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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 설레는 거장의 귀환

중앙일보 2015.09.23 13:35
[특집|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이름만으로 설레는 거장의 귀환

바람이 분다 시월엔 부산에 가야겠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10월 1~10일, 이하 부산영화제)가 20주년을 맞았다. 최근 예산 삭감과 집행위원장 사퇴 논란 등 진통을 겪었지만,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 답게 75개국에서 출품된 영화 304편으로 성대한 향연을 펼친다. 올해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함께 영화제를 이끌 강수연 공동 집행위원장의 포부를 들어봤다. 꼭 챙겨봐야 할 작품도 소개한다. 프로그래머의 추천작,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 받은 수작을 magazine M 기자들이 미리 보고 확인했다. 오늘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세계 영화의 흐름을 만나러 떠나 보자.

※감독|출연|상영시간|국가|섹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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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밍량│차이밍량, 이강생│137분│대만│아시아영화의 창
대만 출신 거장 차이밍량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 이강생의 대화로 이뤄진 작품이다. 차이밍량 감독의 데뷔작 ‘청소년 나타’(1992) 이후 ‘구멍’(1998) ‘흔들리는 구름’(2005) 등에서 30여 년 동안 호흡을 맞춰 온 두 사람이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술회하는 모습을 담았다. 차이밍량 감독 영화의 특징인 정지된 카메라는 더욱 극대화됐고, 단 한 번의 앵글 변화 없이 롱테이크로 대화의 풍경을 찍었다. ‘애정만세’(1994)에서 오프닝 10분이 넘도록 대사 한마디 없던 그의 실험적 방식을 기억한다면, 멈춘 듯한 카메라가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차이밍량의 독백에 가깝다. 그는 ‘떠돌이 개’(2013)를 찍을 당시 심각하게 아팠던 경험, 과거 믿었던 지인에게 배신당해 충격받았던 상황 등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파격적인 미학을 추구해 온 감독이 아닌, 인간 차이밍량의 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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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37분 동안 이어지는 대화를 따라갈 각오가 필요하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의 행간을 음미하며, 일과 인간 관계 그리고 시간의 의미를 곱씹어 보자.


<나라없는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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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만 고바디│나리만 앤버, 헬리 루브│97분이라크│아시아영화의 창
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도 꿈은 자란다. ‘나라없는 국기’는 핍박과 억압에 시달리는 쿠르드 민족의 비극을 다룬 다큐-픽션 영화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성실하게 수집한 자료 화면 덕분에 사실적인 영상이 구현됐다. 주인공 나리만은 어렸을 때부터 꿈꿔 온 파일럿이 됐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해 비행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파일럿 수업을 연다. 헬리 루브 역시 가수의 꿈을 실현한다. 걸프전 당시 태어난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알고 있기에 난민촌에 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카메라는 유독 아이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해맑고 순수한 그들의 표정은 그 자체로 희망을 상징한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2000) ‘거북이도 난다’(2005) 등을 통해 쿠르드 민족의 비애를 정면으로 다뤄왔던 고바디 감독은 앞서 두 영화에서도 아이들을 희망의 메타포로 그린 바 있다.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난민들에 관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 요즘, 정처 없이 표류하는 이들의 고통을 헤아리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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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고통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다루지만 영화 중반부, 루브가 부르는 신나는 뮤지컬 노래가 마음을 흔든다.

<해안가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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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후카츠 에리, 아사노 타다노부│128분│일본·프랑스│아시아영화의 창
어느 날 실종된 남편 유스케(아사노 타다노부)가 아내 미즈키(후카츠 에리)를 찾아온다. 남편은 자신이 3년 전에 죽었다고 말하고, 아내는 오랜만에 나타난 남편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두 사람은 전국을 돌며 오래된 식당, 신문 배달소 등에서 일하면서 행복을 만끽한다. 하지만 유스케는 미즈키에게 이별을 고한다. 의식의 분열을 소름끼친 묘사로 담아낸 ‘도플갱어’(2003), 악몽과 환생을 소재로 한 기이한 이야기 ‘로프트’(2009) 등 주로 거칠고 무서운 영화를 만들어 온 구로사와 감독. 그의 전작에 비해 ‘해안가로의 여행’은 비교적 얌전하다. ‘환상과 현실의 공존’을 다뤄온 세계관은 유효하지만, 표현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특히 일본 전원의 목가적인 풍경과 인생을 탐미하는 사색적인 대사 등이 화면을 촉촉하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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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둘러싼 소외·상실 등의 감정을 되새기게 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아사노 타다노부의 명연기가 압권이다.

글=지용진 기자 windbreak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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