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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이 이끌었던 2차 산업혁명 시대

중앙선데이 2015.10.04 00:30 447호 29면 지면보기
미국에서 터진 폴크스바겐의 디젤엔진차 배기가스 조작사건이 전 세계를 달구고 있다. 이를 두고 영어권에서는 ‘디젤 게이트’라고 부른다. 1892년 디젤 엔진을 개발한 독일인 엔지니어 루돌프 디젤(1858~1913)의 이름이 먹칠 당하고 있다. 디젤 엔진의 고난은 앵글로색슨과 게르만의 해묵은 과학기술 경쟁을 떠오르게 한다.



앵글로색슨의 영국은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기술혁신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켜 경제·사회 등 여러 방면에서 문명의 전환을 이뤘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발달이 이를 선도했다. 후발국 독일은 1865년 무렵부터 1900년까지 전력투구해 영국의 과학기술과 산업을 따라잡았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제2차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2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독일은 내연기관과 화학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지금까지 번영하는 독일의 거대 자동차·제약 산업이 살아 있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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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약산업은 아스피린으로 상징된다. 1897년 바이엘 사의 연구원 펠릭스 호프만(유대인인 아르투어 아이헨그륀이라는 설도 있다)이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살리실산의 화학구조를 일부 바꿔 위장장애 부작용을 줄인 해열진통소염제 아세틸살리실산을 합성했다. 세계 최초의 합성의약품인 이 물질의 상품명이 바로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은 앵글로색슨 시장에선 맥을 못 춘다. 미국인은 타이레놀 상표명의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영국인은 브루펜 상표명의 이부프로펜 성분을 각각 선호한다. 파라세타몰로도 불리는 아세트아미노펜은 1948년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심장연구소에서 생화학자인 줄리어스 액셀로드(신경전달물질 연구로 70년 노벨의학상 수상)와 약리학자 버나드 브로디가 처음 효능을 발견했다. 이부프로펜은 61년 영국 약국체인인 부츠의 연구원인 스튜어트 애덤스가 개발했다. 자국 개발 의약품 선호는 일종의 의약품 민족주의, 또는 과학 국수주의일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도, 독일의 2차 산업혁명도 과학기술이 주무기였다. 국민 사이에선 자국 과학기술 보호 경향이 나타날 만 하다. 19세기 내연기관에선 다임러의 가솔린 엔진과 디젤의 디젤 엔진이 독일 기술을 대변했다. ‘기술의 독일’이라는 국가브랜드가 탄생했다.



문제는 제2차산업혁명이 갈등을 유발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말을 기점으로 독일의 철강 생산이 영국에 육박하자 영국이 바짝 긴장했다. 영국 외교관 아이어 크로(1864~1925)가 1907년 1월 작성한 ‘크로 메모(Crowe memorandum)’는 여기에 불을 붙였다. 경제 몸집을 불리고 있는 독일이 군사력 근육도 강화해 언젠가는 영국의 패권을 위협하고 유럽의 세력균형을 깰 수 있다고 경고한 내용이다. 영국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뛰어든 목적의 하나가 독일 견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이유다.



독일 자동차 업계는 ‘청정디젤’이라는 이름의 저공해 디젤 자동차를 앞세워 전 세계에서 시장을 넓혀왔다. 디젤은 엔진 내에서 플러그로 연료를 점화하는 가솔린 엔진과 달리 고압을 가해 연료가 스스로 연소되게 한다. 이 때문에 배기가스가 다량 발생하는 게 단점이었는데 기술로 이를 극복한 것이 청정디젤이다. 이는 풍부하고 값싼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연비가 좋지 않은 가솔린차가 주류를 이뤘던 미국 자동차 산업을 크게 위협했다. 청정디젤은 이제 원점에서 그 효용을 재검토할 시기가 됐다. 그 이유에는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 글로벌 정치까지 포함됐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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