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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폴크스바겐은 문제 없나” 출고 직전 계약해지 잇따라

중앙일보 2015.10.01 02:55 종합 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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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그린피스가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폴크스바겐 공장 앞에서 시위를 하며 내건 포스터. 배출가스를 조작한 폴크스바겐을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에 빗댔다. [볼프스부르크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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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 지방 전시장에서 일하는 영업사원 김모(33)씨는 추석을 앞두고 하루 종일 고객 문의 전화를 받느라 진땀을 뺐다. “미국에서 배출가스 조작을 했다는데 내가 계약한 차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갑자기 본사에서 판매를 중단하면 책임질 거냐”는 문의가 많았다. 출고 직전 계약을 해지한 경우만 10건이 넘었다.

“명절 전후 신차계약 몰리는데 올 추석엔 해약률만 20% 달해”
독일차 전반 부정적 영향 확산 … 수입차 비싼 AS 등 다시 논란

 김씨가 “배출가스 조작 사태는 성능·안전과 직결된 사안이 아니다. 한국 차가 여기 해당하는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언론 보도 내용을 읽어내려가며 따지는 고객도 있었다. 한 고객은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폴크스바겐 차를 사는 만큼 추가 현금 할인이나 옵션 혜택을 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보통 추석 전후로 신차 계약이 몰렸는데 올해 추석엔 신차 계약 문의는 드물고 해약률만 20%에 달했다”고 말했다.

 역시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덮친 아우디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강남의 한 아우디 전시장 영업사원 이모(36)씨는 “조작 대상이 아닌 다른 모델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고객 전화를 받았다. 하반기 판매가 더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외신에서 ‘뻥 연비’ 의혹을 제기한 메르세데스-벤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벤츠C클래스를 사려던 허승진(32)씨는 “폴크스바겐뿐 아니라 다른 독일차 브랜드도 잇따라 의혹이 터져 구입을 망설이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재웅 SK엔카 장한평지점장은 “독일 브랜드 중고차를 사면 나중에 제값을 받고 팔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 사태 파장이 국내 수입차 시장을 점령한 독일차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폴크스바겐과 마찬가지로 디젤차로 인기를 끌고 있는 벤츠·BMW·아우디 같은 독일차 ‘빅3’도 영향을 받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0일 현재 자동차 동호회 게시판엔 “독일차 전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배출가스를 조작한 준중형차 골프, 중형차 파사트가 독일차 기술력의 상징이었던 만큼 독일차를 사려는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입차 업계의 ‘고질병’으로 지적된 애프터서비스(AS), 고금리 할부 문제도 다시 불거졌다. 과거보다 나아졌다지만 국산차에 비해 AS가 더딘 데다 부품 비용은 최대 10배에 이른다. 최근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벤츠 S클래스 차량 구매자가 시동 꺼짐 현상에 대한 불만을 대리점에 수차례 지적했는데도 무대응하자 불만의 표시로 골프채로 차량을 부순 사례가 화제로 떠올랐다. 고광호 아주자동차대(자동차학) 교수는 “국내 소비자들은 수입차 브랜드 이미지 하나로 모든 걸 감수해왔다”며 “AS 문제를 비롯해 그동안 쌓인 불만이 많은데 브랜드 이미지마저 훼손됐으니 단순히 폴크스바겐뿐 아니라 수입차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차는 국내 자동차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5년 3%에서 올 1~8월 16%까지 뛰어올랐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독일차는 수입차 중에서도 유독 선호 대상이었다. 수입차 중 독일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46%에서 69%로 증가했다. 그동안 안방을 빼앗기며 움츠러든 현대기아차가 시장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지도 주목된다. 선우명호 한양대(미래자동차공학) 교수는 “세계 1위도 신뢰에 문제를 일으키면 한 방에 ‘훅’ 간다”며 “국내 자동차 업계도 신뢰를 바탕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임지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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