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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 <15> 창백한 푸른 행성

온라인 중앙일보 2015.10.04 00:02
이스터 대륙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늘은 그대로 투명한 창이었다. 우주의 어린 행성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곳곳에 작은 폭포들이 무지갯빛 물을 쏟아냈다. 썸은 모가지를 길게 빼고 위엉 울었다. 썸보다 키가 큰 나무들이 살랑살랑 이파리를 흔들자 썸은 골리쌤을 모가지에 태우고 달디단 여린 이파리를 따먹었다. 수리와 사비, 마루, 볼트는 썸과 골리쌤의 이쁜 모습을 부러운 듯 넋이 나간 채 쳐다보았다.

수리와 쌍둥이처럼 닮은 ‘외로운 빨간 외투’를 만나다

“이제 골리쌤은 만찢녀야.”

사비는 첫사랑에 빠진 소녀의 미소를 지었다.

“무식하긴. 만찢녀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지칭하는 거야. 이건 아니지? 그리고 만찢녀가 뭐냐? 사비 네가 이따위 단어를 골라 쓰다니 실망인걸? 메롱.”

마루가 킬킬 웃었다.

“자자, 그만 해. 우리는 숫자를 찾으러 왔고 숫자들의 비밀을 풀려고 이곳까지 왔어. 사소한 걸로 싸우지 말자.”

수리가 사비와 마루의 말싸움을 멈추려 했다. 그러자 사비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러시던지.”

사비의 머리카락에서 하얀 빛깔의 수상한 물체가 반짝였다. 수리가 실실 웃었다. 그리고 사비의 머리통을 퍽 쳤다.

“머리 좀 감아라. 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무지갯빛 물이 안 보이니? 여자가 비듬이라니? 이건 아니잖아요? 사비양?”

사비가 얼굴이 발개진 채 씩씩거렸다.

“비듬? 태어나서 이런 모욕적인 말은 처음 들어보네. 이건 헤어팩 찌꺼기라고. 무식하긴?”

사비가 수리의 머리통을 퍽퍽퍽 하고 세 번이나 쳤다. 사비가 얼마나 세게 쳤는지 수리의 머리통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여기까지 와서 헤어팩을 했단 말이야? 그 말을 믿으라고?”

계속 시비를 거는 수리에게 사비가 이제는 대련 자세를 취했다.

“알았다. 알았어. 우리는 숫자를 찾으러 왔고 숫자의 비밀을 풀어야 한다고. 장난은 그만! 나도 그만할게.”

수리는 항복한다는 의미로 두 팔을 높이 들었다. 사비도 대련 자세를 풀었다.

“거인들이 와요. 수리 형. 폴리페서야.”

볼트가 소리쳤다.

“진짜 얼굴 크다.”

“얼굴만 크니? 키도 크잖아?”

마루와 사비가 주고받았다.

“그만해라. 앞으로 남은 숫자를 찾으려면 갈 길이 멀다. 앞으로 너희 둘, 내 명령에 따라.”

마루가 거만하게 앞으로 나서더니 거인들을 직접 마주했다.

“어이, 거인들 안녕, 폴리페서 안녕!”

폴리페서의 얼굴은 곧 험악해졌다.

“아직도 이상한 물안경을 쓰고 있네요. 으하하. 물 족제비처럼 생겼어.“

“무릎 꿇어!”

거인이 깐죽거리는 마루에게 명령했다.

“뭐?”

마루가 괜히 용감한 척 빤히 쳐다보았다.

“무릎 꿇어!”

“네에? 무릎을 꿇으라고요?”

마루는 어느새 뒷걸음쳤다. 수리의 뒤로 쏙 숨었다.

“난 네 명령을 따를 거야. 수리야.”

수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거인들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대해 배워서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내 꿈에 당신들이 나타났었고….”

순간 수리의 안색이 바뀌었다.

“왜 그래?”

사비가 속삭였다.

“나중에 알려줄게, 방금 무언가 깨달았거든.”

수리도 속삭였다.

“난 책에서 당신들을 보았어요.”

마루가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맞아. 난 이스터 섬에 여행도 갔었다고. 물론 교사들의 단체여행이라 로맨틱하지 못했지만.”

골리쌤이 썸의 모가지에 탄 채 말했다.

“이것 봐. 황금이야. 황금. 이곳이 혹시 엘도라도 아닐까?”

사비가 쿵쿵 뛰었다. 이스터의 땅은 황금이었다. 황금 사이사이로 흙이 보였고 풀이 보였고 물이 보였다. 황금과 땅과 풀은 교묘하게 서로 교차하며 얽혀있었다. 격자무늬의 땅이었다.

외로운 빨간 외투가 전한 메시지

그러나 수리는 자신이 밟고 서있는 땅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저만큼 외로운 빨간 외투가 보였기 때문이다.

“아, 저…저….”

수리는 달려갔다. 외로운 빨간 외투도 달려가고 있었다. 수리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제발 멈춰봐요. 멈춰요.”

외로운 빨간 외투는 갑자기 멈추었다. 뒤를 돌아 수리를 보았다.

“앗!”

수리는 외로운 빨간 외투를 보고 경악했다. 수리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당신은…?”

“드디어 만났군.”

외로운 빨간 외투는 낮게 읊조렸다.

