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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문화유산국민신탁·카툰캠퍼스가 함께하는 역사통(通) 기자단

온라인 중앙일보 2015.10.04 00:05
역사통 기자단 1기는 9월 20일 창덕궁으로 마지막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창덕궁은 임진왜란 이후 258년 동안 조선의 법궁 역할을 했던 궁궐로 조선왕조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번 답사는 찬란했던 조선왕조의 역사를 따라가는 여정은 아니었습니다. 최후의 황제 순종을 따라 대한제국의 마지막 길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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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돈화문 → 진선문 | 고종의 개혁은 일제의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이에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이준·이위종 특사를 파견해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려 한다. 하지만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07년 7월 황제에서 물러난다. 순종은 그해 11월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가 된다.

[역사통 기자단 따라잡기] 창덕궁 ③ 1910년 8월 29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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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통 기자단 1기는 찬란했던 조선왕조 역사와 대한제국의 마지막이 공존하는 창덕궁에 모였다. 창덕궁은 경복궁에 이어 지어진 조선왕조의 두 번째 궁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이 중건했다. 경복궁 중건 이전 실질적인 조선의 법궁 역할을 했으며 가장 오래 왕이 기거한 궁이기도 하다.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으로 이층 문루(아래는 출입문, 위에는 누를 지어 사방을 살피는 기능을 함) 형식이다. 이층에는 종·북을 달아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돈화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금천이 나온다. 경복궁이 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듯 정문·정전·편전·침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것에 비해, 창덕궁은 돈화문을 시작으로 정전·편전·침전이 여러 축으로 나뉜다. 자연 지형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게끔 지어서다.

창덕궁의 궐내각사는 대부분 사라지고 2000년대 복원된 서편 궐내각사만 남아있다. ‘궁궐 안의 관아’라는 뜻의 궐내각사는 왕을 보좌하던 관청들을 말한다. 왕의 자문역할을 하던 홍문관, 학문을 관장하던 규장각 등이 대표적이다. 금천교를 지나면 조선 초기 백성이 북을 쳐서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던 신문고가 있었던 진선문이 나온다. 신문고는 실효가 없다는 이유로 연산군 때 폐지됐다가 1711년 영조에 의해 부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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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 소감 정서윤 역사통 기자단 1기 | “창덕궁 진선문에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북을 쳐 왕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는 신문고가 달려 있었다고 해요. 신분제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이런 제도가 있었다는 것에 놀랐어요. 하지만 함부로 칠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일단 진선문까지 오려면 궁궐 안으로 들어와야 하고, 허위로 북을 쳤다가는 더 큰 벌을 받았거든요.”


글=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동행취재=역사통 기자단 1기(분당 장안초)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중앙포토, 해설=최연섬 문화유산국민신탁 활동가, 진행=황정옥·이민정 기자, 권소진 인턴기자, 나성진 문화유산국민신탁 연구원, 강철웅(한국전통문화대 4)·이민희(경인교대 1)·이수인(경희대 4) 대학생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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