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글·기술력 … 자랑거리 많은데 스스로 부정적인 게 문제

중앙일보 2015.09.23 03:27 종합 10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서울 경희대 청운관 강의실에서 지난 9일 대학생 25명이 한 시간에 걸쳐 미래 바람직한 매력한국의 모습을 떠올렸다. 7개 조로 나눠 각자 생각하는 한국의 매력을 이야기하고 조별로 의견을 모아 칠판에 적었다. 그 결과 ‘다양성과 융합’ ‘공동체의식과 시민의식’이라는 매력한국의 키워드가 도출됐다. [김경빈 기자]


“정(情)의 범위를 넓혀야 해요. 한국인끼리의 정을 넘어 이주노동자, 난민 같은 타인과도 정을 나누는 나라가 매력국가죠.”

매력 코리아 리포트 <5·끝> 젊음의 시선-대학생
지식인의 사회에 대한 책임·도덕성
선비정신이 되살려야 할 정신유산
월드컵 거리응원서 보여준 단결력
다시 발휘해 제2의 도약 이뤄야


 “냄비 근성도 매력일 수 있어요. 열만 있으면 계속 뜨거운 냄비처럼 동기만 있다면 국민이 하나 되는 게 한국이니까요.”

 지난 9일 서울 경희대 청운관 강의실에 모인 대학생 25명은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 매력한국의 모습을 ‘소셜픽션’(Social Fiction)으로 그렸다. 소셜픽션은 사이언스픽션(SF)처럼 자유로운 상상으로 사회의 미래를 그려보는 집단 작업이다. 먼저 4~5명이 한 조를 이뤄 바람직한 한국의 매력을 슬로건과 이미지의 형태로 정리한 뒤 각 조가 제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참가자 전체가 논의해 슬로건을 정했다. 지난 7~9월 여섯 차례에 걸쳐 대학생 150명이 참여한 소셜픽션에서 그들이 바라는 한국의 매력은 ‘다양성과 융합’ ‘공동체의식과 시민의식’으로 귀결됐다.
 
기사 이미지

 “동서양 문화의 융합이 매력입니다. 우리의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다양성이 필요해요.”(이동재·중앙대)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건 ‘우리’라는 공동체 문화에서 나온 단결력이었어요.”(안성열·인하대)

 대학생다운 패기 넘치는 의견도 나왔다. 이혜미(경희대)씨는 “우리 스스로가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게 문제”라며 “한글, 기술력, 고학력 사회 등에 대해 뻔뻔할 정도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종우(한국관광대)씨는 “분단 국가라는 건 단점이 아니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밖에 “야근을 없애자” “빨리빨리 문화를 매력으로 홍보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대학생들의 열띤 분위기는 이들이 매력한국 건설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본지가 소셜픽션에 앞서 대학생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4%가 ‘한국을 떠나 이민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여유 없고 경쟁적인 삶’(60.4%), ‘일자리 부족과 취업난’(15.7%), ‘사회·경제적 신분 상승의 어려움’(7.9%) 등을 골랐다.
 
기사 이미지

 대학생들에게 세계 200여 개국 중 한국의 매력 순위를 적어 내도록 한 뒤 평균을 내 봤더니 41.8위였다. 독일 시장조사기관인 GFK의 2014 국가브랜드 조사(한국 27위)나 글로벌 컨설팅기업 퓨처브랜드의 조사(한국 20위)보다 낮다. 지은림 경희대 교육대학원장은 “과거와 같은 한국의 고도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청년층에게는 현실이 더욱 어두울 수밖에 없다. 매력국가 담론은 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매력한국을 건설하기 위해 현대에 되살릴 만한 우리의 정신적 유산으로는 ‘지식인의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도덕성’(선비정신)을 1위(44.1%)로 꼽았다. 이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정신’(홍익인간)이 2위(27%)였다.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저자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선비정신은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감, 수준 높은 공동체의식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에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치다”고 말했다.

 매력한국 건설을 가로막고 있는 분야는 어디일까. 시민 30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4.3%가 정치권을 1위로 꼽았다. 구체적으로 정치권이 바뀌어야 할 점에 대해서는 부정부패(30.4%), 국민을 위한 정책의 부족(9.9%), 사리사욕(7.8%) 등을 꼽았다. 정치인들은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념과 지역 등으로 갈라져 있는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적 통합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 마련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정치가 권력의 획득에서 탈피해 국민을 위한 정치로 화합의 정신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셜픽션(Social Fiction)=노벨평화상(2006) 수상자이자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 설립자인 무함마드 유누스가 2013년 사회혁신가들의 모임인 스콜세계포럼에서 제안한 개념. 사이언스픽션(SF)이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듯이 시민의 자유로운 상상이 사회의 발전을 이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소셜픽션을 통한 집단 토의 방식은 당장의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찾기보다는 자유로운 상상으로 미래의 비전과 철학을 수립하는 데 유용하다.

특별취재팀=윤석만·남윤서·노진호·정종훈·백민경 기자, 김다혜(고려대 영문학과)·김정희(고려대 사학과) 인턴기자 sam@joongang.co.kr

취재도움=강석일·권은하 중앙인성교육연구소 객원 연구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