“내 꿈에 항상 나타났었죠? 왜죠?”

“난, 너의 과거이자 너의 미래이니까. 모든 너야.”

수리는 눈을 끔뻑거렸다.

“나는 왜 이렇게 멀리 돌아 이 섬에 온 거죠? 이곳은 과거의 이스터 섬인가요? 아니면 미래의 이스터 섬인가요? 아니면….”

“그건 중요하지 않아. 시간은 앞으로도 흐르고 뒤로도 흐르니까.”

“그럼 뭐가 중요하죠?”

“우리들의 탐욕. 모두의 탐욕 말이야.”

수리는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이 땅은 본래부터 황금만 있는 땅이었어. 지금은 흙도 있고 풀도 있고 물도 있고… 언젠가부터 이 황금만의 땅에 이런 게 얽혀들었지. 네피림은 황금이 있어야만 하는 생명체이고.”

“그들이 생명체라는 것도 누이들이 기계라는 것도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외로운 빨간 외투가 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너의 뇌 속에 무언가 있을 거야. 너의 아빠가 심어놓았지? 너의 뇌만큼은 생명체가 아닌 거지. 그럼 너는 생명체일까? 기계일까? 네가 네피림이 그토록 찾고자 하는 숫자들을 풀 수 있을 거다. 숫자와 기호들의 비밀을 풀면 인류의 정체성에 대해서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될 거야.”

외로운 빨간 외투의 말은 계속되었다.

“네피림은 황금을 찾아 행성 간을 여행했고 그러다 눈먼 여행자를 만났어. 눈먼 여행자는 네피림들에게 창백한 푸른 행성에 관한 얘기를 해줬지.”

그 행성은 창백하도록 푸르렀다. 많은 외계생명체들은 그 행성을 그냥 지나쳤다. 창백하고 푸른 행성에는 그들이 찾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엉뚱한 행성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자신들의 고향행성이 멸망할 무렵, 외로운 빨간 외투를 만났다. 외로운 빨간 외투는 창백하고 푸른 행성을 다시 찾아가라고 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창백하고 푸른 행성을 다시 찾아온 외계생명체들은 놀라운 걸 발견했다. 바로 황금이었다. 황금은 행성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외계생명체들은 황금을 캘 기계인간 42개를 창조해 누이라고 부르고, 행성은 이스터라고 불렀다. 자신의 고향행성에서 동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리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사비도 마루도 멍한 표정이었다.

“42? 기억났어. 아빠는 날 그곳에 데려갔어.”

“그곳이라니? 수리야 빨리 말해봐.”

“그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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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임수연]


아빠를 따라 도착한 푸른 창백한 푸른 행성

아빠를 따라간 수리는 그곳의 이상한 환경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사방에 돌덩이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완벽한 구 형태였다. 구 형태의 돌덩어리들은 수백 개가 흩어져있었다. 아빠는 연구원들과 함께 막사를 치고 조심스럽게 유골을 발견하고 있었다. 아직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다리뼈 길이만 해도 2미터는 넘어보였다.

“무려 42개의 유골이다. 이건 기적이다. 이걸 발견하다니.”

수리는 기뻐하는 아빠를 향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였다.

“아프리카에는 여러 종류의 호미니드(Hominid)들이 있었고 그중 키가 큰 자이언트, 즉 거인들이 있었고 무려 180센티미터나 되는. 그렇죠? 아빠.”

“자이언트 중에 하나의 밴드만 아프리카를 떠나 어딘가에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이 유골들은 훨씬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혀 새로운 인류다. 아빠가 그걸 증명할 거야.”

아빠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과연 증명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꼭 아빠가 증명해내길 바래요.”

아빠가 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리야. 잘 들어라, 너는 반드시 이 비밀을 알아내게 될 거다. 내가 아니라 네가 해낼 거다.”

아빠는 다시 유골로 돌아갔다. 수리는 좀 떨어져서 유심히 보았다. 그들의 해골에서 무언가 반짝거렸다. 그건 분명히 황금이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빚어진 것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칩 형태의 황금 조각이었다.

수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외로운 빨간 외투에게 물었다.

“나비는요? 나비가 이곳에 있나요?”

외로운 빨간 외투는 대답하지 않았다 폴리페서가 바짝 다가왔다.

“무릎 꿇어.”

“왜요? 우리는 서로 적이 아니에요.”

“난 왕이다. 누이들의 왕이다.”

수리는 별안간 소리질렀다.

“먼저 도착한 게 아니야. 당신은 이스터 대륙에 항상 있었어. 그리고 훔치는 것도 모자라 나비를 볼모로 네피림에게 황금을 요구한 거야. 내가 숫자의 비밀을 푸는 것도 싫겠지.”

폴리페서는 수리를 노려보았다.

“가둬라. 세 아이들. 못생긴 노처녀. 그리고 멍청한 공룡도. 몽땅. 아, 볼트 요놈은 남겨둬.”

거인 병사들이 나타났고 수리와 마루·사비, 그리고 골리쌤과 썸은 포박당한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 볼트는 울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수리를 보았다.

“이게 뭐지? 코끼리 다리인가? 엄청 굵고 두껍네.”

수리와 사비, 마루는 엄청난 두께의 돌덩이를 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온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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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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