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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리 조선산업을 중국에 몽땅 넘길 수는 없다

중앙일보 2015.10.01 01:30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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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기
카이스트경영대학 초빙교수
전 대우조선 대표이사

나는 대학에서 ‘중국 금융시장’과 ‘글로벌 에너지 정치’를 강의하면서 시꺼먼 먹구름이 한국 조선산업에 몰려오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있다. 세계 에너지 시장과 중국발 먹구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2014년 6월을 기점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10달러에서 50달러대로 급락했다. 전문기관들은 2~3년간 현재의 저유가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자 엑손모빌, 셸, BP, 토탈, Eni 등 세계 메이저 석유화학업체들은 앞으로 2년간 2000억 달러 규모의 설비투자를 삭감했다. 북극을 비롯한 웬만한 해양광구의 시추와 개발을 중단하거나 연기했다. 우리 조선해양산업의 주된 신규 일거리(해양 플랜트 수주)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게다가 유가 하락과 비용을 염두에 둔 국제 발주자들은 어떻게 하든 기존 발주물을 늦게 인도받으려 설계 변경을 요구하는 등 한층 까다로워질 것이다.

 

중국, 자국 업체에 파격적인 지원
발주자엔 덤핑성 장기 우대금융
저유가로 한국 업체 수주 어려움
고용·수출 효자산업 포기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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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우리는 국제시장에서 중국과 경쟁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최근 국내경기 침체로 대대적인 경제 성장모델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즉 그동안 성장동력이던 국내 투자의 감소를 대체하기 위해, 저금리 채권의 발행을 통해 막대한 재원을 끌어모아 대외투자를 확대하고 해외 프로젝트를 적극 수주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중국은 이미 2005년부터 세계 석유와 가스, 광산에 어마어마한 해외투자를 했다. 그 규모가 약 4000억 달러에 이른다. 문제는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해외에 투자한 에너지 기업이나 합작 프로젝트들이 선박·해양 플랜트 발주를 대부분 중국 조선소에 몰아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국의 발주자에 제공하는 장기금융 조건은 우리 업체가 거의 따라갈 수 없는 덤핑에 가까운 최우대 조건이다.

 중국은 채권 발행 규모가 2007년 7조 달러에서 2014년에 28조 달러로 4배 증가했다. 부채 잔액은 GDP의 280%로 세계에서 가장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제 초저금리를 활용해 대내외 채권을 발행, 대형 사영기업에 장기 우대금융을 지원하고 있다.

 또 올 7월 중국중앙은행은 중국개발은행에 470억 달러, 중국수출입은행에 450억 달러를 증액 출자키로 했다. 이는 중국 조선업체들의 수주를 도울 게 분명하다. 중국은 해외 발주자의 투자자이면서 금융지원자인 동시에 수요자다. 이런 다양한 입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중국의 경쟁력은 한국 조선해양업체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셋째, 최근 중국의 NDRC(경제기획위원회)는 인터넷 분야와 제조업 분야를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오일가스 파이프라인산업, 수자원 보존산업 등에 5300억 달러의 투자를 지원한 바 있다. 올해는 산업용 로봇, 클린 에너지용 자동차산업, 의료산업 등 외에 ‘최고 수준의 해양 엔지니어링의 설비제작 산업’을 새로 지정해 지원키로 했다. 최근 중국은 반도체, 자동차, 스마트폰 등 각 분야에서 한국을 바짝 추격하거나 일부는 추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양 엔지니어링과 제조분야를 집중 지원한다는 중국의 정책은 우리 조선업계와 해양 엔지니어링업계에 큰 위기요인이다. 더욱이 중국은 자체 수요시장이 방대하고 막대한 해외투자를 해 놓은 상태다. 중국 정부의 지휘 아래 중국 에너지기업은 중국 조선업체들의 해양설비를 사용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만간 우리 업체는 금융 조건과 가격 조건에서 중국 업체에 비해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우리 조선해양 빅3는 해양 플랜트에서 엄청난 적자가 발생했다. 그 원인은 조선에서 해양 플랜트 쪽으로 급변한 수주시장의 구조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과거 6대 4였던 조선 대 해양 플랜트의 비율은 2011년 이래 3대 7로 바뀌었다. 이에 비해 자원대국들은 국익 우선주의로 해양 플랜트를 현지 업체에 발주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우리 업체들은 이런 ‘현지화’의 위험요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의 발등을 찍었다. 여기에다 자원의 적절한 배치와 현금흐름을 경시한 경영이 막대한 적자와 유동성 위기까지 몰고 온 것이다.

 그러나 과거 잘못의 책임은 철저히 규명하되, 앞으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국제시장에서 지금까지 1등을 지켜온 조선해양산업을 그대로 죽게 놔둬선 안 된다. 조선해양산업은 20만여 명의 고용과 연 600억 달러를 수출하는 효자산업이다. 그간 높은 수업료를 낸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다시 살리는 데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 기업은 물론 정부, 국책금융기관, 학계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야 한다. 우리의 1등 기간산업인 조선해양을 중국에 몽땅 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조선해양은 단순한 민간사업이 아니다. 기업들에 알아서 생존하라고 하기엔 국가적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 업체에 맞서 경쟁해야 하는 여건이 너무 버겁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홍인기 카이스트경영대학 초빙교수 전 대우조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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