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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절망을 아는 가수 전인권, "음악의 흐름을 바꿔주고 싶다"

중앙일보 2015.10.0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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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이야기할 때 가수 전인권(61)은 이렇게 운을 뗀다. “내가 겪어봤으니까.” 그의 말이니 반박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없다. 마약과 얽힌, 그의 돌고 돌아온 인생사를 세상이 안다.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활동하다, 1985년 그는 들국화의 보컬로서 행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1ㆍ2집을 연거푸 내고서 들국화는 87년 돌연 해체했다.

전인권은 그 후 향정신성 의약품관리법위반 등 혐의로 5번 구속 수감됐다. 그의 삶은 덜거덕거렸지만, 그의 노래의 빛은 움추러들지 않았다. 2007년 대중음악 전문가들이 꼽은 ‘국내 100대 명반’ 1위로 들국화의 1집이 꼽히기도 했다. 올해로 들국화는 결성 30주년을 맞았다.

한국 록의 전설이라 평가받지만, 떠들썩한 잔치는 없다. 대신 전인권은 노래 하나를 내놨다. 제목은 ‘너와 나’다. 그는 노래 속에서 ‘너와 난 모두 버려도/힘이 넘치는 너와 난’이라며 절망보다, 희망을 말했다. 그의 노래에 자이언티, 윤미래, 타이거JK 등 후배들도 동참해 함께 불렀다. 2013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의 기일(10월 20일)도 얼마 남지 않은 때,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전인권을 만났다. 그는 “돌고 돌아 온 게 아니라 바다를 직방으로 건너 버린 게 내 인생”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4년 정도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국내 음악계의 흐름을 바꾸고 싶다”고 거듭 다짐했다.  
 
4년 남았다는 건 무슨 뜻인가
“만으로 65세에 내 음악 인생 끝내고 싶다. 그때까지만 일선에 서고 싶다. 나도 이제 어른이다. 음악의 흐름을 바꿔주고 싶다. 내가 꼭 해낼 거다. 나이 먹어 뒤로 간다는 생각 전혀 하지 않는다. 다만 안 되는 힘 쏟아 부으며 애처롭게 노래 부르는 가수는 되고 싶지 않다.”
요즘 가요계, 뭐가 문젠가
“지난 10년간 나온 노래를 거의 다 들어봤다. 음악은 있지만, 정말 좋은 음악, 진실한 음악이 없다. 미국도 많은 게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없다. 이대로 K팝이 글로벌로 갈 수 있을까. 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음악은 후퇴할 수 없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매클린이 그의 노래 ‘아메리칸 파이’에서 음악이 죽어버린 날을 묘사하지 않았나. 그게 가장 옳은 이야기다.”

전인권은 좋은 노래를 만들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모든 사회의 꽃은 음악이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게 음악”이기에 안타깝다고도 했다. 그는 요즘 밤 10시에 자서, 새벽 4시면 일어난다. 깨어나 음악만 했다. 최근 3년간 2~3시간 자던 것에서 조금 늘렸다. 의사가 경고했다. 그렇게 살다가는 죽는다고. 그의 기다란 오른쪽 손톱은 거의 깨져있다. 그렇게 될 때까지 기타줄을 부여 잡고 노래를 부르고 불렀을 터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뭔가
“음악. 음악에 거의 미쳤다. 내 자신이.”
 
지난해 전인권 밴드를 결성한 후 연습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노력을 안 했다. 음악을 배운 건 스물다섯, 어느 날 생긴 전축 덕이었다. 이후 LP를 모으러 다녔다. 2000장을 모아서 모든 곡을 다 들었다. 나는 그 2000장에 담긴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코드가 어떻고 공부한 게 아니라 그냥 들었던 거다. 최근 3년간 명곡을 카피하며 연습했다. 모방이고 흉내다.”
 
전인권에게도 모방하는 공부가 필요한가
“문학하는 사람이 계속 책을 보듯, 음악도 똑같다. 카피하고 공부하는 거다. 세계의 수많은 음악가 중 천재들이 히트를 친다. 그 음악은 믿고 듣고, 카피해 보는 거다. 60곡 정도 카피해서 밴드와 같이 연주하고 있다.”
전인권 밴드는 호흡이 잘 맞나
“최근 코러스 3명까지 영입해서 총 11명이 됐다. 코러스가 대학원생이다. 그 친구들이 놀라워하는 것은 내가 악보를 모른다는 거다. 나는 배운 적도 없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나한테 음악을 배우는 게 재밌는 현상이다. 늘 말한다. 우리는 똑같은 출발이다. 니가 낫고 내가 낫고 그런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계속 연습하자. 똑같은 마음으로.”
최근 발표한 ‘너와 나’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지난해 포항에서 열린 칠포 재즈페스티벌을 갔을 때다. 밤바다를 구경했다. 폭풍이 지난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 바다와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며 곡을 쓴다면 하고 가사를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 노래는 여럿이 함께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을 뛰어넘지 못하면 우리는 참 많이 헤매게 되지 않을까. 세월호가 사고 3개월 후였다. 지난 날 나의 힘겨웠던 일들을 모두 바다 속에 묻자 라는 생각도 했다. 힘들기 때문에 아프기 때문에 똑같은 세상을 다르게 봐야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모두 버려도 그 힘이 넘치는’ 이라는 가사가 생각났다. 내가 겪어봤으니까. 내가 모두 버린 적이 있고, 버리니까 새로움이 들어왔다.”
앨범이 아니라, 싱글로 곡 발표하는 건 처음이다
“현실적으로 이게 맞다. 앨범 내면 손해를 너무 많이 본다. 지난해 전인권 밴드로 출발하면서 11곡 담았는데 차라리 한 곡씩 낼 걸 그랬다 싶다. 그런데 또 너무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너와 나’를 포함해 5~6곡 정도 담긴 앨범을 이달에 낼 예정이다.”

전인권은 노래할 때 호랑이처럼 일갈한다. 쩌렁쩌렁한 그의 호령은 청중에게 메시지로 꽂혔다. 반대로 말할 때는 아주 낮고 느릿하다. 묻는 말에 흥얼대듯 답하다가 노래로 마무리되곤 했다.
 
한 때 목소리가 안 좋았다가 요새 다시 돌아온 것 같다
“마약 안 먹으니까. 옛날과 지금 잘하는 음악의 개념이 달라지기도 했다. 예전에 마약 할 때는 무대 위에서 조명이 쫙 내려오고 그 빛을 뚫기 위해 내가 소리를 으악 질렀다. 그 쾌감이 대단했다. 요즘은 음악 자체를 느낀다. (전인권은 갑자기 노래하기 시작했다. 비틀스의 ‘더 롱 앤드 와인딩 로드’였다.) 더 롱 앤드 와인딩 로드(The Long And Winding Roadㆍ길고도 험한 길)~. 좋지 않나요.”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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