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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취직이 게임이라면 우린 지금 리셋하고 싶어요

중앙일보 2015.09.30 01:20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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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傾聽)’은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뜻입니다. 지난 6월 출범한 ‘함께하는 경청 포럼’은 2개월에 한 번씩 시민들이 모여 서로의 견해를 경청해 각종 난제들의 해법을 찾는 자리입니다. 이달엔 청춘 세대들이 취업난을 주제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2030, 취업난을 말하다

청춘리포트팀이 그들의 취업 고민을 경청했습니다. 다음은 취업준비생들의 실제 사례를 각색해 온라인 게임 형식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구직 활동이 게임이라면 리셋하면 좋겠다”는 한 취준생의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PC방 알바, 일하며 공부하며
역시나 학점은 C…취업도 멀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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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1: ‘덜컥 합격은 했는데…’

“그래! 가는 거야!” 정규직 지원의 필수 3종 세트 중 하나라는 ‘교환학생’. B학점으로 합격한 건 천운이었다.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리는 순간 절망이 몰려온다.

 ‘학비는 두 학기에 600만원, 비행기는 편도 100만원 밑으로 막고…’. 기숙사비, 식비를 합치니 못해도 1년간 2000만원은 필요하다. 현재 수입? 하루 5시간 하는 시급 5800원짜리 근로장학생이 전부다.

STAGE 2: ‘떠나가는 썸녀’

 월평균 6만원 나오던 교통비가 8만원으로 넘어간 지 석 달. 끼니는 평균 5000원인 학식으로 때운 지 오래다. 간신히 야간에 돈을 ‘조금 더’ 얹어주는 PC방 알바를 구했다. 주 4일,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해 받는 돈은 약 90만원. 비행기표와 생활비는 막겠다.

 오랜만에 시간을 내 동아리 여자 후배인 ‘썸녀’와 데이트를 했다. “오빠, 나 오늘 피자 먹고 싶어!”란다. 영화 예매에 쓴 돈까지 합치면 4만원도 넘을 텐데…. 망설이는 내 표정을 보더니 “아, 떡볶이가 당기네!”라며 활짝 웃는다. 그런데 데이트 잘하고 들어간 썸녀, 그날 밤 카톡을 읽고도 답이 없다. 역시 돈 없는 대학생에겐 연애도 사치인가.

STAGE 3: ‘쏟아지는 잠, 떨어지는 학점’

 PC방 알바 3주째. 하루 5시간을 채 못 자니 온종일 잠이 쏟아진다. 꾸벅꾸벅 졸다가 생각났다. 내일까지 보고서 마감이다.

담배 연기가 뼈까지 스며들 것 같은 PC방에서 논문을 뒤적이며 보고서를 쓴다. 오늘따라 손님은 왜 이리 많은지. 결국 괴발개발 쓴 보고서를 제출했다. 역시나 결과는 참담하다. 여기에서 학점 더 떨어지면 취직이 더 힘들지도 모르는데…. 끊었던 담배를 한 개비 빌려 물었다.


“최종만 8번 탈락
중국어도 하는데 왜 기업 눈엔 들기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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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1: ‘칠전팔기, 도전이다!’

 드디어 오늘이다. ○○항공 최종면접. 서류 준비부터 토론면접까지 석 달 넘는 고행을 잘도 버텼다. 구직장, 장하다! 일곱 번 떨어지면 어떠냐, 여덟 번째 붙으면 되는 거지. 합격 평균을 내는 것도 아니고 한 번만 붙으면 ‘장땡’이라 이거야. 양복과 타이가 잘 어울리는지 다시 점검하고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도 해본다. 면접마다 시키는 중국어 자기 소개도 달달 외웠다.

STAGE 2: ‘버틸 힘도 참아낼 힘도…’

‘귀하는 최종 불합격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또다시 날아든 불합격 통보. 도대체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양복 사느라 돈 날린 거? 아니면 실낱 같은 희망을 품던 내 마음에 또다시 어퍼컷을 날린 거? 이것 때문에 △△상사 면접은 가지도 못했다. 인간적으로 수천 명 중 딱 한 명 뽑을 거면 미리 말 좀 해주면 덧나냐. 더 많이 뽑는 곳으로 지원이라도 해보게. 다음주부턴 다른 기업 공채를 또 준비해야 하는데….

STAGE 3: ‘내가 뭐 어떻다는 거야?’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바라본다. 이로써 최종만 여덟 번 탈락. 또다시 공채 준비할 기운이 없다. 알 만한 대학에 중국어까지 하는데 왜 이리 기업 눈에 들기는 어려운 걸까. 생긴 게 문제인가, 말투가 어눌한가. ‘열정과 근성을 보여주라’는데 내 마음을 열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 ‘뽑을 사람 다 정해놓고 묻겠지’란 생각도 들고. 서류부터 다시 준비해야 한다니 막막하다. 지금까지 최종면접에서만 여덟 번 탈락. 긴장은 덜고 열정을 더하리라 다짐해본다. 딱 올해 말까지만 다시 한번 힘을 내보자.


“임시방편 계약직…잦은 야근에
취직 2라운드 준비 어느새 가물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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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1: ‘진퇴양난’

 ‘어디든 취업은 하지 않겠어요?’ 이게 무지하게 안일한 생각이라는 걸 난 왜 지금 안 거냐. 1년 동안 일자리를 알아봤다. 대기업 입사는 하늘의 별 따기고 갈 만한 중견·중소기업들은 초장부터 연봉이 얼마인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다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 떨어지니? ‘○○대 행정계약직 합격’. 아! 진짜 다행이다. 일단 합격했으니까 여기서 돈 벌면서 인생 제2라운드를 준비하면 되겠지?

STAGE 2: ‘저… 퇴근 안 하세요?’

 한 달에 버는 돈은 94만원.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이다. 그런데 계약직이라도 막내는 막내였던 거다. 마음속으로 수십 번 외친다. ‘저… 과장님, 퇴근은 언제 하실 건가요?’ 아무도 대놓고 “퇴근하지 말라”고 안 하지만 어디 사회생활이 그렇던가.

 내가 여기서 평생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인생 제2라운드를 준비하려면 준비할 시간도 필요한데. 아, 차라리 요즘 대놓고 “저 갑니다!” 외친다는 알바생들이 부러워진다.

STAGE 3: ‘신입사원, 나이 보나요?’

 잦은 야근에 체력은 떨어져만 가고. 정규직도 아닌데 확 그만둬버려? 아니야, 그래도 이 돈이 없으면 맥주 한 캔도 망설여질지 몰라.

 이래서 ‘돈 벌다가 공부하기 어렵다’는 소리들을 하나보다. 이제 내 나이가 여자 신입사원으로선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 정말이지 구직 활동이란 먹고살기도 빠듯한 20대 후반 여성에게 여간 벅찬 일이 아니다. 차라리 시험 준비를 다시 해볼까? 취업준비가 게임이라면 리셋이라도 되지. 뭐가 정답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조혜경 기자 wisel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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