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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Talk Talk] 악명도 돈이 되는 시대

중앙일보 2015.09.25 00:52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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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충격과 공포의 9월입니다. 남성잡지 맥심코리아 9월호의 뒷표지에는 여성 납치를 묘사한 사진이 실렸습니다. 한 남성이 차 옆에 서서 담배를 피는데, 트렁크 밖으로 발목이 묶인 여성의 맨다리가 비어져 나왔습니다. 표지에 적혔습니다. “여자들이 나쁜 남자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진짜 나쁜 남자는 바로 이런 거다. 좋아 죽겠지”

 지난 17일 생면부지의 35세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차량 트렁크에 유기한 범인 김일곤이 검거됐습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트렁크녀 사건’이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습니다. 지난 22일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가을 축제에서 대학생들이 운영한 주점은 ‘오원춘 세트’를 팔았습니다. 곱창볶음과 모듬 튀김 안주에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오원춘은 지난 2012년 여성을 납치, 살해하고 시신을 심하게 훼손한 범인입니다. 자극을 넘어 인권유린에 가까운 일이 반복됐습니다. 작금의 세태를 보여준 일련의 사건입니다.

 지난 10여년 간 디지털 세상을 지배한 법칙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묻히면 죽는다, 튀어야 산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

 악명과 명성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더 무서운 건 악명도 돈이 된다는 겁니다. 화제가 돼야 책이 팔리고 클릭이 돼 광고 단가가 오릅니다. 연예인은 물의를 일으켜서라도 이름을 알려야 방송 섭외가 들어오고 음원 순위가 올라갑니다. ‘실시간 검색어’가 지배하는 세상은 이런 식의 돈벌이를 우리에게 반복해서 가르쳐 왔습니다.

 누군가 돈을 벌 때 누군가는 조롱당했습니다. 납치·살해 피해자들은 ‘나쁜 남자 좋아하다 당한 여자들’이, 김일곤에게 살해된 여성은 ‘트렁크녀’가 되었습니다. 오원춘의 악랄한 범죄는 술자리 안주로 희화화됐습니다.

 무명보다 악명을 택한 자가 득을 보는 건 이 사회가 ‘관심도’에는 민감하지만 ‘만족도’는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잔인한 달 9월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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