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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대 기업 DNA,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7) 한화그룹

온라인 중앙일보 2015.10.04 00:01
포브스코리아와 한국경영사학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특별기획 ‘한국 10대기업 핵심 DNA, 창업자들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의 7번째 기업은 신용과 의리의 리더십으로 글로벌 경영을 선도하는 한화그룹이다. 특히 한화그룹 김종희 창업주와 김승연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집중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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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탁월한 결단력을 보이는 승부사다. 김 회장이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해 적극적인 투자를 주문하고 있다. / 중앙포토

창업 63년, 도전정신과 혁신경영으로 글로벌 시장 선도하는 사업보국 기업

광복 70년인 올해 한화그룹은 특별히 ‘63’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깊었다. 우선 올해가 창사 63주년이다. 한화그룹은 1952년 현암 김종희 회장이 설립한 한국화약을 그 모태로 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도 기업 설립과 같은 1952년 생으로 올해 만 63세다. 그래서일까? 올 한해 한화그룹에는 어려움 속에서도 경사가 잇따랐다.

우선 63층 249미터 높이의 초고층 빌딩으로 국내외 관광객들의 명소인 여의도 ‘63시티’를 입지로 삼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지난 7월 치열한 경쟁 끝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특허를 따냈다. 한화그룹은 63빌딩 시내면세점을 서둘러 오는 12월에 오픈한다는 목표로 준비에 돌입, 지난 9월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창사 63년에 63빌딩 면세점 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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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 김종희는 사업보국의 기업인이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하거나 투자를 결정하는 기준은 사업보국의 이념에 철저히 부합하는지 여부였다. / 한화그룹 제공

성적이 꼴찌를 달리던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도 올해들어 몰라볼 정도로 환골탈태했다. 야구의 신(神)이라는 김성근 감독을 영입한 뒤로는 연일 팬들을 울리고 웃겼다. 한화 팬들은 선수들의 불꽃투혼에 아직도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을 거두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인 9월 15일에도 낭보가 이어졌다. 유가 하락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화건설이 지난 4월 이라크 정부로부터 수주한 2조4000억원 규모의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비 가운데 사회기반시설 공사에 대한 선수금으로 2천400억원을 받아낸 것이다. 해외건설 단일공사 금액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한화그룹은 이로써 그룹 내 자금 사정이 풍부해진 것은 물론 삼성 4사 빅딜에 따른 자금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한화그룹은 올 한해를 “내실을 기반으로 대통합의 기틀을 다지고 시너지를 확대하는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은 바 있다. 불확실한 경제환경 속에서 선제적인 대응으로 기업의 본원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고,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사업 부문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계획대로 진행돼 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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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한국화약 인천 공장을 방문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 / 한화그룹 제공

한화는 어려운 대내외적 경제 여건 속에서도 김승연 회장을 중심으로 전 임직원이 똘똘 뭉쳐 글로벌 경영을 선도하며 그룹의 경영철학인 사업보국을 실천하고 있다. 포브스코리아가 한화그룹의 기업가정신을 10월호에 게재하면서 특별히 현암 김종희(1922~1981) 창업주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커버스토리로 선정한 데는 이런 의미와 배경이 있다.

대한민국의 사업보국을 대표하는 기업, 한화그룹을 일으킨 현암(玄岩) 김종희 선대회장은 어떤 기업인일까? 현암 김종희 회장은 국내 10대그룹 창업주 가운데서도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사명감 넘치며 강직한 성품을 지닌 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현암은 충남 천안 태생이다. 그는 1942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하며 처음 화약과 인연을 맺었다. 일본의 패전 후 공장을 인수해 한국화약을 창업했고, 이후 국내 유일의 화약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던 조선유지 인천공장 인수를 위해 일본까지 찾아가 설계도면을 확보해 설비를 복구하는 등 사업에 대한 열정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오늘날의 한화그룹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현암은 소비재 생산으로 쉽게 축재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마다하고 ‘사업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을 한화의 사명으로 결정했다. 경영사학자들에 따르면, 이는 현암이 당시 영위했던 사업의 특수성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화약처럼 진실 되고 정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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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성공업 진해공장을 방문한 고 박정희 대통령. 김종희 회장은 석유화학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에 한국화성공업을 설립했다. / 한화그룹 제공

현암의 닉네임 ‘다이너마이트 김’은 화약 전문가이자 기업인으로서 집념과 열정을 보여 준다.

