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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잡으러 미국 간 수사관, 얼떨결에 인사 받은 까닭은

중앙일보 2015.09.25 02:24 종합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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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수사관이 23일 ‘이태원 살인사건’ 피고인 아더 존 패터슨(왼쪽)을 인천공항에서 압송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1일 오후 11시30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한국 국적기로 압송된 ‘이태원 살인사건’ 피고인 아더 존 패터슨(36·사건 당시 18세)은 흠칫 놀랐다. 18년 전 자신을 집요하게 추궁했던 경찰관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수사기관(U.S. Marshals) 관계자들이 잡고 있던 패터슨의 팔은 그에게 넘어갔다. 과거 미군 범죄수사대(CID)에 체포돼 한국 경찰에 넘겨질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18년 전 사건 담당, 패터슨이 알아봐
당시 강력팀 5명 중 2명 세상 떠나

 패터슨을 당황하게 만든 주인공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소속 이기영(52) 수사관이다. 이 수사관은 1997년 서울용산경찰서 강력1팀 형사로 이태원 살인사건을 수사했다. 이후 2000년 검찰 수사관으로 전직한 뒤 줄곧 강력부에서 흉악범들을 수사했다. 그러다 이번 송환팀 5명의 명단에 올랐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패터슨을 직접 조사한 경험 등을 고려해 이 수사관을 송환팀에 차출했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이 수사관은 용산경찰서 강력1팀 막내 형사였다. 97년 4월 3일 오후 9시50분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에 찔려 사망한 직후 현장으로 출동했다.

 이후 패터슨의 신병을 미국 CID로부터 넘겨받아 선배들과 함께 밤낮없이 조사했다. 현장검증 등 궂은일을 도맡았다. 당시 강력1팀은 패터슨을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패터슨이 주변 사람들에게 “살인을 했다”고 털어놨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하지만 검찰은 화장실에 함께 갔던 에드워드 건 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리고 패터슨에겐 증거인멸과 흉기 소지 혐의만 적용했다. 패터슨은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98년 8·15 사면으로 나온 뒤 다음 해 미국으로 도주했다. 2011년 패터슨은 미국에서 검거됐고 같은 해 검찰은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이 수사관의 얼굴을 알아본 패터슨은 무의식적으로 인사를 했다고 한다. 이 수사관은 비행 12시간 동안 패터슨 옆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한마디 대화도 없이 팽팽한 긴장감만 이어졌다. 이 수사관은 인천공항에 도착해 서울구치소에 수감할 때까지 패터슨 압송을 전담했다.

 당시 동고동락했던 용산서 강력1팀 멤버는 모두 5명. 이 중 두 명은 패터슨의 송환을 보지 못하고 교통사고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퇴직했다. 유일하게 경찰에 남아 있는 경찰관도 강력팀을 떠나 다른 보직을 맡고 있다. 검찰청에서나마 ‘강력 수사’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팀 막내가 18년 전의 숙원을 푼 것이다.

서복현 기자 sphjtb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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