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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영화·드라마를 모두 요리하는 웰컴 투 김풍상회

중앙일보 2015.09.16 11:03
[beyond M]웹툰·영화·드라마를 모두 요리하는 웰컴 투 김풍상회

웹툰 ‘찌질의 역사’ 작가 김풍

프로 셰프와의 요리 대결에서 삼겹살과 라면만으로 만든 요리를 내놓으며 자신만만하게 미소 짓는 남자. 심지어 그 요리로 우승까지 거머쥐는 남자. 웹툰 작가 김풍(37)이다. 요리 예능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는 ‘핫’한 그에게 좋은 소식이 생겼다. 올해 초, 그의 웹툰 ‘찌질의 역사’ 영화화가 발표됐다. 이 웹툰은 단행본 출간도 앞두고 있다. 그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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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은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왔지만 지갑을 집에 두고 와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자리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는 TV에서처럼 허술한 게 매력인 아마추어 셰프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달라졌다. 적확한 단어를 고르기 위해 곰곰이 생각할 때, 그는 영락없이 섬세한 작가의 모습이었다. 2013년부터 약 20개월 동안 연재된 김풍의 웹툰 ‘찌질의 역사’엔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정을 쌓아 온 30대 남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가장 찌질했던 스무 살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기리에 연재한 웹툰이 영화화된다. 소감이 어떤가. “짧은 드라마나 시트콤으로는 생각해 봤지만 영화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무척 궁금하다. 최근 배우 송중기가 주인공 민기 역으로 물망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물론 그쪽에선 금시초문일 테지만(웃음). 그런 잘생긴 배우가 민기 역을 맡아 반전 매력을 보여준다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하다. 연출을 맡은 임찬상 감독이 배우를 물색 중이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최근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7월 9일 개봉, 피트 닥터·로날도 델 카르멘 감독)이 정말 좋았다. 귀여운 주인공 소녀 라일리를 보고 있으니 아빠가 되고 싶어졌다(웃음). 인생의 영화를 꼽자면 ‘글루미 썬데이’(1999, 롤프 슈벨 감독). 아내의 불륜마저도 사랑으로 용납하는 남자가 등장하는데, 정말 감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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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찌질의 역사’는 어떻게 구상했나. “‘건축학개론’(2012, 이용주 감독)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라 곧바로 기획했다. 그 영화가 찌질하던 20대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 거다. 내 생각에 남자들은 그때에 비해 크게 성장하지 않는다(웃음). 찌질함을 감추는 요령이 생길 뿐이지.”

-첫사랑 앞에서 쩔쩔매던 민기는 두 번째 만난 여자에겐 다소 가부장적인 모습이다. 한 인물을 다르게 묘사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사람에게 본질이란 건 없다고 본다. 특히 연인 관계에서 그 점은 더욱 명백해진다. 남자들에게 여자는 일종의 함수다. 어떤 함수를 만나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처음엔 연애를 주도하다가 나중에는 상대방에게 완전히 의존적으로 바뀌는 민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혹시 개인적 경험을 녹인 것인가. “연애할 땐 누구에게나 주도권을 빼앗기는 시점이 찾아온다(웃음). 나도 어릴 땐 상대에게 끌려다녔는데, 나이 들면서 주도권을 빼앗기는 시점이 점점 늦춰지거나, 혹은 거의 빼앗기지 않게 됐다. 이를 위해선 상당한 궤변과 자기합리화로 상대방을 쥐락펴락하는 기술이 필요하다(웃음). 하지만 과연 그게 성장하는 걸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현재 싱글이라고 알고 있다. 이상형이 있다면. “갑자기 작가 알랭 드 보통이 한 말이 떠오르네. 불과 몇천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다양한 사람을 동시에 만나면서 연애하기도, 결혼하기도 했다더라. 그러다가 결혼이란 제도에 묶이면서 한 사람에게 인생을 올인하기 시작했다. 평생 한 사람과 살면서 아이를 낳고, 취향을 공유하고, 일을 상의하는 것 등등. 내 말은 이상형을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는 거다(웃음). 갈수록 사람을 만나기가 더 힘들어진다. 난 망했다(웃음).”

-웹툰 연재 당시 찌질한 주인공을 비난하는 댓글이 많았는데. “민기의 답답하고 이기적인 면모에 분노를 느끼는 독자가 있을 거란 예상은 했다. 그중엔 가끔 자기반성형도 있다. ‘누구야 미안해. 내가 널 속상하게 했구나’ 하는 식이다(웃음). 누구나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런 과거를 반성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불을 많이 차는 사람일수록 훌륭한 인격을 가진 거라고 생각한다(웃음). 그만큼 반성한다는 의미니까.”

-웹툰 작가로서 꾸준히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굳이 한 가지만 꼽자면 ‘좀 벗고 다니자’란 것이다. 한국 사회에선 유독 자신을 포장한 채 상대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부족하지 않은 척, 찌질하지 않은 척 말이다. 하지만 내가 꽁꽁 싸매면 상대방은 갑옷을 입고 나서게 된다. 반면 내가 먼저 훌훌 벗고 솔직해지면 같이 무기를 내려놓게 된다. 그렇게 서로 무장 해제하는 데서 진짜 관계가 시작한다고 본다.

-실제 성격도 솔직한 편인가. “평소 비호감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억지로 술자리에 앉아 있는 건 절대 못한다. 어려운 관계도 굳이 유지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감정에 솔직해야, 상대방의 감정도 존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은 나를 가장 편하게 대한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태도가, 때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

-웹툰·요리·예능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당연히 웹툰 작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도 많다. 볼수록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웹툰을 그리고 싶다. 물론 웹툰 연재는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짜내는 창작자의 고통 말이다. 마치 변비 걸린 사람이 일을 보고 나면 엄청난 쾌감을 느끼듯, 웹툰은 내게 그런 희열을 준다(웃음). 굳이 방송까지 고통스럽게 하고 싶진 않아서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한다. 지금도 고정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냉장고를 부탁해’(JTBC)와 ‘비법’(O’live)뿐이다.”

-언제까지 주목받을 수 있을지 걱정되진 않나. “언젠가는 끝이 오겠지. 30대 초, 백수 시절을 보냈다. 좋게 말해 충전이지, 말 그대로 잉여의 시간이었다. 그때 바닥 끝까지 자존감이 곤두박칠쳤다. 만약 그런 시간을 다시 마주한다면 이번엔 좀 멋지게 떨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 두 번째 번지 점프가 좀 더 쉽듯이(웃음). 그 시간이 웹툰에 집중할 수 있는 창조적인 시간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의 명함, 김풍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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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의 명함에는 재미있는 사진이 있다. ‘김풍상회’란 간판을 단 가게 안에서 김풍이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다. 창가엔 식당 메뉴처럼 웹툰·요리·영화라고 쓰여져 있다. 모두 포토샵으로 만든 건데, 김풍에 따르면 “내 재능을 모두 팔겠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하늘 위엔 드론이 떠 있고, 가게 앞에는 맥북이 있다. 심오한 뜻이 있나 싶었는데 “아무 의미 없다”라는 게 그의 설명.


*beyond M magazine M의 문화 가로지르기 프로젝트. 웹툰·TV·문학·음악·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핫한 인물을 만나고 새 흐름을 탐구합니다. 문화로 통하고 연결되고 풍성해지는 M 너머의 이야기.


글=윤지원 기자 yoon.jiwon@joongang.co.kr 사진=정경애(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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