“화약은 진실하다. 화약은 반드시 폭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약은 정직한 장소에서 정직한 시간에 폭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화약을 만드는 사람은 경영자를 중심으로 관리자, 기술자, 기능원 등 모두가 화약처럼 진실 되고 정직해야만 한다. 또한 화약사업의 리더들은 인간성 중시의 리더십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현암이 임직원들에게 평소 강조했다는 이 말은 그가 ‘인본주의와 사업보국주의 등 인간성을 중시하는 변혁적 리더십’을 경영자가 갖춰야 할 이상적인 자질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현암이 조직관리의 핵심 신조로 ‘의리와 신용’을 추구한 것은 이처럼 현암의 사업 분야가 고위험 상황을 항상 포함하고 있었다는 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폭발성이 강한 화약분야는 단 한 사람의 방심과 해이가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정신적 유대가 어느 사업장보다도 중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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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건설 공사 현장을 방문한 김승연 회장.

현암의 ‘신용’에 대한 경영 신조는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암은 화약 사업을 통해 국가에 기여하고 많은 인재를 고용하며, 국가에 많은 세금을 납부하는 것을 사업가로서 필생의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광복 이후 국가와 민간이 필요로 하는 화약을 적기에 공급하려 애썼고, 혼란한 물가폭등 시기에도 적정 가격을 유지했다. 그래서 당시 엄청난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화약가격을 광복 이전의 수준으로 유지해 정부의 전후 복구사업과 건설에 큰 도움을 주었다.

현암은 한국화약을 창업한 이후 30여 년 간 화약산업과 기계, 석유화학, 에너지 등 중후장대형 산업을 중심으로 기업을 일으켰다. 국가경제의 핵심과제였던 기계공업 육성을 위해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신한베어링을 인수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석유화학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에 벌써 한국화성공업을 설립했다. 전력이 부족하던 1969년에는 대규모 정유공장인 경인에너지를 건설해 사업보국의 이념을 더욱 확고히 실천해 나갔다.

또한 당시 국내 유수의 천안 북일고를 설립해 육영사업을 통해 이익의 사회 환원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현암은 1970년대에는 한화를 일반제조 및 서비스산업으로 사업 분야를 다각화하는데 성공해 지금의 ‘그룹경영’의 기틀을 다지는데 공헌했다.

현암 김종희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연구한 이광주 단국대 명예교수는 “현암의 삶은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그 자체였다. 사업보국의 정신이야말로 한국전쟁 전후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외면하고 오로지 국가 기간사업에 전념하게 한 원동력이었다”며 높이 평가했다. (52쪽 참조)

평생을 사업보국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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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은 재계의 휴머니스트라 불릴만큼 직원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현암의 사업보국은 농업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영세한 낙농가 지원을 통해 농촌 재건과 국민건강에 기여하고자 부도 직전에 몰린 대일유업을 인수해 정상화시켜 오늘날 빙그레의 초석을 다졌다. 현암이 생전에 언제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투자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사업보국의 이념에 철저히 부합하는지를 따졌다는 것은 재계 내부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암 김종희 회장은 이처럼 평생을 사업보국 정신으로 기업활동을 전개해왔다. 이는 이후 장남인 김승연 회장에게 그대로 이어져 한화그룹의 가장 특징적인 기업가정신이 되었다.

1981년, 현암의 타계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김승연 회장이 그룹을 승계한다. 김승연 회장은 이후 창업자인 선대 회장의 뒤를 잇는데 그치지 않고 한화 그룹의 제2창업을 선도한다. 한화그룹 임직원들에 따르면, 김승연 회장은 취임 당시 “일생을 걸어서 보람 있는 직장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미래 한화의 이미지를 벌써 그려 놓았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취임 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임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화두를 던져온 혁신적 경영리더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해마다 하는 신년사에서 이런 말들을 했다. “어둠속에서 길을 떠나는 사람만이 새벽녘 기회의 강을 건널 수 있다.” 날 밝은 다음에 안전하게 떠나면 남들에게 뒤진다는 소리다. “글로벌 시대에는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는 먹이를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본능을 배워야 한다”라거나 “이 시대에는 큰 것이 작은 것을 먹는 시대가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먹는 시대다”라는 말도 했다. 김 회장을 두고 ‘구조조정의 마술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한화그룹 임직원들에 따르면, 김승연 회장은 집념과 열정이 남다른 승부사로서의 면모를 보여 왔다. 특히 한화그룹의 성공적인 도약을 이끈 인수합병(M&A)과 미래 성장동력 발굴, 그리고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의 순간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과감히 내놓는 희생과 헌신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이면에는 ‘경영의 승부사’로 불릴 정도로 탁월한 통찰과 결단력의 리더십이 있다는 평가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우선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김 회장의 희생과 용단의 리더십을 들 수 있다. 한화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주력 기업이 부도 위기에 처하는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다. 김승연 회장은 당시 계열사 주식과 금융자산, 집 등 사재를 담보로 제공하고 경영권 포기 각서까지 쓰는 용단을 내리며 주거래 은행을 통한 긴급 자금을 수혈하는 등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외환위기 상황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고, 기업체질을 개선하는 성과를 거둔다. 결과적으로 국내 주요 그룹들 중 외환 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하며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한다. 경영사학회 학자들은 이를 두고 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때 현암 김종희 회장이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내놓고 사고 수습에 매진하던 결단력을 닮은 듯 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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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은 야구단 운영에도 ‘의리경영’을 보여주기도 했다. / 한화그룹 제공


