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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문화유산국민신탁·카툰캠퍼스가 함께하는 역사통(通) 기자단

온라인 중앙일보 2015.10.0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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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통 기자단 따라잡기] 창덕궁 ③ 1910년 8월 29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한제국

희정당 → 대조전 | 선정전을 지나면 확연히 다른 모습의 전각이 눈에 띈다. 희정당이다. 왕의 침실이 딸린 편전으로 1917년 대화재로 타버린 것을 1920년 경복궁의 강녕전을 옮겨 와 지은 것이다. 현관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서양식 건물 양식을 따랐다. 현관 앞바닥은 아치 형태인데, 순종황제의 자동차 캐딜락이 들어올 수 있게 변형한 것이다.

희정당 북쪽에는 보물 816호 대조전이 있다. 왕과 가족들이 생활하던 대조전 역시 1917년 대화재로 사라졌던 전각을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 지은 것이다. 대조전은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왕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 온돌과 왕비가 생활하는 공간인 서 온돌로 나뉘는데, 동 온돌 구역의 흥복헌에서 마지막 어전 회의가 열렸다.

‘기쁘고 복이 들어오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흥복헌은 순종에게는 비운의 장소다. 순종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4년 만인 1910년 8월 22일, 일제는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인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내세워 흥복헌에서 어전 회의를 연다. 회의 내용은 ‘대한제국의 황제는 대한제국의 모든 통치권을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양여한다’라는 한·일 병탄조약을 체결하라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이지만 순종에겐 힘이 없었다.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감독하고 외교권을 행사하던 일본은 1907년에는 군대를 해산시켰고 각부의 차관을 일본인으로 임명했다. 1909년에는 사법권을 박탈했다. 병풍 뒤에서 회의를 듣고 있던 효황후가 횡급히 옥새(황제의 도장)를 치마 속에 감췄으나, 윤덕영이 치맛자락을 들추고 옥새를 빼앗아 결국 조약은 체결되고 8월 29일 순종황제가 조약을 공표하면서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이는 1910년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적 치욕이라는 의미로 ‘경술국치’라고도 불린다. 나라를 빼앗긴 순종황제는 1926년 4월 25일 이곳, 흥복헌에서 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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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코스 소감 최윤아 역사통 기자단 1기 | “창덕궁에 1917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자 일본인들은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 창덕궁으로 옮겨와 다시 지었다고 해요. 한옥이 끼워 맞추는 형식으로 짓기때문에 옮겨서 새로 짓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맘대로 궁궐을 훼손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글=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동행취재=역사통 기자단 1기(분당 장안초)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중앙포토, 해설=최연섬 문화유산국민신탁 활동가, 진행=황정옥·이민정 기자, 권소진 인턴기자, 나성진 문화유산국민신탁 연구원, 강철웅(한국전통문화대 4)·이민희(경인교대 1)·이수인(경희대 4) 대학생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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