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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잔수 右후닝 빠진 정상회담은 ‘정식’ 아니라는 뜻

중앙선데이 2015.10.04 01:54 447호 11면 지면보기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시애틀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한 포럼에서 자신의 왼쪽에 리잔수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 오른쪽에 왕후닝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을 배석시킨 채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중국 공산당에는 공식 서열이 있다. 서열 1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필두로 한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과 25명(상무위원 포함)의 정치국원, 205명(정치국원 포함)의 중앙위원이 피라미드식 권력구조를 이룬다. 예전 같으면 당내 서열은 곧바로 권력 서열이었다. 하지만 시진핑 체제에선 이런 등식이 깨지고 있다. 지금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중국의 2인자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 주석의 1인 권력 체제가 강화되면서 리 총리의 위상은 권력자라기보다 행정가로 굳어지고 있다. 혹자는 공식 서열 6위인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를 실질적 권력 2인자로 꼽기도 한다. 반부패 캠페인을 주도하며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그림자 수행’ 두 남자의 정체는

절대권력자 시 주석과의 거리나 친소관계란 점에서 접근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24시간 시 주석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수시로 대화를 나누는 측근 중의 측근이라면 오히려 더 큰 발언권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어서다. 그런 점에선 ‘좌(左)잔수, 우(右)후닝’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백악관에서 지난달 25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리잔수 중앙판공청 주임(왼쪽에서 넷째)과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왼쪽에서 둘째)이 시진핑 국가주석을 좌우에서 보필하고 있다. [AP=뉴시스]



미·중, 한·중 정상회담 때 좌우에 배석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선 시 주석의 오른쪽엔 왕후닝(王?寧·60) 중국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 왼쪽에는 리잔수(栗戰書·65) 당 중앙판공청 주임이 자리를 잡았다. 그 너머로 왕이(王毅) 외교부장, 가오후청(高虎城) 상무부장이 앉았다. 이러한 배치는 지난달 2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때와 꼭 닮았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참석자의 면면은 물론 자리 위치까지 변함이 없다.



시 주석이 참석하는 거의 모든 정상회담에서 이런 자리 배치는 고정된 것이다. 어느 누구든 국가 정상은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만족스러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정상회담 석상에서 좌우에 앉히는 법이다. 상대방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리와 왕 두 사람은 시 주석의 신임이 가장 두터운 측근 중의 측근이다.



아주 드물게 예외가 있긴 있었다. 올 4월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렸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두 사람은 배석하지 않았다. 이튿날 인민일보는 일부러 이런 점을 부각시켰다. 같은 날 시 주석이 인도네시아 및 미얀마 대통령과 차례로 회담한 소식을 나란히 보도하면서 중·일 정상회담에서만 리와 왕이 배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베이징 외교가의 소식통은 이렇게 풀이했다. “시 주석의 의중이 분명히 읽힌다. 모든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최측근 두 사람이 빠졌다는 게 뭘 의미할까. 회담은 하되 아주 중요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아베 총리와의 만남을 피하지는 않겠지만 이건 정식 회담이 아니다. 일본과의 관계는 개선 중이긴 하지만 아직 완전 회복된 건 아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서 아베 만날 땐 배석 안 해‘좌(左)잔수, 우(右)후닝’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두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을 재확인시켰다. 두 사람의 부재가 회담에서 오간 얘기보다 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얘기다.



시 주석을 그림자처럼 쫓는 리·왕의 밀착 수행은 외교 무대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시 주석의 동정 보도를 면밀히 관찰하면 국내에서의 중요 일정에도 두 사람이 꼭 동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방 시찰뿐 아니라 베이징에서 열리는 공산당의 중요 회의나 시 주석의 요인 접견 등에도 두 사람은 배석한다.



이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시 주석이 새로 만들고 직접 챙기는 중요 기구 하나씩을 맡아 관장하고 있다. 국가안전위원회와 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가 그것이다. 한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유사한 국가안전위원회는 국가 안보 및 공안과 관련된 사항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리는 상임 사무국장 격인 판공주임을 맡고 있다. 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는 경제정책을 포함한 중요 국정 개혁방안을 결정하는 기구로 왕이 판공주임을 맡고 있다. 두 기구에서 시 주석 참석하에 논의된 방침이 당의 공식기구를 통해 확정된 뒤 국무원(중앙정부)에 하달되고 이를 각 행정기관이 집행하는 게 중국의 통치 시스템이다.



시진핑·리잔수, 집안끼리도 친분 두터워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 이런 요직에 중용될 수 있었을까.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의 리잔수는 지방 말단 조직인 현(縣)서기에서 시작해 시(市)서기, 성장(省長), 성 서기 등의 단계를 모두 밟았다. 시 주석과의 공통점이다. 가는 곳마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고 지역민들로부터도 신망이 두터웠다. 하지만 권력 핵심인 중난하이(中南海) 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이른바 ‘삼북(三北) 간부’의 전형이었다. 삼북이란 화베이(華北)·시베이(西北)·둥베이(東北) 지방을 말하는 것으로 상하이·광둥 등 동남 연안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그는 허베이(河北)성의 말단 간부에서 시작해 산시(陝西)성을 거쳐 헤이룽장(黑龍江) 성장으로 근무할 때까지 40년 동안 줄곧 삼북 간부였다. 그가 삼북을 벗어난 건 2010년 구이저우(貴州)성 서기로 발탁되면서다.