통찰과 결단의 승부사 기질

김 회장이 뚝심으로 일궈낸 한양화학 인수도 결단력의 사례로 거론된다. 김 회장은 1982년 취임 직후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 속에서 한양화학과 한국 다우케미칼의 인수 제의를 받았을 때 그룹 내부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인수 추진을 결정한다. 이후 국내 재계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화학을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키워냈다.

대한생명 인수성공과 경영 정상화 과정도 빼놓을 수 없다. 김 회장은 당시 생명보험은 성숙기에 접어든 사업이라는 내부 반대를 뚫고 그룹의 재도약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단으로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한 뒤 직접 대표 이사를 맡아 보수도 받지 않으면서 경영 정상화에 매달렸다. 결국 7년여 만에 공적 자금까지 투입되었던 회사를 증권 시장에 상장시키는 등 완벽하게 탈바꿈시키는데 성공한다.

최근에는 이라크 건설 수주로 재계의 부러움을 샀다. 여기에서도 김 회장 특유의 집념과 결단력이 빛났다. 이라크가 전후 복구사업의 일환으로 100만호 국민주택 건설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 전 세계 건설업체들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우려해 쉽지 않은 사업이라며 발을 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김 회장은 모두가 망설일 때 나서지 않으면 기회를 선점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건설 현장에 본인의 야전숙소도 만들라며 사업 참여를 적극 독려했다. 2012년 마침내 한화건설은 국내 단일 해외건설 사업규모로는 사상 최대인 80억 불(약 9조원) 공사를 수주했고, 국내에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키는 주역으로 급부상했다.

김승연 회장의 경영자로서의 능력은 이처럼 재계 안팎에서 먼저 인정할 만큼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시장 전망이 불확실했고 레드오션이라고 의문점이 들던 태양광사업에 진출한 것도 탁월한 결단력이었다. 김 회장은 태양광이 침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던 2011년 10월 한화그룹 창립기념일 기념사를 통해 “태양광과 같은 미래 신성장 사업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투자하며 그룹의 새 역사를 이끌 소중한 토대로 키워가야 한다.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불확실한 사업환경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해낼 수 있다’, ‘꼭 해낸다’는 믿음으로 묵묵히 추진해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김 회장의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한화그룹은 지난 몇 년간의 극심한 태양광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거듭해왔고, 한화큐셀은 현재 셀-모듈분야 생산 세계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승연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지난해 말 삼성그룹의 방산·화학부문 4개 계열사를 인수하는 빅딜을 성사시켜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화는 역대급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63년 한화그룹 역사 동안 줄곧 그룹 성장의 모태가 돼 온 방위사업과 석유화학사업의 위상을 국내 최대 규모로 격상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인수로 국내 방위사업 분야 1위로 도약했고,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 인수로 석유화학사업 부문 매출규모 18조원으로 국내 1위의 지위를 확보했다.

지난 7월 신규면세점 사업에서도 시장의 일반적인 예상을 누르고 한화갤러리아가 시내면세점 면허를 따내는 등 김 회장이 사업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추진력은 탁월하다는 평가다. 이는 김 회장이 29살 때부터 경영에 뛰어들어 한국 경제계의 산 증인이라 불릴 만큼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게 중론이다.

재계 최장수 경영자의 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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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충남 천안에 오픈한 충남창조경제 혁신센터에 박근혜 대통령과 김승연회장이 함께 했다.


