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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는 비책

중앙선데이 2015.10.04 00:42 447호 27면 지면보기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길거리에 나서면/고향 장거리 길로/소 팔고 돌아오듯/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어느 곳에선가/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마을의 문들은 닫히고/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눈물자국 때문에/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삶과 믿음

명절을 앞두고 몇 년째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을 찾아뵈었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지만 아직까지는 어른을 섬기며 함께하는 명절이 있어 가을빛 해질녘이 풍요롭다. 작년에도 그랬듯 요양원 주변의 들녘에선 벼메뚜기가 팔월 한가위 잔치하러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나도 마음도 몸도 비울 겸, 3년 만에 위와 장 내시경 검사를 했다. 밤새 속을 비우고 비워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나니 “마음 비우기보다 속 비우기가 더 쉽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도 강으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마음은 마음일 뿐 비워지지 않는 것이 원래 그 자리 심성이다. 누구나 생각해 본 것이겠지만, 타고난 심성은 어떻게든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갓난아기 때 잘 우는 아이가 커서는 까칠하고 건강도 안 좋더라.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한 아이는 커서도 속 썩이는 일이 없다”던 예전 어머니의 말씀처럼 말이다.



마음을 비우는 비책, 단 하나는 매사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세상사 변화와 파도에 좀 더 무심해지는 것이다. 황토 흙물처럼 마음이 무심하면 스스로 고요하고 맑아진다. 가을 산 계곡 맑은 물에 낙엽이 흘러가지만 속이 보일 정도로 맑고 차갑다. 스승님이 열반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남기신 당부의 말씀이 생각난다.



“어떻게 살아가야 큰 도를 일구겠나이까?” 하고 여쭈었다.



“음… 착하게만 살면 된다.” 단 한 마디 답이었다.



혼자 빛나는 보석처럼 죽음에 가서도 짧고 간결한 말이 더 여운이 남는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양심을 속이지 않음이다.



인간이 태어나면 세 번 껍질을 벗어야 한다. 첫째는 어머니 뱃속에서 무탈하게 잘 나오는 일이다. 세상을 만났으니 그 아니 기쁠 수 있는가. 두 번째는 속물의 세상에서 양파 껍질을 벗 듯 본인의 양심의 껍질을 벗어야 한다. 나이 50이 되어도 습관과 욕심을 못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양심은 내 삶의 푸른 대나무 지팡이이고 먼 길을 나서는 데 필요한 나침판이기도 하다. 나머지 하나는 천지조화와 하나가 되는 내 영혼의 깨우침이다.



누군가 말했다. 머리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가슴은 침묵하기를 좋아하며, 머리는 받기를 좋아하고 가슴은 주기를 좋아한다. 또한 머리는 거창하기를 좋아하고 가슴은 사소한 일을 좋아한다는 말이 오늘 나에겐 가을 바람 같은 영혼의 메모지다.



그대 마음에 섭섭함이 있는가. 그것은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서 ‘내 마음의 섭섭함’이 일어나지 않게 스스로 맑히는 일이 더 가슴이 가볍게 하는 일이다. 요즘 나는 이 ‘섭섭함’만 잡으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대하지 마라. 그리고 실망하지 마라. 삶은 오직 가을 마른 풀잎에 스치는 바람과 같다.



 



정은광 교무dmsehf44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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