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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인도 한때 난민 신세였다”

중앙일보 2015.09.23 00:55 종합 37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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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

터키 보드룸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쿠르디의 사진을 보니 문득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죽었다는 아기가 떠오른다. 한밤중에 강을 건너는데 아기가 울면 한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위태로워지므로 엄마가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숨졌다는 그 아기. 그 엄마는 죽은 아기를 부여안고 무너지듯 주저앉았다고 한다.

 지난해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나왔듯이 상당수 한국인은 자신이 피난민이었거나 그 이웃이다. 하지만 유럽을 뒤흔드는 난민 문제에는 꽤나 무심한 것 같다. 사실상 피난민과 난민은 모두 전쟁이나 재난을 당해 곤경에 빠진 사람을 뜻한다.

 

쿠르디 보며 한국전 참상 떠올라
한국인들 대개 난민문제 무관심
시리아, 6·25전쟁 당시 지원국
국제사회 인도적 지원에 동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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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서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밀려드는 사람들을 ‘이민자’(migrant)가 아니라 ‘난민’(refugee)으로 고쳐 써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자신의 집에서 난민이 머물도록 하겠다고 난민구호단체에 신청하며 자국 정부가 난민 구호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요구하는 시민들도 꼬리를 물고 있다는 소식이다. 물론 그 난민들이 훗날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등 그 사회의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하며 문을 굳게 닫아 걸자는 소리도 들린다.

 이민자와 난민은 모두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지만 법적 지위가 서로 다르다. 1951년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대한 협약’에 따르면 인종·종교·국적·정치적 견해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고국을 탈출한 사람이 난민이다. 불법 입국했더라도 도착한 나라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거나 임시보호를 요구할 수 있으며, 해당국은 이들을 강제 송환할 수 없다. 이민자는 가난 등을 이유로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떠나온 사람을 말한다.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도착한 국가의 불법 이민자가 되므로 강제 추방될 수 있다. 서방 언론은 대체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을 이민자로 표현한다. 하지만 터키 해변에서 죽은 쿠르디의 가족과 이웃들을 이민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IS)의 위협을 피해 조국 시리아를 떠나 목숨 걸고 유럽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걸맞은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지구촌에는 10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중 절반가량이 어린이다. 시리아의 잔혹한 무력 분쟁을 피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어린이도 200만 명을 헤아린다. 전쟁이 발생하면 무고한 민간인들이 억울한 피해를 입는다. 그중에서도 어린이와 여성은 재난에 가장 취약하다.

 이제는 독일 등 유럽 선진국들이 난민이 몰리는 그리스 등 특정 국가의 상황을 외면하지 말고 그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인류의 평화공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한 만큼 모두 힘을 합쳐 도와야 할 의무와 양심을 저버려선 안 된다. 물론 난민 발생국과 그 주변국의 난민촌에서 아슬아슬한 나날을 보내는 지구촌 이웃들을 돕는 일도 병행되어야 한다. 더 이상 그곳에서 안전한 일상을 지탱할 수 없고 상황이 조금씩이나마 점점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필사적으로 지중해를 건너려는 난민 행렬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난민이 발생한 지구촌은 긴급구호와 더불어 근본적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무력 분쟁을 없애는 데 국제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기반이 없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앤서니 레이크 유니세프 총재는 유럽의 어린이 난민에 대한 성명에서 “생존을 위해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니세프는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려드는 주요 길목인 그리스 국경 근처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 지역에 아동 친화공간을 조성하고,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무력 분쟁을 피해 유럽으로 온 난민 여성과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특히 심각한 위험과 처절한 고통에 노출되는 어린이와 여성에게는 더욱 각별한 도움이 필요하다. 고통스럽지 않은 난민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인신매매나 성폭력의 위험까지 무릅써야 하는 어린이와 여성들의 처지는 생각만 해도 안타깝다. 어린이들은 난민 주거지역에 설치된 아동 친화공간에서 상처투성이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헤어진 가족을 기다리기도 한다. 처절한 난민 행렬에서 아동 친화공간은 희망을 이어가게 하는 오아시스인 셈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나도 6·25전쟁 당시의 난민 출신”이라고 했다. 쿠르디는 그때 피난민의 기억으로부터 까마득히 멀어지고 있는 우리들을 일깨우고 있다. 무고한 어린이의 주검에 잠시 가슴 아파하다가 그냥 잊기에는 지구촌의 난민 문제가 너무 절박하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며 눈물 흘린 한국인들이 지구촌 시민으로서 인도주의적 지원에 기꺼이 함께 나설 때다. 참고로, 시리아는 한국전쟁 당시 구호물품을 보내준 지원국이다.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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