실제 김승연 회장은 현재 재계 최장수 경영자에 속하는 만큼 재계리더로서 사업적 연륜과 경험은 단연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의 행동모토이자 일생의 좌우명은 ‘대붕역풍비 생어역수영(大鵬逆風飛 生魚逆水泳)’이다. 이는 백범 김구선생이 남긴 말로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 있는 고기는 물을 거슬러 헤엄친다는 뜻이다. 던져야 할 때 과감히 던지고 조류를 거슬러서 위기를 헤쳐나가는 기개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좌우명대로 그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현실에 안주하거나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 안목에서 대범한 결정을 내렸다. 앞서 살펴본 결단의 사례들이 그것이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 격랑의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한 선대회장인 현암의 경영이 화약, 화학, 기계 등 기간산업 중심이었다면, 김승연 회장은 금융, 유통, 레저 산업을 강화함으로써 선진화 사회에서의 산업동향과 동행하는 그룹 자산의 포트폴리오 경영상의 합리성을 추구했다. 선대 경영의 ‘수성’에 그치지 않고 ‘창업’의 경영의지를 실천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이 1981년 취임 당시 그룹 매출액은 1조1000억원이었지만 2014년에는 44조원이 넘는 매출액을 달성했다. 획기적인 경영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포브스코리아의 조사 자료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국내의 대기업 계열군의 오너 2, 3세의 승계 후 자산 증식 점수를 보면 1위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으로 5,206%(연평균 193%)이고, 그 다음이 김승연 회장으로 4,810%(연평균 148%)로 집계됐다. 김승연 회장은 승계 당시 후계자 중 자산규모가 다른 재벌에 비해 가장 작았지만 승계 후 눈부신 성장을 기록해 1981년 취임 당시 자산의 48배 이상으로 성장시켰다.

김승연 회장이 그룹을 크게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카리스마와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해 온 승부사적 리더십, 그리고 위기관리 능력과 트렌드를 읽는 의사결정의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 한화그룹의 기업가정신을 연구해온 경영사학자들의 진단이다. 물론 이러한 성과를 가능케 한 것은 인간적인 진정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힘, 즉 신용과 의리의 철학이 김 회장에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선대로부터 이어왔고, 김승연 회장의 경영철학이기도 한 신용과 의리에 기반한 특유의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 신용과 의리는 지금도 김승연 회장의 삶의 신조이자, 한화 구성원들에게 내재화된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며 위기의 순간마다 끈끈하면서도 강인한 기업 문화를 구축해온 근간이다. 한화그룹은 이러한 신용과 의리를 한화정신으로 규정해 비즈니스를 포함한 모든 대내외 접점에서 전 임직원들이 실천해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신용’은 인간사회의 변하지 않는 덕목이며 ‘의리’는 사람간의 올바른 도리로 인간관계의 가치를 존중하는 기업인의 불가결한 덕목으로 여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외부에선 간혹 한화그룹의 사훈인 ‘신용과 의리’에서 ‘의리’라는 용어를 왜곡해 해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화그룹 내에서 ‘의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인 만큼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과 의리의 경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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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63시티. 면세점이 들어서 오는 12월에 오픈할 계획이다. / 한화그룹 제공

김승연 회장은 인간관계에서도 신용과 의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평소에도 그룹의 동반성장 철학이기도한 ‘함께 멀리’ 정신을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김승연 회장은 특히 재계의 휴머니스트라 불릴만큼 직원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평소 어려운 처지에 놓인 직원들과 이웃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격려하는 마음이 따뜻한 경영자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을 접한 김승연 회장은 “그룹의 창업이념인 사업보국을 실천하고 방위산업체를 경영하는 그룹으로서 유가족들에게 가장 절실한 부분이 무엇이지 고민해 보자”고 제안하며 “단기적·물질적 지원보다는 항구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유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화그룹은 사건 발생 직후인 2010년부터 유가족 중 희생자의 직계, 배우자, 형제자매를 대상으로 채용을 약속하고 지금까지 그 약속을 실천해왔다. 천안함 사건 5주기를 앞둔 올해 3월에는 한화그룹에 입사한 대원의 유가족들을 초대하여 격려하고 천안함 46명의 용사들의 희생정신과 숭고한 뜻을 기리는 행사를 가졌다. 한화그룹에 따르면, 총 38명의 희망자 중 현재까지 18명이 입사했거나 입사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로버트 김에 대한 장기적인 숨은 후원도 빼놓을 수 없다. 김 회장은 미국에서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수감되었던 로버트 김을 97년 미 연방 교도소 수감 당시부터 2003년 후원회 정식 발족 이후까지 오랜 기간을 개인적으로 비공개로 지원해왔다. 이 사실은 2005년 자유의 몸이 된 로버트 김이 MBC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밝히면서 세상에 우연히 알려졌다.

