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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고 춤 추니 허리 아픈 게 싸악~ 몸·마음 함께 치료하는 전남 병원선

중앙일보 2015.09.23 02:05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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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전남 여수시 조발도 주민들이 병원선에서 진료를 받은 뒤 무용 전문가들의 안내에 맞춰 공중보건의들과 함께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오랜만에 신명나게 노래하고 춤 추니 다리·허리 아픈 게 거짓말처럼 모두 다 날아가버린 것 같네. 춤이 보약이였어.”

현대무용 전문가 등 의료진과 동행
섬마을 문화·예술 프로그램 진행
내년부턴 심리 치료 등 확대 검토


 지난 16일 오후 1시40분쯤 전남 여수시 화정면 조발도 부둣가. 대부분 70~80대인 주민 20여 명이 약속이나 한 듯 일손을 멈추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바다 멀리서 흰색 선체에 녹색 십자가가 그려진 전남도 병원선 511호(128t급)가 섬으로 다가오는 게 보여서다.

 조발도를 3개월여 만에 찾은 병원선 511호가 부두에 정박하자 특별한 손님들이 내렸다. 현대무용 전문가인 광주교대 신희흥(체육교육과) 외래교수와 2명의 한국무용 전문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문화 사각지대인 섬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처음으로 병원선과 연계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어르신들이 병원선에 올라 의과·치과·한방 진료를 받는 사이 부둣가에는 회색 천이 깔리고 공연을 위한 스피커가 놓였다. 신 교수 등 무용 전문가들은 미리 준비해온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준비를 마친 신 교수가 말했다. “진료가 끝난 어머니 아버지는 한바탕 예술 잔치 벌이게 모여보세요.”

 진료를 받은 뒤 한 손에 약봉지를 든 어르신들은 ‘무슨 일이지’라는 표정으로 회색 천 위에 빙 둘러 앉았다. 그때 스피커에서 민요 아리랑과 군밤타령이 차례로 흘러나왔다. 처음엔 어색한 표정을 짓던 김영심(72·여)씨를 비롯한 어르신들이 흥에 겨워 양쪽 팔을 들고 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한복 차림을 한 한국무용 전문가 김회숙(52·여)씨와 이반야(27·여)씨의 장구 가락과 춤이 더해지자 열기는 점점 고조됐다.

 “자, 어르신들 이제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1시간쯤 뒤 신 교수의 안내에 따라 어르신들이 다음 프로그램을 위해 자리에 앉았다. 복주머니를 받으면 그 안에 든 물건을 보고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벤트였다. 김봉기(69) 어촌계장이 받은 복주머니에서는 제기가 나왔다. 그는 “13살 때 보고 처음 본다”며 이웃들 앞에서 제기를 차 보였다. 어설프게 제기를 차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복주머니에서 낡은 휴대전화를 꺼낸 어르신은 육지에 사는 자식에게 전화를 거는 것처럼 “보고 싶다. 추석에 꼭 만나자”고 말해 잠시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2시간에 걸친 프로그램이 모두 끝난 뒤 “오래오래 행복하세요”라며 작별인사를 건네자 어르신들의 얼굴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신 교수 등을 껴안거나 눈물을 글썽이는 어르신도 있었다. 주민 조창예(76·여)씨는 “추석을 앞두고 적적하기만 한 섬마을을 찾아와 이렇게 흥겨운 행사를 열어주니 자식만큼 반갑고 고맙다”고 했다. 병원선 511호는 이후 인근 둔병도로 이동해 진료 활동과 함께 문화예술 공연을 했다.

 전남도는 내년부터는 재능기부를 받아 병원선에서 심리 치료와 이·미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남도 병원선 2척은 의료기관이 없거나 보건진료소만 설치돼 있는 섬 160곳을 연 2~4회씩 돌며 진료한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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