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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추석이 우울한 고등학생 "중간고사에 추석 뺏겼다"

중앙일보 2015.09.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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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B]


서울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 이모(17)양은 이번 추석 연휴를 집에서 혼자 보내기로 했다.

'나홀로 집에'도…추석 연휴가 우울한 고교생들


이양의 부모는 차례를 지내러 큰집이 있는 대구에 다녀올 예정이지만 이양은 함께 가지 않기로 했다. 연휴 직후인 다음달 1일 시작하는 학교 중간고사에 대비해 시험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양은 고3이 되는 내년에 서울 소재 대학의 체육학과 수시 모집에 원서를 낼 생각을 하고 있다. 수시 모집에선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 성적이 합격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1학기 때 영어·수학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이번엔 잘 받아야 해요. 친척 언니·오빠들 볼 수 있는 기회는 명절뿐이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이양은 "연휴이지만 마음껏 쉬지 못해 불만스럽다"고 말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둔 고 3이 아니어도 이양처럼 '나홀로 집에'서 추석 연휴를 보내는 고교 1,2학년이 적지 않다. 상당수 고교가 추석 직후에 중간고사를 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서울 지역 고교들이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2015학년도 학사일정’을 본지가 살펴봤다. 그랬더니 서울에 있는 고교(일반고·특목고·자율고) 248곳 중 추석 연휴가 끝나는 주(9월 30일∼10월 2일)에 중간고사를 시작하는 학교가 15.3%(38곳)였다. 그 다음주(10월 5∼8일)에 중간고사를 시작하는 학교까지 합하면 서울 지역 고교 중 68.5%(170곳)나 됐다. 나머지는 추석 연휴 전에 중간고사를 마쳤거나 연휴가 끝나고 열흘 이상이 지난 10월 12일 이후에 중간고사를 본다.

자녀만 집에 두고 귀향을 하는 게 부담스러운 가족은 아예 귀향을 포기하기도 한다. 고 2 박모(17)양은 "모의고사보다 내신 성적이 잘 나오는 편이라 내년에 수시 모집에서 꼭 붙고 싶다. 1학기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아 이번 학기에 만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양은 "부모님이 '너 혼자만 집에 두기가 불안하다. 할아버지·할머니댁은 올핸 안 간다'고 하셨다"고 했다.

큰집이나 할아버지·할머니댁이 멀지 않아도 고2는 '중간고사'를 이유로 가지 않는 게 흔치 않게 됐다. 서울의 한 일반고에 다니는 고2 윤모(17)군은 서울에 큰집이 있지만 이번 연휴에 큰집에 가지 않는다. 윤군은 "학교 중간고사가 10월 5일부터다. 나뿐 아니라 친구들도 모두 이번 추석은 중간고사에 뺏겼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대학에서 수시 모집 비중이 커지면서 고교생들에겐 내신이 수능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올해는 전체 대학 신입생의 67.4%를 수시 전형에서 뽑는다. 수시에선 학교생활기록부 중심으로, 정시에선 수능 중심으로 대학이 신입생을 뽑도록 유도한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입시 정책이다.

추석 전, 아니면 연휴가 끝나고 한참 지나 중간고사를 보면 안될까. 고교들은 "수업 진도나 가을 축제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한다. 10월 1∼6일 중간고사를 보는 서울 청량고의 곽종훈 교장은 "11월에 교내 예술제 등 행사가 많다. 수업 일수를 채우고 진도를 맞추려면 현재의 중간고사 일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중간고사 못지않게 명절을 잘 보내는 것 역시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최미숙 대표는 "인성 교육이 중요해지는데, 명절은 가정에서 자녀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이런 기회를 학교가 망쳐선 안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사일정은 매년 초 학교가 재량으로 정하기 때문에 교육청에서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학교 일정상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명절을 지내는 것도 다 교육인데 아쉬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김정희 인턴기자(고려대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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