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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적 입김에 남·북·러 3각 경제협력 가깝고도 먼 험로 되나

중앙일보 2015.09.25 00:02 부동산 및 광고특집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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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동방경제포럼 공보실. 지난 9월 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한·러 비즈니스 포럼`. 한국 대표단의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오른쪽)이 대표단의 일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9월 초 러시아의 동쪽 관문인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제1회 동방경제포럼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 포럼에선 남·북·러 기업인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경제협력 원탁회의’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관심과 기대가 집중됐었다. 그러나 원탁회의는 행사 전날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이달 열린 동방경제포럼서
당초 민간 주도 회의 예정
각국 정부 입장 엇갈려 무산
나진·하산 프로젝트 불투명


원탁회의는 동방경제포럼 개최를 계기로, 3국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논의돼 왔던 3각 경제협력 프로젝트 추진 방안과 향후 발전 전망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자 했던 장이었다.

러시아 극동개발부가 행사 주관을 맡아 각국 참석자들을 초청하고 회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 당초 취지는 관련국 민간 비즈니스 단체들이 행사를 주최하자는 쪽이 강했다. 그래서 회의를 지난해 러시아-북한 당국의 중재로 양국 기업인들이 참여해 설립한 ‘북·러 기업인협의회’와 한국의 ‘한·러비즈니스협의회’를 비롯해 몇몇 민간 경제단체가 주관하고 관련 당국은 뒤에서 지원, 협조하는 시스템으로 추진코자 하였다.

그러나 포럼 개최 시기가 다가올수록, 정부 당국들의 개입과 입김이 ‘불가피하게’세졌고 민간 기관들은 점점 밀려나게 됐다.

원탁회의 주요 의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돼 왔던, 나진-하산 복합 물류프로젝트, 러시아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풍부한 수력·화력 에너지원을 끌어와 북한을 경유해 남북을 연결하는 전력망 연결사업, 그리고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극동지역에서 3국이 참여하는 농업·산업특구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들이 실현될 수 있게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회의 결과는 종합돼 관련국 정부에 건의하고, 미래에 3국의 기업인, 정부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가칭 ‘남·북·러 비즈니스 카운슬’ 출범도 선언하는 계획도 구상됐다.

그러나, 민간이 주도하는 의미 있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행사는 결국 무산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남북러 경제협력 프로젝트는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 출발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정부 간 정치·외교적인 합의가 우선돼야 하는 문제였다. 따라서 민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비즈니스 원칙만을 따라 추진하기 힘든 사안이었다.

둘째, 극동지역 또는 한반도에서 3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지역개발 협력모델 경험이 아직 부족하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시스템 역시 부재하다 할 수 있다. 즉 한·러, 러·북, 남북 각각 양자 간 협력모델에 대한 논의나 합의는 다소 수월할지 모르나 3국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히는 사안이 등장하면 풀기 힘든 고차원 방정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외교·안보 역학관계를 고려할 경우, 러시아만 참여하는 한반도 3각 경제협력 모델 구상은 한국 입장에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셋째, 3각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활성화할 수 있도록 참여국들의 이해관계와 입장을 절충, 조정하는 정부 간 협의체 또는 범정부 차원의 지역개발기구와 같은 협력 플랫폼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극동·시베리아지역과 한반도를 철도·전력·에너지망으로 연결하는 3자 간 메가 프로젝트 실현은 참여국 모두에 새로운 경제적 혜택을 줄 수 있다는데 의심의 여지는 없다. 특히 해양과 대륙 간 물류·교통 인프라를 연결해 새로운 경제 영토를 확장하고 한반도, 동북아지역의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 실현을 위해서라도 3각 경제협력 사업 추진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당분간 매우 불투명해 보이고 갈 길이 멀고 험해 보인다. 이러다가 러시아와 북한 간의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아 매우 안타깝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외교전략에서 특히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과 협력하고 개방을 견인하고자 하는 한국의 의지는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 다시 말해 러시아가 주도하는 3각 경제협력 방식으로 자칫 러시아가 한반도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지 않을까 상당히 경계하는 눈치다. 따라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한 한반도 경제협력 프로젝트 실현은 한국 정부 최고 결정권자의 정치적 의지와 결단이 뒷받침돼야 강력한 추진 동력을 찾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외교적 부담을 확 줄이고 철저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민간부문에서의 자율적 경제활동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한·러 비즈니스협의회 대표 박종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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