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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독일, 제조업에 안주하기 쉬워 … 끝없는 궤도 수정을”

중앙일보 2015.09.30 02:53 종합 4면 지면보기
DP DHL의 성장사는 곧 인수합병(M&A)의 역사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 기업사를 통틀어 가장 빠르게 변신한 회사 중 하나로 꼽힌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국영우체국이었던 이 회사는 1990년대 민영화를 통해 거듭난다. 이후 미국·영국·스위스의 대형 물류업체를 잇따라 M&A하며 몸집을 불렸다. 대표적인 회사가 2002년 인수한 미국의 물류업체 DH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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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의 원칙이 있나.

글로벌 혁신 기업인, 미래 50년을 말하다 <4> 프랑크 아펠 DP DHL 회장
아펠 회장의 경영 전략
매출의 36%가 전자상거래 물량
DHL이 먼저 혁신적 서비스하면
아마존, 경쟁자 대신 파트너 남을 것
1990년대 민영화된 독일 우체국
2002년 DHL 인수해 세계 1위로


 “M&A를 했을 때 고객에게 가치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가 우선이다. 회사가 아니라 ‘고객에게’다. 많은 회사가 M&A를 앞두고 ‘회사의 기존 사업과 합치면 이런저런 시너지를 낼 수 있고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장밋빛 미래만 떠올린다. 하지만 인수하려는 회사가 독립적으로 수익을 내는지부터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 온 리먼브러더스 파산(2008년 9월 15일)을 이틀 앞두고 금융 계열사인 포스트방크를 매각했다(2009년 매각 완료). 2009년엔 미국 국내특송 사업을 정리했다. 과감히 포기한 배경은.

 “포스트방크와 미국 국내특송 사업은 멋지긴 하지만 회사의 핵심 분야는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강력한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한 국내특송 사업은 넘보지 않는다.”

 DP DHL의 우편사업 매출에서 전자상거래 물량이 36%를 차지한다. 아마존·알리바바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를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로 보는 이유다. 그는 “혁신에 뒤처져 그들이 자체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시장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면서도 “우리가 혁신적인 서비스를 먼저 제공해 부가가치를 준다면 (전자상거래 업체도) DP DHL과 경쟁하지 않는 파트너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엔 부실 공기업이 많다. DP DHL은 공기업 민영화 성공 사례로 꼽힌다.

 “독일 정부는 공기업도 민영 기업처럼 운영했다. 민영화 이전에도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경영진을 갈아엎지 않았다. 정치인의 입김도 없었다. 서비스 업체는 어디까지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영화를 급격히 밀어붙이는 대신 15년 이상에 걸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추진했다.”

 - 국적과 역사, 문화가 다양한 여러 회사와 직원을 하나로 묶는 비결은.

 “늘 직원들에게 ‘우리는 컨테이너·종이박스를 옮기는 회사가 아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서비스 기업이자 세계 최대 물류회사’라고 강조한다. 이런 비전을 공유하는 게 글로벌 직원을 하나로 묶는 원동력이다. 출장을 떠날 때마다 현지 직원과 ‘타운홀 미팅’(자유 토론)도 연다. 급변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3년 전엔 중국 상하이에 집무실을 내고 한 달간 생활하기도 했다. 소통한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경영에 반영한다.”

 그는 한국 기업의 강·약점에 대해선 구체적인 순위를 언급하며 조언했다.

 “삼성전자·현대차를 비롯한 한국의 글로벌 기업은 뛰어난 인력이 도전정신을 갖고 하드웨어(HW) 시장을 개척한 경우다. 하지만 소프트웨어(SW) 산업 경쟁력은 19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4위에 그칠 정도로 부실하다. 기업과 대학, 정부가 똘똘 뭉쳐 SW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인재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

 그는 “한국·독일은 제조업 중심 개방형 산업 구조를 갖고 있고 교육 시스템이 탄탄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뒤집어 말하면 현실에 안주하기 쉽다는 공통점도 있다”며 “현재 궤도를 수정하며 혁신하려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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