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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산가족 교류재단을 검토할 때다

중앙일보 2015.09.30 00:21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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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통일전문기자

아버님이 없는 추석 명절은 허전했다. 존재만으로도 튼실한 집안의 울타리였던 때문이다. 그렇다고 살아생전 가족에게 다정다감하셨던 건 아니다. 명절날에도 홀로 방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셨다. 어린 손주들에게도 거리를 두는 듯해 야속한 적이 많았다.

내달 20일 이산상봉에 설레는 실향민
북 도발 위협에 맘 졸이게 해선 안 돼
상봉 확대 해법에 미적거리는 통일부
낡은 틀 벗고 새 전담 기구 만들 필요


 이유가 있었다. 함북 청진 출신인 아버님은 경성사범을 다니던 서울에서 해방을 맞았다. 쫓겨간 일본인을 대신해 고향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는데 곧 김일성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반공(反共) 독서모임을 결성했지만 금세 공안망이 좁혀왔다. 일찍 결혼해 2남2녀를 두고 있던 아버님은 “금방 돌아올 테다”며 홀로 피신을 했다. 그런데 6·25전쟁 와중에 월남할 수밖에 없었고 북한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어린 자식과 아내를 공산치하에 두고 온 미안함은 아물 수 없는 생채기가 됐다. 새 가정을 꾸려 2남3녀를 낳았지만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혼자만 살길을 찾았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 때문이다.

 여중 교장이던 아버님은 고아를 포함한 여학생 둘을 양녀로 맞았다. 이미 세 딸을 둔 아버님의 결정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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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입양 때 지어준 이름이 북에 두고 온 두 딸의 것과 일치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중국 옌볜(延邊)에서 이뤄진 아버님과 북한 형님의 상봉 자리다. 두 재북 딸의 안부를 묻던 아버님의 입에서 낯익은 이름이 나왔다. 이렇게라도 이산의 아픔을 스스로 달래며 살아오셨구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왈칵했다. 다른 남쪽 가족에겐 말하지 못한 아버님과 나만의 비밀이다.

 브로커를 써서라도 북한 가족을 만날 수밖에 없었던 건 정부 상봉행사가 바늘구멍인 때문이다. 최종 100명을 뽑는 컴퓨터 추첨은 로또에 가깝다. 아버님도 번번이 탈락했다. 추첨 공정성을 의심하는 실향민들에게 내 경우는 좋은 반박 케이스가 됐다는 후문이다. “통일부를 20년 출입한 중앙일보 기자도 아직 뽑히지 못했다”는 당국 설명에 탈락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다음달 20일 남북 이산상봉 행사가 열린다. 지난달 말 판문점 남북 고위접촉 합의 때문이다. 당첨의 행운을 거머쥔 이들은 북한 가족에게 줄 내복과 시계·약품 등을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마음은 벌써 금강산으로 내달릴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북한은 이산상봉을 볼모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위협하고 있다. 여차하면 판을 깰 기세다. 말로는 인도적 문제라 주장하지만 북한엔 약발 좋은 대남 정치카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도발한다고 해도 먼저 이산상봉을 접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이번 상봉은 지난해 2월 이후 20개월 만이다. 2000년 8·15 때 첫 만남을 시작으로 20번째 상봉이 이뤄지게 된다. 1년에 1.3회꼴로 열린 셈이다.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 상봉을 신청한 12만9600여 명(7월 말 기준) 중 이미 6만3400여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생존한 90세 이상 신청자는 7800여 명에 달한다. 곧 생존자(현재 6만6200여 명)를 사망자가 앞지르는 역전이 현실화한다.

 고령 이산가족의 마음은 타들어가는데 정부의 발걸음은 미덥지 못하다. ‘이산가족 문제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던 말은 쑥 들어갔다. 통일부는 이달 초 대북 실무접촉 때 상봉 규모 확대나 서신 교환, 화상 상봉 등에 전력투구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언급한 이산가족 명단교환 문제도 공수표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정부 당국자들이 ‘남북 각 100명’이란 낡은 틀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통제하는 금강산을 탈피해 서울·평양 교환상봉(1~3차 상봉 때 실시)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여론도 외면했다. “북한을 자극 말고 하던 대로나 잘하자”는 무사안일이 팽배한 때문이다.

 이산가족 문제를 제대로 다룰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 통일부 이산가족과 직원 몇 명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긴급구호와 혈액사업에 치중하는 대한적십자사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실향민 사회에서 제기되는 이산가족교류재단(가칭) 설립 방안은 눈길을 끈다. 통일부와 행정자치부·한적 등에 분산된 이산가족 관련 업무를 전담할 기구다. 이산가족 데이터베이스 관리와 생사 확인, 서신 교환, 상봉 신청 등이 핵심 업무로 꼽힌다. 심리상담이나 관련 연구사업도 진행할 수 있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이산 상봉장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오열하는 부모·자식이나 부부간 상봉이 아닌 밋밋한 만남이 부쩍 늘었다. 사망한 부모 대신 북한의 이복형제나 조카가 나와 생사 확인만 하고 어색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다. 컴퓨터 추첨에 집착할 게 아니라 고령자 우선으로 돌려야 한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실향민 1세대가 숨지면 이산가족 문제는 영구미제가 돼버린다. 그렇게 되면 우리 민족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라는 낙인이 찍힐 게 뻔하다. 타 민족에게 고통을 강요했던 독일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보다 더 표독스럽게 동족에게 천륜(天倫)을 끊으라고 강요했다는 측면에서다.

 세계인권선언은 이렇게 우리를 꾸짖는다.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본적인 기초단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 소식을 받고 재결합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다.”(제16조)

글=이영종 통일전문기자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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