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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문화유산국민신탁·카툰캠퍼스가 함께하는 역사통(通) 기자단

온라인 중앙일보 2015.10.04 00:07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황제가 머물던 창덕궁에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다른 궁궐에서는 좀처럼 살펴보기 어려운 것들이죠. 소년중앙 역사통 기자단이 창덕궁에서 찾아낸 이색적인 풍경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미션!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를 반영한 흔적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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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전 전기전등 | 오늘날 우리는 전기와 전등이 익숙하지만, 옛날 사람들에게 궁궐의 밤을 밝힌 전등은 신기한 구경거리였대.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전기 전등을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1887년(고종 24) 경복궁에서 제일 먼저 전깃불이 켜졌어. 이후 1894년(고종 31)에는 창덕궁에도 전등이 밝혀졌지. 이후 고종이 덕수궁에서 돌아가시고 순종이 즉위하여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생활공간인 창덕궁에 근대적 설비들을 점차 갖춰 나갔어. 창덕궁에는 대조전 앞뿐만 아니라 인정전·선정전·희정당·대조전 등 주요 전각에도 전기 전등이 설치돼 지금도 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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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실내장식 | 창덕궁 인정전은 왕실의 귀중한 기념행사가 열리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조선왕조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정전이야. 인정전은 외관에서 2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천장이 높은 1층 건물이야. 이렇게 지붕을 2중으로 꾸민 모습은 경복궁 근정전과 비슷해. 그렇지만 인정전 내부를 들여다보면 경복궁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어. 인정전 내부에는 전등·커튼 등 서양 실내장식이 설치되어 있거든. 대한제국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인정전의 내부가 서양식으로 개조됐기 때문이야.

선정전 청기와 | 선정전의 선정(宣政)은 정치와 가르침을 널리 떨친다는 뜻이야. 선정전은 조선 전기에는 임금과 신하들이 함께 나랏일을 의논하고 학문을 토론하는 장소였어. 후기에는 주로 의례를 거행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대. 선정전은 청기와를 덮어 다른 건물과 구분돼. 청기와는 점토로 기와 형태를 빚은 후에 염초로 만든 유약을 발라 푸른 빛깔이 나도록 구운 것인데 재료를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숙련된 기술과 많은 비용이 들어 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해. 조선 시대에는 궁궐에 청기와를 덮은 건물이 몇 개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건 선정전이 유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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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당 유리창호와 빗물받이 | 희정당은 건물이 몇 차례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어졌는데 현재의 모습은 1917년 창덕궁 내전 쪽 화재로 소실되어 1920년에 재건한 모습이야. 경복궁의 강녕전을 헐어 옮겨와 다시 지으면서 규모가 커지고 내부는 서양식으로 장식되었지. 이때 희정당에는 유리·철물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창과 문이 설치되었어. 희정당의 모든 창호에는 창호지가 아닌 유리를 사용했는데 투명한 것과 불투명한 것 두 가지가 쓰였다고 해. 이러한 유리창호는 이전의 궁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이야. 또, 희정당의 처마 끝을 보면 양철로 만든 빗물받이가 설치되어 있는데, 비가 오면 처마 끝에서 빗물이 바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한군데로 모여서 떨어지게 만든 거야. 이 역시 다른 궁궐에서는 볼 수 없어.

글=권소진 인턴기자, 취재=윤서현·이예림·원혜인·박성욱·이태경 역사통 기자단 1기,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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