이 지역이라는 변인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된 것도 선거 경쟁만 개방되었을 뿐 권위주의하에서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과의 거리에 의해 과도하게 좌우되는 분배 구조, 그것의 공간적 특성이라 할 수도권으로 초집중화된 사회구조, 최고 학벌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 카르텔 구조, 내용 없이 다투기만 하는 양당 체제 등이다. 한국의 지역주의와 지역 구도는 이런 구조와 조건들 때문에 만들어지고 지속되어온 것뿐이다.



실업자·이주노동자 차별이 더 문제 87년 이후 지역주의는 사실 반호남주의에 기반해온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10년의 정부가 호남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면서 반호남 지역주의는 더 이상 한국 정치가 해결해야 할 중심 문제의 지위에서 벗어나게 됐다.



지역주의 때문에 아무것도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은 이젠 절제되었으면 한다. 적어도 좀 다르게 접근했으면 한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나 도전 세력에 가혹한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적 차별의 구조 일반으로 문제의식을 넓히는 데 있다. 호남 차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실업자와 비정규직, 조선족과 이주노동자 등 우리 사회 최저층을 이루고 있는 가난한 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지역주의 문제는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자체로 현실을 못 보게 만드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한국 정치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문제를 달리 보면 잘못은 지역주의 때문이 아니라 지역주의라는 폐해를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구조적 조건들과, 이를 이용해 지역주의적 해석틀을 동원해온 세력들에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단언컨대 지역주의는 해악이 아니다. 만들어진 현실일 뿐이다.



 



 



박상훈 서울대 경영학 학사, 고려대 정치학 박사. 2007년부터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 후마니타스의 대표를 맡아 오다 지금은 글쓰기와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들어진 현실』 『정치의 발견』 『정당의 발견』 등이 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