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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사람 위한 작은 음악회 관객들 감정 변화가 느껴져요

중앙선데이 2015.10.04 00:39 447호 24면 지면보기
명동 거리를 걷는다.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알 수 없다. 거리 한복판을 점령한 노점상들과 한집 건너 하나씩 있는 화장품 가게의 호객꾼들은 중국어로 말을 건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행인들도 대부분 쇼핑이 목적인 관광객들이다. 한때 음악다방을 중심으로 문인들이 모여들어 예술과 인생을 논하던 낭만의 거리를 요란한 상혼에 빼앗긴 느낌이다.



이런 명동에 문화의 향기를 되찾으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천주교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매달 마지막 수요일 열리는 ‘문화가 있는 명동’ 행사로, 지난달 30일에는 작곡가 윤용하 50주기 음악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1898년 완공된 국내 유일의 순수 고딕양식 건축물인 명동성당은 최초의 본당이자 한국 천주교의 총본산이다. 종교적 상징을 넘어 1970년대 한국 민주화의 성지 역할을 했던 명동성당이 자본에 점령당한 쇼핑 특구 한가운데서 ‘문화의 성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2005년부터 매년 5월 열리던 ‘명동성당 문화축제’ 고정 출연자였던 가수 겸 피아니스트 노영심(48)이 지난해부터 명동성당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이를 매월 ‘문화가 있는 수요일’로 확장해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양성원,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등 예술인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문화가 있는 명동’ 예술감독 노영심

종교단체에서 어떻게 매달 문화행사를 열게 됐나요.“‘문화가 있는 명동’은 종교를 초월해 과거 문화중심지였던 명동의 빛을 찾아가자는 의미에요. 그 취지에 고찬근 주임신부와 ‘문화가 있는 수요일’을 주관하는 문화융성위원회 김동호 위원장이 공감해 저를 중심으로 소위 MOU를 맺은 셈이죠. 성당이라 특별한 점이라면 관객 특화라고 할까요. 사회에서 소외된 분들을 조심스럽게 초대하고 있어요. 세상에 공연장도 공연도 많지만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그런 관객을 챙기는 일이겠죠.”



명동이 관광객 쇼핑천국이 된 지 오랜데요.“오후가 되면 명동 일대는 발디딜 틈 없는 먹거리 야시장이 되죠. 저도 명동이 문화 중심지이던 시절 사람은 아니지만 하다못해 우리 어릴 때는 서울예전, 영화진흥공사, 그리고 삼일로창고극장 같은 오래된 극장도 구석구석에 있었어요. 명동예술극장이 복귀하면서 나름 문화적인 포부가 있었을 텐데 공연장 주변 상황은 정말 형편없죠. 성당까지 조금만 올라오면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이 있는데, 여기까지 오는 사람이 아직 많지 않아 아쉬워요.”



‘문화가 있는 명동’은 어떤 철학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나요. “시의성 있는 메시지 전달을 고려합니다. 예컨대 다음 공연의 주인공은 작년에 돌아가신 우리나라 재즈 1세대 뮤지션 정성조씨에요. 아버지 음악을 잘 이어가고 있는 뮤지션 정중하를 중심으로 1주기 음악회를 꾸미죠. 세월호 참사 때는 누구를 통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할까 고민했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저작권 때문에 거리에 캐럴이 없어지는 시점에 성당에서 울려야 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음악은 뭘까를 고심했어요. 가을에는 안도현 시인의 시를 놓고 가을 선물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 하고요. ‘이쯤에서 나의 가슴에 탁 얹혀주면 좋을 것들’을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꺼내 놓으려 해요.”



9월 행사의 주인공인 작곡가 윤용하는 1922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65년 타계할 때까지 200여 곡이 넘는 노래를 만든 민족음악가다. 한국 동요 베스트5에 꼽히는 ‘나뭇잎 배’와 가곡 ‘보리밭’을 비롯, 일제강점기에 음악으로 항거하며 ‘광복절 노래’까지 만든 문화독립운동가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마침 광복 70주년을 맞은 그의 50주기 음악회는 연극연출가 정안나씨의 대본으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꾸며졌다. 영화 ‘암살’의 배우 최덕문, 성우 김세원 등의 낭독으로 윤용하의 일생을 들려주고 그가 작곡한 노래들을 카톨릭합창단과 굴렁쇠아이들, 금강학교합창단 등의 연주로 선보였다.



노씨는 영화 ‘암살’을 통해 숨겨진 독립운동가들을 돌아보게 됐듯, 윤용하라는 숨겨진 작곡가를 이번 기회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음악회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무엇을 남기는가도 중요해요. 이번에 편곡된 음악들은 악보로 만들어 멀리 아프리카까지 보급할 생각입니다. ‘듣고 읽고 찾아가는 음악회’라고 명명하고 책자도 만들었어요. 윤용하의 정신에서 나온 주제에 따라 교황, 권정생 작가, 구상 시인 등의 글을 엮었는데, 음악과 함께 읽으며 느낀 여운을 손에 손으로 널리 전할 수 있게 한 거죠.”



그간 눈에 띄는 성과가 있었다면.“일하는 사람들의 변화죠. 봉사의 질이 높아졌달까. 최근 명동성당에서 ‘봉사뱅크’라는 봉사문화운동을 시작했어요. 각계각층의 전문가지만 허드렛일을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을 모집해봤더니 좋은 인력이 많이 모였고, 이번 음악회가 그 인력들의 첫 번째 집합이었어요. 그 팀을 통해 현수막부터 전시, 구조물 등을 함께 구현했죠. 봉사자들이 모여 작가 지도하에 보리 모양의 전시물을 LED 플라워처럼 접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결과보다 과정이 아름다운 것 같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무대를 꼽는다면.“1월에 ‘새해선물’이란 주제로 신년음악회를 했어요. 99세에 등단한 일본 시인의 시 7편을 복주머니에 넣어서 7명의 아티스트가 읽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자살가족, 살인자가족, 화상환자 등을 조심스럽게 모셨죠. 그때 관객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처음엔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어두웠던 얼굴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밝아지는걸 보면서 어려운 분들을 한 분이라도 더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물론 공연 자체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연주가 성당에 울려퍼질 때 깊이와 완성도가 더욱 느껴져서 음악인으로서 뿌듯했지만요.”



쟁쟁한 음악가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하지만, 의외로 섭외는 어렵지 않단다. “연주자들은 판만 벌려주면 늘 봉사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연주자들에게 명동성당이라는 공간은 호감도도 높고, 행복해 하는 관객을 보면서 채워가는 만족도 크다고 해요. 공연을 많이 접해본 관객들이 아니라 처음엔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놀랄 만큼 집중해가는 모습에 연주자들도 스스로 감동받고 가시죠. 서로에게 좋은 결과에요.”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따뜻한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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