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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억을 지운다 한들 사랑의 흔적까지 지워질까

중앙선데이 2015.10.04 00:42 447호 2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김옥



헤어지는 이야기를 많이 썼다. 이혼했거나, 사별했거나, 헤어졌거나, 헤어지는 중인 이야기. 제목에 아예 ‘실연’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소설까지 썼으니 이제 쓸 이야기가 없을 것 같지만 여전히 그런 이야기들을 쓰고 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개봉 10주년을 맞아 11월에 재개봉한다는 기사를 보다가, 나는 결국 이 영화 때문에 쓰게 된 소설 한 편을 떠올렸다.


백영옥의 심야극장 -11- 이터널 선샤인

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의 첫 장면은 실연당한 사람들이 오전 일곱시에 모여 밥을 먹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이별 후 자신들에게 남겨진 물건들, 즉 ‘실연의 기념품’을 처리하기 위해 비밀스레 모인다. 소설에서 이별은 ‘앞’에서 오지만 실연은 언제나 ‘뒤’로 온다고 썼다. 실연은 인간에게 존재하는 감각을 일시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고, 끊임없이 자신 쪽으로 뜨거운 모래를 끌어들여 폐허로 만드는 사막의 사구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도 할 말이 남아 조금 더 썼다.



“실연 후, 현재는 끊임없이 과거 쪽으로만 회귀했다. 강력한 자석처럼 과거가 그 모든 시간과 가능성을 빨아들였다. 기쁨과 슬픔, 회한과 외로움, 쓸쓸함, 고독은 실연이라는 화산재에 뒤덮였다. 미래 역시 과거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 치도 나아가지 않은 너무나 익숙한 미래. 실연은 그렇게 오래된 미래가 되었다.”



실연당한 사람들은‘현재’가 아닌 ‘과거’를 산다. 불면의 밤 속에서 스스로 잊히길 원하며 수면제를 삼키기도 한다. 사람들은 시간이, 세월이 약이란 말을 쉽게 한다. 하지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잊히는 걸까. 과연 잊히기는 할까. 사랑은 예외없이 예측 불가능하다. 3초 만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0년이 지나도 그 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글을 쓰다가,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의 기억할 만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토씨 하나 잊지 않고 그의 말을 복기해냈다.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기억을 지키려는 남자‘이터널 선샤인’의 남자 주인공 조엘은 2년 동안 사귄 애인이 있었지만 주황색 머리의 명랑한 여자 클레멘타인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성격에 끌려 사귀게 되지만, 서로에게 이끌리게 했던 그 성격 때문에 싸움은 격렬해지고 점점 지쳐간다. 사랑에 빠졌던 이유가 사랑이 식는 이유가 되는 아이러니는 사실 삶의 역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클레멘타인과 심한 말다툼 후, 조엘은 그녀에게 사과를 하러 그녀의 집에 찾아간다. 그러나 클레멘타인은 마치 조엘을 처음 본 사람처럼 냉담하게만 대한다. 둘을 모두 알고 있는 친구로부터, ‘지우고 싶어하는 기억’만 지워준다는 라쿠나사에서 그녀가 자신과 관계된 모든 기억을 지워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조엘은 엄청난 실의에 빠진다. 그는 분노하고, 체념한 채, 그녀에 관한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해 라쿠나를 찾아간다. 자신을 괴롭히는 그녀와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라쿠나(Lacuna), 잃어버린 조각이란 뜻의 라틴어. 그러나 클레멘타인과의 좋지 않았던 기억을 지워버릴수록, 처음 그녀와 사랑에 빠졌던 느낌과 설레임은 점점 더 조엘의 마음을 흔든다. 지금은 끔찍해진 클레멘타인의 푸른색 머리카락도, 그녀의 유별난 주황색 재킷도, 술병을 든 채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유쾌함도, 모두 처음 설렘을 주었던 그의 이전 기억과 연결돼 가슴을 설레게 한 것이다.



조엘은 결국‘기억을 없앤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된다. 나쁘건 좋건 ‘사랑했던 기억’을 없앤다는 건 지금 나 자신을 허물어뜨리는 일이라는 것을. ‘나’라는 정체성은 결국 ‘너’와의 관계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사랑에 있어 ‘우리’는 ‘나’나 ‘너’보다 더 힘이 셀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조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실패한 사랑의 기억들을 전부 지워버린다는 발상은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찰리 카프만이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도 보여준 SF적인 풍경이다. 여기에서 그의 기억을 지우려는 라쿠나사의 직원과 기억을 지키려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추격전이 벌어지면서, 우리는 조엘이 끝내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게 된다.



사랑은 기억보다 힘이 세다이 영화의 시작이 나른한 짐 캐리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것이 나는 언제나 좋다. 졸린 눈으로 출근 지하철 앞에 서 있던 그가 충동적으로 맨해튼으로 가는 기차 대신 ‘몬탁’행 기차를 타는 장면 역시 뭉클해진다. 나 역시 언젠가 바로 ‘저런 멍한 얼굴’로 회사로 가는 지하철이 아니라, 강릉행 버스를 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시 끝에 붙어 있는 몬탁은 기차를 타고 세 시간쯤 가면 나오는 바닷가다. 한국으로 치면 정동진쯤 될까. 2월의 겨울 바다가 보여주는 온갖 스산함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스케치북에 바다 풍경을 그린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하지만 이제 여자를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라고 중얼거리면서. 이곳‘몬탁’이 자신이 클레멘타인과 사랑에 빠진 바로 그 장소라는 걸 망각한 채로.



기억을 지운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를 만나 또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가 말하는 건 명확하다. 아무리 기억을 지운다 해도, 사랑의 흔적은 몸 안에 남는다는 것. 그러므로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다시 사랑에 빠지고 말 것이란 것.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지독한 사랑의 동어반복이 지속되는 것이다.



사랑은 기억보다 우위에 있다. 살면서 일어나는 그토록 기이한 순간은 인간의 뇌 속에서 편집되거나 왜곡되고 탈락하는 기억보다 앞선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겐 이 세상 모든 소설이 연애소설이거나, 이 세상 모든 노래가 결국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로 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는 니체의 아포리즘은 결국 힘을 잃는다. 사랑에 있어 인간은 끊임없이 오답을 쓰고, 그 오답을 고쳐 나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의 연인의 귀에 클레멘타인처럼 이렇게 속삭일 수밖에 없다.



“Remember me~.” ●



 



 



백영옥 ?광고쟁이, 서점직원, 기자를 거쳐 지금은 작가. 소설『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아주 보통의 연애』 , 인터뷰집 『다른 남자』 ,산문집『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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