2012년 7월 리를 당 중앙판공청 부주임으로 발탁한 건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었다. 이는 주임 승진을 염두에 둔 인사였다. 중앙판공청 주임은 주석의 모든 일정을 관리하고 기밀문서 보고 및 하위 당·정부 조직과의 연락 업무를 담당한다. 경호를 담당하는 중앙경위국도 거느린다. 그래서 새로 중난하이의 주인이 되는 권력자는 반드시 중앙판공청 주임을 자신의 사람으로 앉혀 왔다. 황제가 바뀌면 신하도 바뀐다는 ‘일조천자일조신(一朝天子一朝臣)’이란 말대로다.



리에 앞서 판공청 주임은 후진타오(胡錦濤)의 남자인 링지화(令計劃)였다. 링은 2012년 봄 아들 링구(令谷)가 심야에 여대생 2명을 페라리 승용차에 태우고 베이징 시내를 질주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건 이후 일가족의 부정축재가 드러나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시 부주석은 리를 불러 올린 지 2개월 만에 링을 좌천시키고 리를 후임으로 앉혔다. 퇴임 직전의 ‘저무는 해’ 후 주석도 이를 막지 못했다.



시 주석이 리 주임을 신임한 배경에는 30대 청년 시절부터 쌓은 인연이 작용했다. 시 주석이 1983년 허베이성 정딩(正定)현 서기로 일하던 당시 리 주임은 인접한 우지(無極)현 서기였다. 지방 근무가 처음인 시 주석은 나이가 세 살 위인 데다 행정 경험이 풍부한 리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고 나중에는 집안끼리도 친분이 두터워졌다. 그때 맺은 30년 인연이 지금 중국의 권부인 중난하이로 이어진 것이다. 왕후닝에 ‘중국의 꿈’ 임무 맡긴 시주석왕후닝 주임은 정치학자 출신으로 이미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시절부터 중난하이에 들어가 3대째 중국의 최고권력을 보필하고 있다. 왕은 29세에 명문 상하이 푸단(復旦)대 조교수가 되고 33세에 정교수로 승진했다. 당시로선 중국 학계 최연소 기록이었다. 그는 교환교수로 1년간 미국 생활을 했지만 학문 성향은 서구 민주주의 체제에 비판적이다. 그는 중국과 같은 변혁기의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권위주의 입장에 서 있다. 이를 눈여겨본 상하이 출신의 장 주석은 95년 왕을 중앙정책연구실로 불러들였다. 왕은 장쩌민의 통치이론인 ‘3개대표론(三個代表論)’ 완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공산당이 타도할 대상이었던 자본가는 이 이론에 따라 공산당에 입당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장의 후임인 후진타오 주석은 자신의 통치이론인 ‘과학적 발전관’을 완성하는 임무를 왕에게 맡겼다. 시진핑 주석은 왕을 더 중용해 정치국원으로 승진시켰다. 시 주석이 내건 ‘중국의 꿈’(中國夢)을 체계화하는 것도 왕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이뿐만 아니라 시 주석의 모든 연설 원고와 중요 발언은 모두 왕의 손을 거쳐서 나온다. 중요 회의와 정상회담에 반드시 왕이 배석하는 이유다. 당내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정치국 회의가 소집되기 며칠 전 정치국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전 브리핑이 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전에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주도하는 사람이 왕후닝”이라고 전했다. 대중을 향한 공개 발언과 이미지 메이킹은 물론 권력 내부에서 사전 조율도 왕의 손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칼 로브(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의 책사)와 헨리 키신저를 합친 인물”이라고 왕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2년 뒤 당대회 때 상무위원 승진 전망현재 정치국원인 ‘좌(左)잔수, 우(右)후닝’의 ‘입상(入常)’, 즉 상무위원 승진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2017년 말에 열리는 제19차 당대회 때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가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당대회는 5년마다 한 번 열리는데 3년 전인 2012년 18차 당대회 때 임명된 7명의 상무위원 진용은 후진타오와 당시까지 영향력이 컸던 장쩌민 세력의 타협과 조정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19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은 자신의 후계구도까지 염두에 둔 친정체제 구축에 나설 전망이다. 어차피 7명의 상무위원 중 시 주석과 리 총리를 제외한 5명은 ‘칠상팔하(七上八下· 67세는 승진, 68세는 탈락)’라는 당내 불문율에 따라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홍콩 언론인 왕웨민(王躍民)은 “(5개 상무위원 자리를 놓고 시진핑·리커창 외에) 리잔수·왕후닝과 한정(韓正) 상하이 당 서기, 자오러지(趙樂際) 당 조직부장의 상무위원 승진이 가장 유력하다”고 예상했다.



많은 이가 리 주임의 승진 가능성을 점치는 가운데 학자 출신인 왕의 승진에는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왕후닝이 그 어떤 상무위원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13억 중국을 움직이는 시진핑, 그 시진핑을 움직이는 이가 바로 왕후닝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해질수록 ‘좌(左)잔수, 우(右)후닝’의 위상과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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