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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총선

중앙일보 2015.10.01 01:24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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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총선의 계절이 오긴 왔나보다. 정치권이 떠들썩하다. 추석 연휴 김무성·문재인 여야 대표가 만나 총선 룰을 합의한 것을 두고 여야 반대파는 물론 청와대까지 ‘밀실·정실 야합’이라며 난리다. 하기야 잘되면 대권, 밑져야 기득권을 지키는 일이다. 적과의 동침인들 마다하랴. 총선은 정치인에겐 그야말로 모든 것이다. 당락이 생과 사를 가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난 8월 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충분히 알겠다.

경제살리기=총선 승리
이런 게 바로 포퓰리즘


 최경환은 당시 “경제를 꼭 살려 여당의 총선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총선 필승”을 외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발언과 묶여 혹독한 공격을 받았다. 야당은 이 말을 꼭 짚어 사과를 요구했지만 최경환은 거부했다. 경제부총리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되레 따졌다. 지난달 선거관리위원회는 정종섭에 대해 주의, 경고했지만 최경환은 무혐의 처리했다. 정종섭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본 것이다. 과연 그런가. 나는 최경환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최경환은 경제부총리다. 경제부총리가 정치에 휘둘리면 곧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는 것이요 그게 바로 포퓰리즘이다. ‘경제 살리기=총선 승리’라는 말은 스스로 뼛속 깊이 정치인임을 인식하지 않고는 나오기 힘든 발언이다. 정통 경제관료 중 누가 그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조순과 이헌재 전 부총리도 현직을 떠난 뒤엔 “경제는 정치다”라고 명시적으로 말했지만, 그건 정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경제의 포퓰리즘을 경계하자는 의미가 더 강했다.

 사실은 지난해 6월 최경환을 경제부총리에 내정했을 때부터 석연찮았다. 그래서 그가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할 때도, 부동산을 살린다며 총부채상환비율(DTI)·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완화한다고 할 때도 나는 걱정과 우려의 글을 썼다. 경제는 못 살리고 빚만 늘리는 것 아니냐고. 반짝 분양시장이 살아났지만 대신 전세난은 더 심해졌고 기존 주택거래는 위축됐다. 가계 빚은 그새 110조원 넘게 늘어 1130조원으로 사상 최대다.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요즘은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말로는 경제 올인을 외치면서 마음은 총선에만 가 있는 것 아닌가. 예컨대 구조조정만 해도 그렇다. 구조개혁이 시급하다면서도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전임 이명박 정부 때와 다르지 않다. 당시에도 시장에선 STX·동부·동양그룹 위기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선 안 된다”며 구조조정을 미뤘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뒤처리를 해야 했다.

 지금은 어떤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까지 좀비기업 청산을 시급한 과제로 꼽은 지 오래다. 부실 조선사 뒷돈 대느라 수출입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10%를 밑돌 위험에 빠졌다. 국책은행 건전성이 저축은행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끌어안고 있는 부실 기업만 100여 곳인 산업은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런데도 구조조정은커녕 반짝 효과를 노린 정책만 쏟아진다. 최경환은 최근 “추가 부양책은 뭐든지 가져오라”며 경제부처에 주문했다고 한다.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며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일회성 행사가 그래서 나왔다. 이런 건 업체가 알아서 할 일인데도 정부가 총대를 멨다. 게다가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튼튼하게 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총선용 스테로이드 주사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테로이드는 아주 심할 때 한두 번으로 그쳐야 한다. 반복해 쓰면 근육을 망가뜨리고 급기야 몸을 망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의심의 골은 자꾸 깊어진다. 명의는 함부로 약을 쓰지 않는다. 체력과 원기를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돌팔이는 다르다. 마음이 콩밭에 있다. 극약 처방을 해서라도 반짝 낫는 시늉만 하고 재물만 챙기면 그만이다. 정종섭의 발언이야 욕 한번 하고 말면 그뿐이다. 최경환은 다르다. 그의 처방은 우리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최경환의 총선 발언이 자꾸 목에 걸리는 이유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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