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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춘희막이' 본처와 후처 기막힌 동거, 그런데 정겹네요

중앙일보 2015.09.25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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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막이’의 막이 할머니(위)는 늘 춘희 할머니(아래)의 매무새를 챙긴다. [사진 메가박스·엣나인]

 본처와 후처가 한집에 산다. 무려 46년째. 3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춘희막이’는 본처 최막이(90)와 후처 김춘희(71)의 기막힌 동거를 2011년 겨울부터 2년 동안 기록한 작품이다. 그동안 TV 다큐를 찍어온 박혁지(43) 감독의 첫 극장용 장편 다큐다. 여장부 같은 본처와 그저 어린애 같은 후처의 이야기라니 캐물을 이야기가 많을 것 같지만 이 다큐는 그러지 않는다. 그저 두 사람이 함께 밭을 매고, 밥을 먹고, 장을 보는 일상의 모습을 담을 뿐이다.

 “막이 할머니가 춘희 할머니를 구박하는 것 같으면서도 살뜰히 챙기고, 춘희 할머니가 막이 할머니를 말없이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과거는 다 설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박 감독의 말이다. 그가 정작 궁금했던 건 “톰과 제리처럼 옥신각신하는 두 분이 왜 같이 사는 걸까, 두 할머니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막이 할머니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정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에 강한 아우라까지 풍긴다. 반면 춘희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이 ‘바보’라 부를 정도로 의사소통이 명확히 안 되고 엉뚱한 소리 하기 일쑤다. 무슨 행동을 해도 야무지지 못하고 굼뜬 춘희 할머니에게 막이 할머니는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러면서도 얼굴에 손수 로션을 발라주고 새 신발을 사준다. 춘희 할머니는 무슨 소리를 듣든 막이 할머니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큰마음이 오가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순간으로, 박 감독은 막이 할머니가 춘희 할머니에게 몇 번이고 화폐 단위의 개념을 가르치려 할 때를 꼽는다. “춘희 할머니가 돈 계산을 못할 걸 빤히 알면서 끝까지 춘희 할머니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저게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춘희 할머니의 태도가 참 묘하다. 막이 할머니 앞에서는 도통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혼자 있을 때는 거침없이 숫자를 센다. “‘자꾸 나한테 이것저것 가르치지 말고, 내 곁을 먼저 떠날 생각하지 말고 언제까지나 같이 삽시다’ 하는 마음에서 그러는 게 아닐까.” 박 감독의 짐작이다.

 2009년 296만 명을 모은 ‘워낭소리’, 지난해 480만 명을 동원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현대인이 잊고 살아가는 따뜻한 온정을 일깨우는 휴먼 다큐였다. ‘춘희막이’를 찍는 동안 박 감독 역시 그것을 느꼈다. “두 분이 아웅다웅하는 듯해도 사소한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서로에 대한 진심을 담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나’ 생각했다.” 박 감독이 생각하는 훌륭한 휴먼 다큐란 바로 그런 것이다. “‘춘희막이’를 보고 ‘희한한 할머니들이네, 귀엽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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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이은선 기자): 가볍고 쉬운 관계가 넘쳐나는 시대에 끈덕진 인연을 이어가는 두 주인공이 삶의 따뜻한 가치를 상기시킨다.

★★★☆(김혜선 영화칼럼니스트):의외의 인연, 의무의 인연이 의리의 인연이 되는 모습. 어떤 잣대로든 재단할 수 없는 돌봄과 의지의 관계가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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