여기에 2005년, 그룹 내 질환이나 투병생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직원 가족들을 돕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에서 사랑의 행진을 직접 제안해 직원들과 1박 2일 간 50km를 걸으며 후원금을 마련하여 투병 사우와 가족들에게 전달한 일이며, 1999년에 당시 한화이글스 유승안 코치의 부인이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하자 위로금과 함께 치료비의 상당부분을 부담하고 그룹 차원의 헌혈운동을 개최하는 등 투병을 지원한 일은 지금까지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회자된다.

재계에서 ‘의리경영’을 주창하고 있는 김승연 회장은 김인식 감독이 2005년 한화 감독으로 취임 후 시즌을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우리가 믿고 영입한 감독인데, 건강이 나빠졌다고 해서 바로 교체하는 건 평소 그룹과 우리의 경영정신인 신의에 어긋난다며 김 감독이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믿고 기다리라”고 주문해 야구 관계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선친인 현암이 세운 북일고 등 교육계에 대한 애정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한 북일여고 신입생의 경우 3년간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해 학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렇듯 김승연 회장의 기업가정신에 힘입어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화그룹은 올 하반기에 그룹의 핵심역량을 글로벌 수준으로 혁신하고, 미래 생존 경쟁력을 적극 확보해 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화는 삼성그룹의 방산·화학부문 4개 계열사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신성장 동력을 육성하기 위해 투자한 유화사업은 최근 실행된 빅딜을 통해 국내 1위를 넘어 글로벌 탑티어로 위상을 강화하게 됐다.

방위산업 부문도 유도무기, 전자전체계, 자주포 및 항공기 엔진 등 방산 전 분야에 걸쳐 글로벌 수준의 무기 체계를 공급할 수 있는 종합 방산업체를 지향하고 있다.

금융보험 분야에서는 글로벌 플랫폼 구축 및 M&A를 통한 글로벌 수준의 자산운용사업 성장과 더불어, 해외보험사업 확대, 빅데이타·핀테크 등 차세대 IT기술 및 건강, 연금시장 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Top 보험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차세대 에너지리더 김동관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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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63시티. 면세점이 들어서 오는 12월에 오픈할 계획이다. / 한화그룹 제공

백화점과 면세점 사업은 7월에 새 면허를 따낸 63빌딩 면세점을 통해 도심에 치우친 외국인 관광객을 여의도 지역으로 유치해 지역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관광·문화·쇼핑이 연계된 새로운 관광문화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같은 한화그룹의 모든 비전과 사업의 분야에 김승연 회장의 사업보국, 신의와 의리, 혁신경영의 리더십이 속속 발휘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주목할만한 것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2) 한화큐셀 상무의 글로벌무대 활약상이다. 김 상무는 지난 9월 9일부터 11일까지 중국 다롄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세계 1위 태양광 회사의 전 세계 영업을 책임지는 영업실장으로서의 에너지시장 흐름과 향후 전망에 대한 식견과 전망을 피력하면서 에너지 분야의 차세대 글로벌 리더로서 자리매김을 했다.

한화큐셀은 한화그룹 태양광 사업의 양대 축인 한화큐셀과 한화솔라원이 2015년 2월 통합한 회사로, 현재 셀 생산규모 기준으로 세계 1위의 태양광 회사로 글로벌 시장을 확고하게 지배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전력회사인 넥스트에라(NextEra Energy)에 1.5GW에 이르는 사상 최대규모의 모듈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실적을 거두며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지난 5월에 충남 천안에 오픈한 충남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충청지역 태양광 허브 구축과 농어촌 지역의 숨은 명품을 발굴해 농어민 소득기여에도 기여할 예정이다.

태양광 사업은 한화그룹이 그룹의 미래 100년을 이끌 신성장동력으로 차세대 그룹 성장을 견인할 쌍두마차다. 김동관 상무의 활약상은 창업주 현암에게서 김승연 회장에게 계승된 사업보국의 기업가정신이 3세에 이르러 글로벌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화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 포브스코리아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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