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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무현·김정일 수시로 직접 통화했다”

중앙일보 2015.10.02 00:02 종합 1면 지면보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 정상 간 핫라인(직통전화)이 가동됐었다고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1일 밝혔다.

김만복 ‘2차 정상회담’ 증언
“정상 간 핫라인 24시간 가동
DJ 때 개설해 MB 때 없어져”


 김 전 원장은 본지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선 ‘백채널’(비밀창구)을 활용할 필요가 없었다”며 “이미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상시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 핫라인이 뚫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기밀사항이지만 핫라인은 24시간 가동됐다”며 “핫라인과 연결된 우리 측 전화기 벨이 울리면 김정일 위원장의 전화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핫라인을 통해 남북 정상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남북관계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내용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원장은 “핫라인은 현재 통일부 라인(판문점 남북 연락사무소 직통전화)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양 정상 간의 직접 통화를 위한 것”이라며 “양국 정상이 어디에 있든 언제든지 통화가 가능한 상태로 운영됐다”고 설명했다.

 남북 정상이 상시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이 개설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전 원장은 “핫라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잘된 남북관계로 인해 개설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이 미리 닦아놓은 길을 활용할 수 있었기에 훨씬 수월하게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핫라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하고 얼마 안 돼 끊긴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라인이었는데 없어져 아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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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북 핫라인 통해 자주 불만 표출…지금은 그런 채널 없어 아쉬워

남북 정상 간 핫라인(직통전화)이 존재했고 남북 정상 간 수시로 통화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1일 본지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의 존재를 비롯해 정상회담 뒷얘기를 공개했다. 인터뷰는 최익재 외교안보팀장이 진행했다.
 
 -2차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백채널(비밀창구)을 활용했나.

 ▶김만복
=“이미 양국 정상 간 핫라인이 개설돼 있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서울과 평양에) 직통으로 연결된 전화기 앞에 직원이 24시간 대기하고 있었다. 따라서 양 정상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통화가 가능했다. 핫라인을 통해 남북 정상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다. 물론 그 존재는 비밀이었다. 지금은 남북 간 핫라인이 없어져 참 아쉽다. 그 라인을 통해 북측이 불만도 많이 표출했고 오해라는 설명도 많이 했다.”

 -핫라인이 개설된 과정은.

 ▶김만복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 남북 간 백채널이 없어 (재일동포 사업가인) 요시다 다케시(吉田猛)를 활용해 북한과 접촉했다. 나도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기에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측에선 우선 요시다를 통한 대북 접촉을 해보고 여의치 않을 경우 제2, 3, 4선을 통해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요시다를 통한 대북접촉이 원만하게 성사됐다. 이렇듯 김 전 대통령 시절 잘된 남북관계로 인해 핫라인이 개설돼 노무현 대통령 때까지 이어졌다.”

 핫라인 외의 남북 간 직통전화는 1971년 처음으로 개통됐다. 그해 9월 남북 적십자회담 제1차 예비회담에서 처음으로 합의돼 판문점 내 양측 지역을 연결했다. 72년에는 7·4 공동성명을 계기로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노동당 김영주 조직지도부장 사무실에 직통전화가 각각 설치됐다. 이후 판문점 남북 연락사무소와 군 상황실, 항공관제센터 등에 직통전화가 개설됐으나 모두 실무진을 위한 라인이었다. 정상 간 핫라인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이 자주 쓰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이 10·4 선언에도 들어가 있는데.

 ▶김만복
=“말 그대로 받아들이자.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 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북한이 먼저 이 말을 쓰고 선전에 활용하니까 문제가 된 것이다. 2차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10·4 선언 제1항 ‘…남과 북은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며…’)에선 이 문구를 받아들였다. 2007년 사전협의를 위해 두 번째로 평양에 갔을 때 북측에서 갖고 나온 합의문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한민족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돼 있었다. ‘우리 민족끼리’는 넣고 ‘힘을 합쳐’는 빼자고 했다. 우리가 반미전선에 합류하는 듯이 북측이 선전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밤 12시가 됐는데도 안 빼더라. 그래서 내가 ‘끝내자. 짐 싸라. 서울 가서 대통령 지침 받은 후 다시 얘기하자’고 한 뒤 침실로 갔다. 그랬더니 새벽 4시에 날 깨우더라. 내가 확고하단 뜻을 다시 밝혔고 결국 그 표현은 빠졌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김만복
=“김정은에 대해선 분석과 추적이 더 필요하다. 젊은 혈기로 작은 자극에 크게 반응할 가능성도 있다. 남북관계를 풀려면 김정은에게 주는 자극을 정부 차원에서 조절하는 게 어떨까 싶다.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다른 수단을 통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재정=“우선 김정은을 인정하고 실체를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김정은의 성격 같은 것을 파헤치기보다는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집권층을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 위는 바뀌었지만 내부는 전혀 안 바꿨다. 통일전선부만 하더라도 이희호 여사가 갔을 때 영접한 맹경일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원장은 한 20년 동안 일선에 있는 사람이다. 김정은에 대한 이해와 판단도 중요하지만 그 라인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8·25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 이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졌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김만복
=“박근혜 정부가 지나치게 집착하는 대북 원칙은 바로 핵 문제다. ‘선(先) 핵 해결, 후(後) 남북관계 개선’이다. 이렇게는 절대 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8·25 합의가 선순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이는 위기상황 극복을 위한 산물일 뿐이다. 한두 차례 이산가족 상봉과 군사회담만을 하고 모든 것이 원위치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재정=“박근혜 정부의 대북원칙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비공식적 대화와 공식적 대화가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며 움직여야 정상회담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번 8·25 합의에 따른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관계를 푸는 출발점은 될 수 있다고 본다.”

 -남북관계에는 국제적 환경도 중요하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북핵 문제인데.

 ▶김만복
=“북핵 문제가 남북관계의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 두 가지를 모두 염두에 둔 병행전략을 써야 한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분명히 북핵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온다. 10·4 선언에도 당시 필요한 만큼 북핵과 관련한 내용을 넣었다. 그 과정에서 김계관 당시 외무성 부상이 정상회담 석상에 와서 김정일 위원장도 미처 보고받지 않은 내용을 직접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회고록 『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 10·4 남북정상선언』에 따르면 북측은 “핵 문제는 북·미 간 사안으로 6자회담에서 다루겠다”며 의제화 자체를 거부했다. 10월 4일 오전 회담에서 북핵 문제로 논의가 막히자 김정일은 6자회담 수석대표 김계관을 불러 북핵과 관련한 보고를 하게 했다.

 -정상회담을 한 지 이제 8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회고록을 펴낸 이유는.

 ▶김만복
=“이번 책은 본래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인 10·4 선언문의 해설서 격이다. 현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려면 꼭 참조할 내용이라고 본다.”

 ▶이재정=“박근혜 정부 후반기에 남북관계에 분명 어떤 변화가 와야 한다. 그 변화는 6·15 남북공동선언(2000년)과 10·4 선언의 정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국민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책을 냈다.”

최익재·유지혜 기자 ijchoi@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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