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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기, 추첨과 경제성장

중앙선데이 2015.10.04 01:24 447호 18면 지면보기
골퍼들은 ‘뽑기 게임’을 즐겨한다. 설혹 본인이 잘못 쳐도 편을 잘 먹으면 이기는 구조다. 조커를 뽑으면 가장 좋은 타수가 부여되는 등 결과의 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게임이 진화하기도 한다. 내기에 커다란 의미를 둔다면 잘 치려는 동기가 유발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게임 룰이 놀이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실력과 노력으로 갈라야 할 성패를 운에 맡기는 일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유치원과 사립초등학교, 국제중 선발까지는 불가피하다 쳐도 자율형 사립고 입학과 대학생 아르바이트, 일부 공무원 선발에까지 추첨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탈락자 승복 않는 경우 많아져수능조차 뽑기를 닮아간다. 지난 9월 치러진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수능 모의평가가 쉽게 출제되면서 올해 역시 쉬운 수능이 예상된다. 상당수 학생이 주요 과목에서 만점을 맞고, 반대로 많은 노력으로 공부를 잘하지만 운이 나쁘거나 사소한 실수를 한 학생은 시험을 망치게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말거나 큰 차이가 안 나고, 성과가 뒤바뀌는 경우가 늘어난다.

강일구 일러스트


신민영의 거시경제 읽기

문제는 이런 현상이 확산하면서 탈락한 사람들이 경쟁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선발과정의 공정성에 관한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각종 제도와 기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회적 자본 결핍의 단면이다. 여기에 행정 편의주의가 맞장구친다. 불만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경쟁을 없애고 아예 운에 의존하는 추첨으로 해결을 시도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입시 등 교육과 관련된 문제의 경우 사교육 감축, 경쟁 완화, 혹은 재분배 등의 정책적 고려도 작용한다. 노력과 실력이 성패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가치가 멋대로 배분된다면 필연적으로 잘하려는 의지가 약화할 것이다. 형식적인 기회균등을 가져오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공정하지 않고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성과에 대한 보상이 운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 기대치가 자신의 실제 가치에 못 미쳐 좌절하고 운 좋은 사람들이 득세한다면 그 사회에서 희망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올바른 게임 룰을 설정하는 정부의 역할이 요구된다.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인기 있는 정책과 사회 전체에 바람직한 정책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수능이 좋은 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일부여서 다양한 난이도의 문제가 고루 섞인 변별력 있는 시험은 다수 학부모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경쟁을 뚫고 나갈 자신이 없는 다수에게 뽑기나 추첨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선발방안이다. 이때 정부는 다양한 의견의 조정자, 중재자로서 뿐 아니라 합리적 규칙 제정자(rule setter)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탈락자들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경쟁과정을 더욱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려는 노력을 해야지 경쟁 자체를 없애버리고 추첨을 하거나 쉬운 수능을 택하는 것은 올바른 대응이라고 볼 수 없다. 쉬운 수능이 사교육을 줄이고 저소득층 학생들을 배려하는 방안이 되는지는 면밀히 분석해야 할 문제다. 반면 쉬운 수능이 노력과 결과 간의 관계를 멋대로 만드는 점은 분명하다.



생산극대화 방식 다시 고민해야물론, 취약계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계속 지켜나가야 한다. 변별력 있는 시험을 시행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특별전형이나 지역균형선발 등으로 보완하는 것은 그 예가 될 것이다. 골프 내기에서 일단은 실력대로 게임을 진행하고 잘한 사람에게서 떼어 못 한 사람에게도 처음 낸 돈의 30~40% 정도를 보장하는 것이 예가 될 것이다. 잘 치려는 동기는 유지하면서 동시에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시장기능을 유지하면서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는 것이다.



경쟁의 글로벌화와 우리 경제의 성장단계 성숙도 등의 관점에서 봐도 뽑기와 추첨은 시대 흐름을 거스른다. 경쟁이 그다지 심하지 않고, 노동과 자본 등 요소투입을 늘리는 양적 성장이 가능했던 시대에는 제한적이나마 운이 작용하는 제도를 통해 뽑히고 길러진 인재들이 통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초경쟁 시대, 창의와 혁신으로 무장한 글로벌 1등이 대부분의 가치를 휩쓸어가는 시대에 이러한 인재들로 경쟁한다면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바람직한 제도는 발전과 혁신의 동기를 유발하는 제도다. 시험제도는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어 가장 잘 준비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중요하고 여타 기관 역시 조직의 목표와 의도를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돼야 한다. 이때 경제학적 시각에서 생산 극대화가 이뤄질 수 있고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 운칠기삼, 복불복은 TV의 예능프로그램에 되돌려줘야 할 것이다. 경쟁촉진은 물러설 수 없는 게임의 원칙이다.



 



 



신민영?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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