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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마을 역사탐방 “뒷산이 왕릉이었네”

중앙일보 2015.09.23 02:13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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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독국 탐방대에 참가한 시민들이 19일 경산시 임당동 고분군을 둘러보고 있다. 주민 곁의 문화재를 답사하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19일 오전 9시 경북 경산시 사동 경산시립박물관 앞에 ‘압독국 탐방대’가 모였다. 경산시와 대구대 중앙박물관이 지역 문화재 곁으로 시민들이 다가갈 수 있도록 문화재청과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압독국은 경산에 자리 잡았던 고대의 한 소국이다.

경산시립박물관 ‘압독국 탐방대’
조영동·임당동 고분만 2000기 발견
유일한 삼국시대 병영유적도 있어
말 타고 활 쏘는 체험 프로그램도


 참가한 대원은 초등학생과 부모 등 45명. 대원들은 먼저 경산시립박물관에서 압독국 고분에서 발굴된 유물을 둘러봤다. 오리 모양 토기가 눈길을 끌었다. 압독국을 연구한 김대욱(41) 박사는 “오리는 물속으로 들어가고 땅을 걷고 또 하늘도 날 수 있는 동물”이라며 “그래서 고대인은 오리를 신성시해 무덤 속에 넣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조영동 고분을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대원들 발 아래로 유골과 팔찌·허리띠·제기 등이 보였다. 주인공의 머리 위쪽으로 어린이 유골이 있는 관이 더 있다. 순장이었다. 다른 시종을 죽여 같이 묻은 것으로 봐서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탐방대는 버스를 타고 1982년 발굴한 임당동 고분군을 찾아갔다. 경산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뒷동산이다. 왕릉 같은 고분이 나란히 자리잡고 그 뒤는 토성이었다. 길 옆 고분에는 푸른 천이 덮여 있다. 최근 도굴돼 시끄러웠던 곳이다. 이곳에서 2㎞쯤 떨어져 조영동 고분군이 있었다. 경산에는 압독국 고분만 무려 2000여 기가 조사됐다고 한다. “고분 아래는 백성들이 사는 주거지였을 겁니다. 알고 나면 이렇게 우리 지역에도 문화재가 많아요.”

 시민 김태희(42·옥곡동)씨는 “이 옆을 지나다니면서도 왕릉인 줄은 몰랐다”며 “고분 주변에 원룸촌이 들어선 게 낯설다”고 말했다. 고분군 주변은 사유지가 많았다. 특히 조영동은 원룸으로 둘러싸여 있다시피 했다. 황종현(43) 경산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고분 발굴 예산 5억원을 문화재청에 신청했다”며 “출토 유물로 보면 압독국이나 가야나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을 참관한 박동석 문화재청 서기관은 “경산시도 경주 쪽샘지구처럼 발굴 현장을 시민들이 직접 볼 수 있는 시설로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조영동 고분군을 나오니 신라 때 김유신 장군이 압독국의 후신인 압량의 군주로 있을 때 군사를 훈련시키고 말의 물을 먹였다는 병영 유적과 마위지가 나타났다. 박 서기관은 “삼국시대 병영 유적은 여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탐방대는 답사에 이어 압독국의 군사와 신라의 화랑이 돼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체험도 곁들였다. 탐방대원 김유영(10·경산 옥곡초 4년) 양은 “경산에도 왕릉이 있고 김유신 장군이 다스렸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경산시는 앞으로 세 차례 더 탐방대원을 모집하고 11월 7일에는 압독국 고분체험축제도 마련할 예정이다.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압독국(押督國)=경산 지역에 있었던 고대 왕국. 『삼국사기』에 따르면 2세기 무렵 신라에 병합됐다. 6세기 들어 신라의 주군현제 실시로 압독군·압량주로 바뀌었다. 임당 유적 주변은 지금도 압량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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