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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 예술도 어렵지만 함께 보면 쉽고 또 재미있어요”

중앙선데이 2015.10.04 01:51 447호 12면 지면보기

원광연 KAIST 교수가 자신의 저서인 『그림이 있는 인문학』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인문학자는 사회과학자에 대해, 사회과학자는 이공학자에 대해, 이공학자는 인문학자에 대해 일종의 열등감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학문의 세계에 절대 강자는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모든 학문은 평등하다. 여러 학문은 ‘열등감’이라는 표현이 상징하듯 뭔가 부족하고 아쉽다. 상호보완 관계다. 학문 융합은 우리 시대의 절실한 과제이기도 하다.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 만들기는 학문 융합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이 있는 인문학』 출간한 원광연 KAIST 교수

그런데 문제는 학문의 전문화 때문에 같은 학문의 전문가도 세부 전공이 다르면 서로 소통이 아리송해진다는 점이다. 인문학과 과학의 중지를 모아야 혁신이 가능할 테지만 인문학도 어렵고 과학도 어렵다.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거리는 지구와 달 사이처럼 멀다.



어떻게 할 것인가. 원광연(63)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가 과학과 인문학, 특히 예술 사이에 소통의 길을 뚫었다. 최근 발간한 『그림이 있는 인문학』(작은 사진)을 통해서다. 이 책은 2013년부터 KAIST와 서울대에서 동시 개설한 강의가 그 뿌리다. 두 대학에서 인기 만점인 강의였다. 르네상스 시대 선원근법부터 21세기 테크놀로지 아트까지 흥미진진하게 다뤘다.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 그를 만났다.



-책 제목과 부제에 인문학·예술·과학이 나오기 때문에 독자들이 헷갈릴 수도 있겠다. “이 책은 과학책도 예술책도 아니다. ‘과학과 예술의 경계’ 내지는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키워드로 다루는 책이다. 제목에 나오는 인문학은 ‘인간이나 생활에 대한 이야기’라는 넓은 뜻의 인문학이다.”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곳에 인문학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는지. “정확히 짚었다. 과학과 예술 사이에는 결국 인간이 있고, 인간의 삶이 있다. 인간의 삶 이야기를 과학과 예술로 풀었다.”



-집필 동기는. “요즘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기술인데 일반인은 기술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예술도 예술대로 어려워져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기술도 예술도 이해가 안 되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를 이해하고 또 앞으로 내 삶을 설계하려면 예술도 알아야 하고 과학도 알아야 한다. 과학도 어렵고 예술도 어렵지만 두 개를 합쳐 놓고 보면 오히려 더 쉬워질 수 있다는 취지로 책을 썼다. 30년 넘게 이공학자로서 연구 일선에서 겪었던 경험과 지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풀어놓으며 소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과학과 예술인가. “이공학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연구 하나를 해결하면 새로운 문제가 나온다는 것이다. 문제가 계속해서 증가한다. 제 전공은 전산학이다. 그중에서도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의 초기 단계는 문제 해결 능력이다. 두 번째는 문제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단계다.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단계다. 연구자로서 과연 컴퓨터가 예술·창작 활동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초기부터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학기술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또 연구자로서는 약간 일탈행위가 될 수 있겠지만 창작·전시·공연기획도 하게 됐다. 예술과 관련된 나름대로의 애정과 경험이 쌓였다.”



-과학이 주전공, 예술이 부전공인가. “저의 뇌는 가상현실 연구 쪽에, 마음은 과학·예술 융합 쪽에 가 있다. 어느 선배 교수님이 ‘당신은 과학·예술을 할 때는 굉장히 행복해 보여’라고 하셨다. 저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선배 말씀이 맞는 것 같다.”



-2005년 세계 최초의 문화기술대학원 창립 원장이 됐다. 대학원이 아니라 아예 학부생 대상의 문화기술학과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문화기술이 특정한 연구 분야라기보다는 양극화돼 있는 과학과 예술, 혹은 기술과 문화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는 어떤 선언적인 맥락이 더 큰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대학원이냐, 학부 학과냐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문과·이과 간격을 줄이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많은 최고경영자가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로 뽑는 것은 공대 출신이다. 산업현장에서 좋아하는 인재는 공대 졸업생으로서 인문학 소양이 있는 친구들 아닌가. “저는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문화기술대학원 원생 중 반은 이공계, 반은 인문학과 예술 전공자다. 인문학 전공자가 과학기술을 배우는 게 훨씬 더 빠르다. 상대적으로 이공계 학생이 인문학적 소양과 지식을 갖추는 것은 굉장히 힘들었다. 오히려 인문학 전공자가 문화·기술 융합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인문학의 위력이 나타나려면 한참 걸린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접목하면 그 위력은 상당하다. 인공지능만 해도 철학적·심리학적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만남에 창조경제가 나아갈 길이 있을 수 있다. 창조경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1)집단과 조직의 힘보다는 개인의 능력, (2)공생, (3)협업, (4)경제적인 이윤이 아닌 사회적인 이윤에 대해 강조하는 게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공부를 참 잘하셨다. 훌륭한 공학자가 되기를 꿈꾸는 초·중·고생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저는 절대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학부는 간신히 B학점을 넘겼고···. 유학 가서도 올 A는 근처에도 못 갔다. 제가 지금까지 그래도 연구자로서 어느 정도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중·고·대학 다닐 때 역량의 70~80%만 사용해 공부한 것이다. 20~30%는 놀고 백일몽을 꾸는 데 썼다. 여력을 좀 남긴 게 제게 힘이 됐던 것 같다.”



-우리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전통을 배경으로 억지로 하기 싫은 것을 하기 때문에 성과가 부진한 것은 아닐까. 미국인들은 어떤가. “미국인은 사고가 극단적으로 실용주의적이다. 미국에도 상위 1%는 다를 수 있겠지만 99%의 사람은 지나칠 정도로 ‘내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한다’며 개인적인 행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과 대학 교육 사이에 갈등이 있다. “현실 세계에서 필요한 것만 계속 맞춰 나간다면 대학 교육이 계속해서 휘둘릴 수밖에 없다. 학문의 고유한 가치를 추구하지 못하고 지금 당장 필요한 대응 능력만 키우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세상이나 시장 상황은 계속 바뀔 것이다. 특정한 과제가 아니라 세상 자체가 어떻게 바뀌든지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게 고등 교육기관이 할 일이다.”



-이 책의 예상 독자층은.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다. 제 나름대로 실제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생각이나 교훈들을 다뤘다. 책 스타일은 고등학생 이상, 남녀 구분 없이 직장인을 염두에 두고 썼다.”



-다음 책 구상은. “여성이 아이들을 융합적·창의적으로 키우는 법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



 



원광연 경기고·서울대(응용물리학 학사)·위스콘신대(전산학 석사)·메릴랜드대(전산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전산정보학 교수를 거쳐 1991년부터 KAIST 교수로 일하고 있다.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의 개념을 정립한 세계적인 창조산업 분야 전문가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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