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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갱님’이 사라졌을까, 아니면 모두 ‘호갱’이 된 걸까

중앙선데이 2015.10.04 01:30 447호 18면 지면보기
지난 1일부터 SK텔레콤의 신규가입자 모집이 금지됐다. 이 회사가 지난 3월 고객 2050여 명에게 현금 페이백 형태로 평균 22만8000원의 초과 지원금을 지급한데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일주일 간 영업정지’라는 징계를 내려서다. 주목할 점은 영업정지 첫날 SK텔레콤의 가입자 수 감소가 6066명에 그쳤다는 것이다. 알뜰폰 포함 전체 번호이동 숫자도 1만369건에 머물렀다. 특정사의 영업정지가 시작되면 경쟁사들이 거액의 단말기 보조금을 책정하고, 소비자들은 이 틈을 타 대거 이통사를 갈아타며 새 휴대폰을 장만하던 예년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위 ‘대란(이통사 대거 갈아타기)’ 기간에는 번호이동이 하루 10만 건을 넘기 일쑤였다. 정부는 이통 시장이 이처럼 차분해진 이유로 지난해 10월 1일 도입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꼽는다.



단통법은 보조금 무차별 살포와 차등적용 등의 폐해를 없애고 보조금을 동일하게 적용해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통신비 인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정부는 단통법 시행으로 이동통신 시장 투명화와 이용자 차별 해소라는 두 목표를 달성하면서 시장이 안정됐다고 주장한다.


단통법 1년, 이해관계자들 손익계산서

그러나 고객·이통사·영업점·제조사 등의 손익계산서를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통법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가격 인하 서비스에 제동을 거는 대표적인 ‘할인규제’라고 비판한다. “시장에서 경쟁을 가로막아 소비자 이익을 갉아먹는다”는 지적도 거세다. 정부 “과열경쟁 사라지고 시장 안정”정부는 단통법 효과로 이용자 차별 해소를 첫 손에 꼽는다. 약정 요금, 지원금 가격 정보가 투명해지면서 할인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위 ‘호갱(호구+고객)’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단통법은 이통사 지원금의 상한액을 33만원으로 한정한다. 단 출시된 지 15개월이 지난 단말기는 예외다. 조규조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정책국장은 “상한액을 정함으로써 지원금을 앞세워 경쟁사 고객을 빼앗아오는 과열 경쟁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가계 통신 부담도 다소 줄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지원금을 미끼로 고가 요금제에 가입시켜 매출과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하는 병폐가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7~9월 1인당 평균가입요금은 4만5155원이었으나 올해 8월에는 3만9932원으로 11.6% 줄어들었다. 방송통신위원회 최성준 위원장은 최근 단통법 1년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데이터 사용량이 증가하고, 3G에서 가격이 비싼 LTE 요금제로 바꾸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데도 가계 통신비가 낮아진 건 단통법의 효과”라고 말했다. 소비자 “최신폰 구입 부담은 오히려 커져”정부의 설명과 달리 소비자 반응은 싸늘하다. 단통법 이후 휴대폰 구입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달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한 단통법 1주년 댓글 이벤트에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다같이 보조금을 적게 받아서 공평해졌다’, ‘호갱을 없앤다더니 국민 호갱시대가 열렸다’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전직 팬택 직원이라고 밝힌 소비자는 “왜 싸게 사는 것까지 막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소비자들의 통신요금 부담이 준 것도 단통법 효과가 아니라 요금 선택권이 줄면서 생긴 결과로 봐야 한다. 종전에는 최신 폰을 쓰려면 보조금을 많이 받고 대신 비싼 요금제에 가입하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보조금이 같으니 소비자들이 비싼 요금제에 가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소비자들은 공짜폰이나 중고폰을 쓰고, 싼 요금제를 선택했다. 통신요금 부담이 강제로 줄어든 셈이다. 정부는 가계통신비를 줄였다는 걸 업적으로 내세우지만 이는 ?밥 굶기고 다이어트 시켜주었다’는 궤변과 비슷하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결과적으로 시장의 효율성만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이통 3사 올 영업이익 80% 증가 예상할인 규제로 비용을 옥죄면서 이통사의 수익은 늘어났다. 미래부에 따르면 이통사 마케팅비 지출은 지난해 1·2분기 각각 2조4265억원, 2조1982억원에서 올 1·2분기엔 2조1982억원, 1조8808억원으로 줄었다. 이통사의 마케팅비는 대부분 보조금으로 지출된다. 이는 소비자가 누려왔던 보조금 이득이 모두 이통사에 돌아간 결과로 이어졌다. 2분기에 KT는 3688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흑자로 전환했다. LG유플러스는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2배가량 많아진 1924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SK텔레콤은 특별퇴직 비용으로 1100억원을 지출하고도 412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수익성도 개선됐다. 기업분석사이트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이통사의 올해 총 영업이익 규모는 지난해 2조1098억원보다 80% 증가한 3조8033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제조사 “시장 죽었다”, 유통점 “폐업 검토”이통사와 달리 제조사와 유통시장은 시장위축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미래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단말기 판매량은 1130만 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0만대 감소했다. 지난달 14일 미래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조성하 LG전자 MC사업본부 부사장은 “현재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시장 활성화를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지원금 상한선을 조정해달라”고 말했다.



유통구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소규모 영업점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이 미래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영세 판매점은 지난해 12월 3만2289개에서 올해 6월 2만8752개로 줄어들었다. 서울 중구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정환(46)씨는 “영업점들에 이통사 보조금은 최고의 마케팅 수단이었는데 각 사가 동일하게 지급하면서 소비자 유인책이 사라졌다”며 “폐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단통법 손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지원금 상한제를 없애 시장 경쟁을 업계 자율에 맡기자는 주장이다. 지원금 상한제는 3년 일몰제로 도입됐다. 앞으로 2년간 현재 방식이 유지된다. 현재 국회에는 새누리당 배덕광·심재철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상한제 폐지를 골자로 한 단통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또 하나는 휴대폰 보조금을 공시할 때 제조업체 장려금과 통신사 지원금을 구분해서 공시하는 분리공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제도에는 제조사들이 영업 기밀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조규조 미래부 통신정책국장은 “단통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큰 방향성은 유지하되 이통사·제조사의 마케팅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운영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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