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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위대한 ‘공부 거짓말’의 위기

중앙일보 2015.09.30 00:01 종합 27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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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두 달 전 식사 자리에서 만난 강원도 부교육감은 힘든 일 중 하나가 학교 방문 때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뽑은 ‘안 나오길 바라지만 늘 나오는 곤혹스러운 질문’ 1위는 “공부를 왜 해야 하나요?”였다. 그 부교육감은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교육 행정고시에 합격해 교육부에서 약 25년간 일했다. 그도 이 원초적 질문에 어려움을 느낀다는데 보통의 선생님과 부모는 오죽할까.

 “공부 열심히 하거라.” 영화 ‘사도’에서 영조가 세자에게 당부한다. 글 외우는 데는 소질이 없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공부가 좋은 적은 1년에 한두 번이라고 말한다. 아버지 임금은 할 말을 잃는다.

 도대체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가. 고상함을 포기한 일반적 답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다. 좋은 대학·직업으로 이어지는 출세론이다. 공부 잘해서 의사·법조인·교수가 되라고 한다. ‘3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고 쓰인 급훈이 걸려 있는 교실도 있다. 그런데 이 논리는 이제 잘 안 먹힌다. 고학력과 고소득 사이에 여전히 정적 상관관계가 있지만 그 크기가 많이 줄었다.

 고전적 답변으로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있는데 제법 품격을 갖췄지만 결정적 허점이 있다. “훌륭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또는 “공부를 하면 왜 훌륭한 사람이 되느냐”는 2차 질문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훌륭’의 실체를 설명하기 어려우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처럼 공부 잘해서 큰 인물이 된 예를 들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부는 잘했지만 결코 훌륭해졌다고는 볼 수 없는 인물이 우리 사회의 곳곳에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교육철학자인 이홍우 전 서울대 교수는 『교육의 목적과 난점』이라는 책에서 ‘공부는 해보지 않고서는 왜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공부는 세상을 보는 안목과 인식을 기르기 위한 것인데, 그 안목과 인식을 갖추지 않으면 그게 뭔지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결국 그의 주장은 공부의 목적으로 어른들이 제시하는 모든 건 공부를 시키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틀리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요즘의 ‘공부 열심히’는 모르는 것을 꾸준히 알아 가는 게 아니라 ‘아는 것을 실수하지 않는 부단한 연습’에 가까워졌다. 이른바 ‘물수능’과 쉬운 학교 시험의 효과다. 인류가 위대한 거짓말로 지켜온 문명이 사교육과의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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