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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미래가 궁금하세요?

중앙일보 2015.09.3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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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Going Global)라는 구호는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 모토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동아시아-동북아라는 지역 개념을 전제한 외교 범주는 4강 외교 플러스 남북관계라는 뻔한 정답 내에서 한국호의 방향을 제약한다는 것이 새 모토의 근거였다.

세계를 향한 거창한 미래를 선언한 그 때부터 8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한국은 4강이 아니라 오히려 미·중 양강 구도 하에 감금당한 인상이다. G2 시대, 미·중 협조체제, 미·중 콘도미니엄 체제, 강대국 과점 체제 등 다양한 개념들이 서술하고 있는 현실은 그래서 8년 전 자원외교니, 녹색성장이니 하며 한국호가 호기롭게 그린 미래가 어디로 갔나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기초로 돌아가자. 외교에서도 기초가 필요하다. 아니 외교야말로 냉엄한 현실에서 출발하는 그래서 기초에 충실한 정치 예술이다. 그래야 멋들어진 외교 수사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던가?

간만이 좋은 책이 나왔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한 『동아시아 질서 변화와 한반도 미래』는 겉멋 든 ‘세계로’에서 다시 동아시아로 돌아와 우리를 냉엄하게 돌아보는 책이다.

역내 세력 균형을 비전통안보와 결합시켜 한국호의 미래를 그린 본 책은 탄탄한 국제정치 이론에 기반하여 현실을 그리고 있다. 어줍지 않은 선거 전문가들이 급조해 만든 매력 과잉의 허황한 공약집이 아니라 기초에 충실한 책이라는 뜻이다.

지리적 영토에서 전략적 영토로 개념을 확장할 때 동북아의 지전략적(Geostrategic)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하다는 소신 하에서, 한국호의 나아갈 통일한반도의 미래를 그리는 저자들의 신나는 구상은 읽는이를 즐겁게 한다.

20세기 초 비극의 재연을 탈피할 수 없는 전통적 지정학에서 벗어나 21세기 지전략의 역동적 깃발을 든 것만으로도 저자들은 성공한 듯하다. 쥐어짜는 위기론에서 벗어나 해피 엔딩의 역동성을 갖고 한반도의 미래를 그리는 것만큼이나 신나는 일이 있겠는가?

그래서 저자들이 그리는 동북아 풍선이 비상하는 개념도는 매우 현실적이고 그만큼 흥미진진하다.

물론 이들이 제시하고 있는 현실은 냉엄하다. 대외전략환경, 주변 4강국의 이해관계, 북한 문제 등에 대한 분석은 교과서라 할 만큼 차분하고 냉정하다. 그리해야 한다. 지전략적 구상이라는 것이 자칫 구성된 현실에 근거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때, 실증과 사실이 반론의 무기다. 이 책의 장점은 구성과 현실 그리고 구상이 교차한다는 점에 장점이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만큼 기초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물론 한국의 미래 전략을 다루는 책은 오바마 행정부와 시진핑 정부의 세계 전략과 대외 정책에 대한 자세한 분석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분들에게 본 책은 성이 차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동아시아 안보 질서와 전략 환경에 대한 구조적 체험이라는 차원에서 미래를 다루고 있다.

강대국의 대외 전략은 있는데 동아시아 구조는 없는 그래서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기는 그런 책들보다는 다소 과감하지만 동아시아 질서와 전략 환경을 규정하고 이로부터 미래 분석을 시작하는 그것이 관성을 넘는 기초가 아닌가한다.

저자들이 제기하는 책임국가, 촉진국가, 조정국가, 규범국가라는 통일한국의 미래상이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가는 정답처럼 느껴지는가 보다.

이정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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