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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일본에서 태풍이 된 갈색 아침의 경고

중앙일보 2015.09.26 00:03 종합 2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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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헌
도쿄 특파원

불과 8개월 전이다. 지난 1월에만 해도 2015년 일본이 이처럼 요동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 국회의사당을 시위대 12만 명이 에워쌀 줄 몰랐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주부가 “누구의 아이도 죽게 할 수 없다”며 ‘전쟁법안 폐기’를 외칠 것이란 생각도 미처 못했다. 지난해 12월 국가 기밀 누설 시 최고 징역 10년에 처하는 특정비밀보호법이 시행됐을 때처럼 한바탕 반대 시위가 펼쳐진 뒤 곧 잠잠해질 것이라고 여겼다. 마치 찻잔 속의 태풍처럼.

 올해 초 일본에서 관심을 모은 책이 있다. 1998년 프랑스 소설가 프랑크 파블로프가 발간한 『갈색 아침』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각종 정보를 최장 60년까지 꽁꽁 묶어두는 비밀보호법을 시행하자 입소문을 타며 팔려나갔다.

 『갈색 아침』에 등장하는 정부는 ‘갈색 법’을 만든다. 고양이가 너무 많다며 갈색이 아니면 모두 없애라고 명령한다. 과학자들은 갈색 고양이가 도시에서 살기 적합하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다. 잠시 당황한 시민들이 곧 순응하자 개도 갈색만 살려 두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갈색 신문과 갈색 책 등 나라 전체가 온통 갈색으로 물든다. 주인공은 “처음 갈색 법이 만들어졌을 때 ‘안 된다’고 말했어야 했다”며 뒤늦게 후회한다.

 올해 일본은 ‘아베 단색(單色)’으로 물들었다. 아베 총리는 안보법을 만들었다. 국민의 생명과 평화로운 삶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이달 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선 7개 파벌 전체의 지지를 끌어내며 임기를 3년 더 연장했다. “파벌의 암묵적인 동의로 총재를 뽑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무투표는 안 된다”며 반기를 든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전 총무회장은 당 안팎의 거센 압력에 시달렸다. 후보 등록에 필요한 추천인 20명도 확보하지 못한 채 뜻을 접었다. 자민당 소장파 의원들은 지난 6월 “언론을 혼내주려면 광고 수입이 없어지게 하는 게 제일이다” “정권에 악영향을 주는 프로그램 명단을 발표해야 한다”며 아베에게 충성을 맹세하듯 언론통제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던 『갈색 아침』의 시민들과 달랐다. 지난해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비밀보호법 반대 시위를 벌인 뒤 해산했던 대학생 단체 ‘특정비밀보호법에 반대하는 학생들(SASPL)’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SEALDs)’이란 이름으로 다시 국회 앞 시위를 이끌었다. 주부들은 아들을, 노인들은 손자를 전쟁터에 보낼 수 없다며 ‘반(反) 아베’ 시위에 동참했다.

 아베 정권은 ‘전쟁 반대’ 외침에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이제 헌법 9조(평화헌법) 개정을 서두를 태세다. 지난 19일 일본 국회 앞. 회사원 하시모토 다카시(橋本隆·50)는 “말 없는 다수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법은 통과됐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싸움”이라고 했다. 갈색 아침의 경고가 침묵의 찻잔을 깨고 초대형 태풍으로 일본 열도를 휩쓸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정헌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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