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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폴크스바겐의 사기극을 보며

중앙일보 2015.09.30 00:07 종합 2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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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우리는 몰라서 속았던 걸까’.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실험 조작 사기극의 내막이 밝혀지면서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독일계 자동차 회사들이 ‘클린 디젤’ 기술 홍보에 열을 올리던 장면을 기억한다. 2000년대 중반이었다. 유럽 승용차 업체들은 디젤 승용차를 국내에 도입하며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환경에 좋다는 청정차는 애초에 허구
모른 척 눈감았던 소비자도 반성해야


 당시 디젤차의 이미지는 나빴다. 한국에서 디젤차는 시커먼 매연가스를 풍풍 풍겼던 매연 버스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데 클린 디젤이라니. 디젤은 가솔린에 비해 연비와 힘이 좋고 이산화탄소 배출은 적지만 세계보건기구(WHO)도 일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산화질소와 미세먼지를 배출한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한데 “이런 디젤이 어떻게 청정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면 이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모르는 말씀”이라며 디젤 엔진의 청정성을 증명하는 각종 실험 자료들을 들이밀면서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독일 자동차 기술로 연료를 완전연소시키고 매연을 잡는 기술을 실현했다. 환경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유럽이 지금 디젤차 중심으로 가고 있는 게 청정 디젤 기술의 신뢰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부터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디젤 엔진 사용을 촉진하는 각종 정책을 내놨다. 당시 고유가에 대응하는 정책적 측면이 강했다. 이에 90년대 초반까지도 단단위 비중을 차지했던 디젤 차량이 현재 EU에선 비중이 35%에 이른다. 어쩌면 우리는 독일 자동차 기술과 친환경 유럽의 명성이라는 허구에 기대 물성(物性)은 바뀌지 않는다는 상식을 내다버렸는지도 모른다.

 일각에선 현대차의 반사이익을 운운한다. 하나 주식시장의 냉담한 반응만이 아니더라도 이번 사태가 디젤 진영의 위기로 몰려가는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디젤을 도입했던 국산차들이 무슨 반사이익을 얻겠는가. 오히려 디젤 진영이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손실을 볼 수도 있다. 명망 높은 폴크스바겐 디젤차가 ‘실험실에선 청정, 실제 주행에선 오염원 배출’ 사실이 들통나고 각국의 조사가 전 디젤차로 확산되면서 일각에선 벌써 ‘전기차’ 대안론이 나온다. 대기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 진정한 청정차라는 거다. 한데 전기 생산 과정의 대기오염을 생각하면 대기 질을 개선하는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전기차는 대용량 배터리를 장착해야 하는데 배터리는 일정 충전 주기가 되면 성능이 떨어져 교체해야 한다. 이런 배터리는 리튬을 포함한 각종 광물질로 구성된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그 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은 어떻게 하나.

 결국 청정차는 없다. 미국의 한 자동차 잡지는 “합리적 가격의 클린 디젤은 말이 안 되는 목표였다”는 전직 폴크스바겐 임원의 고백을 실었다. 연료를 태우며 움직이는 차량이 환경에 이로울 방법은 애초에 없는데, 기술로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위장해 환경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보자는 속셈이 소비자와 기업 사이에 맞아떨어져 청정차 신화를 퍼뜨리고 있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도 청정 디젤이 허구임을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힘 좋고 연비 좋고 명망 높은 독일차를 타면서 환경도 위한다는 명분까지 세우고 싶었던 소비자 이기심이 발동해 모른 척 눈감았을 수도 있다. 폴크스바겐의 정직성을 질타하는 한편에선 소비자로서 나의 정직성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 사태를 보며 소비자의 무거운 의무에 대해 생각한다. 폴크스바겐의 사기극을 밝혀낸 것은 미국 비영리단체 국제청정운송위원회(ICCT)였다. 그들은 2012년부터 2년여간의 검증을 거치고 지난해부터 폴크스바겐에 사실을 인정할 것을 압박했고, 이번에 항복을 받아냈다. 기업의 정직성은 소비자가 깨어있을 때에야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드높은 브랜드의 명성에 기댄 소비는 허무하다. 또 소비하며 아끼는 방법은 없다. 환경을 아끼고 싶다면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도 함께 정직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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