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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8·25 남북 합의에 안주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2015.09.30 00:14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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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

지난 8·25 남북 합의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남북한 당국이 고위급 접촉을 통해 상호 신뢰 구축을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다. 한반도의 비정상적인 사태를 종식시키기로 했을 뿐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시키기로 하고 이산가족 상봉 등 다양한 민간 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합의했다. 최소한 남북관계가 이명박(MB) 정부 출범 이전 수준으로까지 회복될 가능성이 있으며 앞으로 더 발전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남북관계, MB 정부보다 좋아질 듯
결실 위해선 소통·국제협력 중요
야당과도 충분히 의견 교환하고
특정국가 편중, 의혹 사지 말아야


그러나 이 같은 합의를 도출하는 데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의 관여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한반도 문제 해결에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반도 문제는 어느 한편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자주화’와 ‘국제화’라고 하는 2개의 흐름 속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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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해방의 이중성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우리 민족이 전개한 독립운동에 의해서만 이뤄진 게 아니라 민족의 독립운동과 연합국의 전승(戰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와 이에 대한 연합국의 지원,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된 해방의 이중성으로 인해 통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내부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노력과 함께 국제협력을 이끌어 내는 작업이 절실히 요구된다.

 여기서 자주화란 민족 역량을 최대화하기 위한 민족 내부의 노력을 뜻한다. 민족의 역량을 높이려면 적어도 남북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여야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남북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통일 문제가 특정 정권이나 정치권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북 제의나 통일방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야를 포함한 정치권이 전반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을 한 다음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8·25 합의 도출에 만족해 안주하거나 독주할 게 아니라 정치권 및 국민과의 소통을 더욱 활발히 할 것이 요구된다. 일차적으로 정부부처 사이의 의견 조율은 물론 정부와 여당 사이의 긴밀한 대화와 동시에 야당과도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 충분히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 이래야 보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는 일이 병행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작업은 비단 통일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잦은 접촉과 대화로 이견(異見)을 해소하려고 노력할 때 정국이 안정되고 정치가 발전할 것이다. 이렇게 이룬 정국 안정과 정치 발전을 토대로 남북 대화에 임할 경우 더욱 건설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쉬워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통일방안이나 남북 합의가 현재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보면 소통과 공감대 형성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한편 국제화란 외부적인 역량이 한반도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반도 문제를 국제적인 이슈로 만들어 적극 관여하려는 움직임이 이에 해당된다. 해방 후 개최됐던 모스크바 3상회의나 미·소 공동위원회가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 회의에 참가했던 국가들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국의 이익에 입각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민족 내부의 역량이 부족했고 정부가 수립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초래된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주변국의 입장이 변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민족의 운명을 외부 역량의 농단에만 맡길 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성취한 산업화와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쟁취한 민주화로 우리 민족의 역량이 이제 세계적으로, 객관적으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 문제를 민족 내부만의 문제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전과 달리 민족적 역량이 어느 정도 축적된 만큼 국제화의 흐름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갖출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국제사회가 협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작업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 국가에 편중함으로써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든다든지 의혹을 살 만한 일을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정치권 전반과의 대화와 소통, 그리고 광범위한 여론 수렴을 통해 민족 내부의 역량을 극대화해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는 한편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협력을 골고루 이끌어 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이것이 8·25 합의가 주는 교훈인 동시에 자주화와 국제화라는 이중성을 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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